“비례대표 후보 선거가 선거관리능력 부실에 의한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고 규정한다.”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회의 메시지는 강력했다. 진상조사위는 부정선거 의혹규명, 근본적인 당 쇄신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과제도 남겼다. 통합진보당은 흔들렸다. 애초 2일 오전 9시부터 열 예정이던 당선자 워크숍은 갑자기 비공개로 바뀌더니 아예 무산됐다. 진상조사위가 이날 책임론을 제기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진상조사위원장인 조준호 공동대표는 “정상적인 선거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거를 강행, 사태를 야기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사무총국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며 “지역선관위와 선거사무원, 묵인 방조 또는 방치한 단위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책임론도 함께 불거졌다.

당권을 쥐고 있는 이들은 반발했다. 진상조사위에 화살을 돌리는 발언도 했다. 3일 열리는 대표단 회의에 진상조사위 조사보고서가 제출될 예정이다. 이 회의에서 선거부정 책임자에 대한 조치를 확정할 계획인데 내분 조짐이 보이는 셈이다.

◇이의엽 “진상조사위 공정성 의심”=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이의엽 공동정책위의장은 반발했다. 이 정책위의장은 “도덕적인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조준호 위원장의 발표를 반박했다. 이 의장은 “조 대표가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로 단정했는데 사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지나친 추측이나 비약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투표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상 의혹제기 수준”이라며 “(조 위원장이) 오독하거나 착오”라고 지적했다. “(진상조사위가) 정황상 가능했다는 것이지 어떻게 (부정이) 이뤄졌는지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진상조사위원회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진상조사위원이 누군지 대표도 모른다”며 “진상조사위원회 객관성과 공정성도 문제제기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반응은 이른바 ‘당권파’의 기류를 드러낸다. 당 내외에서 일고 있는 책임자 사퇴론과도 거리가 멀다.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 동반 퇴진, 문제되는 비례대표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 의장의 기자회견은 일각에서 대두되는 책임론에 공식적인 거부 의사인 셈이다. 이 의장이 “사실관계가 규명됐다기보다는 의혹이 부풀려지거나 불필요한 논란이 가중될 우려가 없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노동계, 시민사회 비판여론 비등=여론은 ‘강력한 조치 마련’쪽에 쏠리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부정·부실 선거가 있었음을 인정한 만큼 국민 앞에 사죄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사무총국이 왜 온라인 투표시스템의 프로그램을 수정했는지, 누가 지시했는지, 온라인 대리 투표를 조직한 사람은 누구인지, 현장 투표에서 명부에 등재되지 않은 인사들의 투표를 조직한 사람이 있는지가 밝혀져야 한다”고 추가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통합진보당의 주요 지지세력인 민주노총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를 통합진보당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었다. 당장 3일 오전에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한 긴급 산별대표자회의를 열 계획이다. 대표자회의에서는 민주노총 차원의 대책이나 요구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에둘러 당의 과감한 쇄신을 촉구했다. 김영훈 위원장은 “당내 분란이나 통합진보당 내의 문제가 민주노총 내부의 단결을 저해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며 “당이 과감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통합진보당은 당내 혁신과 노동 중심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정파 대표성을 누를 수 있는 계급 대표성을 확보할 때 당내 민주주의를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는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대의보다는 제도권 진입에 대한 환상을 더 크게 가진 것”이라며 “제도권 진입이라는 수단이 목적이 됐다”고 평가했다. 제도권 진입을 서둘러하려고 하다보니 충분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를 진행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제도권에 진입한 정당은 기존 제도권에 물들게 돼 있다”며 “노동단체든 시민단체든 정당에 가입하지 않는 단체로 구성된 별도의 모니터링 기구를 새로 만들어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계희·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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