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

지난 기고에서 사내하도급은 폐지돼야 할 제도라도 주장했다. 일은 원청회사 사업장에서 하지만 근로계약은 하청회사와 맺는 사내하청은 대표적인 전근대적 노동형태다. 노동법의 원칙인 사용자-노동자 간 직접계약을 전면 부정하면서, 마치 봉건시대 ‘지주(현대차)-마름(하청업체)-소작(하청노동자)’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만드는 자동차는 현대자동차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현대차의 순이익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사내하청 노동자 처우개선 비용·임금은 기계·원료와 같은 재료비용으로 책정되고 있다.

현대차가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과 노동위원회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내하청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이거나 노예로 보고 마음대로 부려먹고 싶은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글로벌기업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는 현대차의 실체는 ‘봉건시대의 지주’일 뿐이다. 지주 위치에 있는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아무리 옳은 얘기를 해도 무리한 요구와 사실왜곡으로밖에 듣지 않는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19일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50곳 중 32곳, 신청자 423명 중 278명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했다. 불법파견을 부분적으로 인정한 중노위의 이번 결정은 "자동차 생산공정에선 도급이 불가능하다"(한국지엠),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인 자동차 생산공정은 불법파견"(현대차)이라는 대법원 판결보다 후퇴한 내용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최병승 개인 판결이고, 아무 상관도 없다는 현대차 주장이 거짓임을 확인하기엔 충분한 숫자였다.

현대차는 법원과 노동위의 결정에 아랑곳없이 지금도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법파견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왜곡된 사실로 가득 찬 칼라판 소식지를 무차별적으로 뿌리고 있다. 실제 28일 나온 현대차 소식지 <함께 가는 길>은 왜곡된 내용으로 가득하다. 
 

획일적인 정규직화 터무니없음 → 2, 3차 업체를 포함한다면

예시) 덕양산업의 상주원, 납품기사, 심지어 덕양산업의 하도급업체 직원도 현대차 정규직 대상?(현대차 소식지 <함께 가는 길> 3월28일자 중에서)


"파견 판단범위는 사용사업주 사업장 전체"

근로자파견은 파견사업주가 노동자를 고용한 뒤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법파견이란 형식적으로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파견과 같이 운영된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최종 판결을 받은 현대차는 1차 하청뿐만 아니라 2·3차 하청노동자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이 있다.

현대차 사측의 주장처럼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현대차의 지휘·명령을 받고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파견법에 따라 덕양산업 하청직원도 당연히 정규직 대상이다. 덕양산업 하청직원의 사용사업주는 현대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6년까지 1공장 범퍼조립은 정규직 없이 2·3차 하청업체인 성화산업 소속 노동자들이 했다. 그런데 현대차는 2006년 4월부터 스트러트(충격완화·현가장치) 서브장이 없어지면서 43반 정규직 노동자들을 재배치해야 했다. 울산 1공장 노사는 범퍼조립 라인에서 일하던 2·3차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를 의장부 메인라인과 차체부 1차 하청업체인 민성기업으로 전직시키는 데 합의했다. 대신 43반 정규직 노동자들이 범퍼조립 서브장에 배치됐다. 지금도 2·3차 사내하청업체인 성화산업 노동자들은 현대차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누가 봐도 불법파견이다.

이미 2·3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으로 인정된 사례도 있다. 2004년 노동부는 현대차 조사 과정에서 글로비스와 계약을 맺은 수출선적부 하청업체 8곳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했다.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은 8곳은 계약형식으로 보면 ‘현대차-글로비스-하청업체’ 등 2차 하청업체다. 노동부는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글로비스와 계약을 맺은 출고PDI 업체도 모두 불법파견으로 봤다. 따라서 현대차가 주장하듯 2·3차 업체는 정규직 전환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말은 사실왜곡이다.

불법파견 노동자는 당연히 정규직

현대차는 신규채용을 고집하면서 10년 동안 현대차를 만들었던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자격심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자동차 만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노동자가 불법파견 판정을 받자 하루아침에 검증대상이 돼 버린 꼴이다. 불법파견 노동자로 일한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불법파견 노동자 중에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사람과 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현대차의 이런 태도는 전형적인 봉건지주의 모습이다.
 

정규직으로 전환? → 최소 자격여건 검증을 위한 신규채용 불가피

신규 채용진행 → 난청, 색맹·색약, 중증지병, 이상행동, 정신이상, 사회 통념상 부적합자 등 확인

이러한 부적합자들까지 무조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현대차 소식지 <함께 가는 길> 3월28일자 중에서)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불법파견 노동자는 현대차에 고용의제(의무) 조항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 사내하청은 2년을 초과한 날로부터 정규직이다. 개정 파견법이 적용된 2012년 8월1일부터는 하루만 일해도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현대차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불법파견이 부담스러웠던 현대차는 2012년 6월부터 2년 이하 사내하청을 기간제(촉탁계약직)로 전환했고, 현재는 특근 일당직에도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다. 불법파견이 아니라면 현대차가 왜 느닷없이 2년 이하 사내하청 노동자를 계약직으로 바꿨겠는가.

10년 넘게 일한 데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노동자를 배제하고, 자신들 입맛에 맞는 노동자만 골라 뽑겠다는 신규채용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어불성설은 현대차가 하고 있다.

2010년 이전 해고노동자도 정규직 전환대상

현대차는 2010년 25일 1공장 점거파업 뒤 해고한 조합원 일부를 제외하고 사내하청 재입사 추진의사를 밝혔다. 일단 내용을 떠나 현대차가 공개적으로 사내하청 재입사를 밝힌 것은 스스로가 사내하청업체 징계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불법파견을 넘어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차가 작업 지휘·명령만이 아니라 인사노무에서도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다.
 

회사는 특별협의에서 해고자 114명 中 최소, 책임단위를 제외한 100명에 대해 업체 재입사 추진 입장표명. 회사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지회는 11년 전 ‘정상적인 계약 종료자’까지 정규직 전환요구 → 이는 결국 외부세력의 재입사를 위한 꼼수일 뿐!(현대차 소식지 <함께 가는 길> 3월28일자 중에서)


대법원 판단을 보면 현대차는 최소 2002년부터 불법파견 노동자를 사용했다. 따라서 2010년 해고자만 복직대상으로 삼아 업체 재입사를 주장하는 것은 대법원 판결을 제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또한 2010년 이전에 해고된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을 ‘외부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조 내부를 분열시키는 등 노조활동에 대한 지배·개입으로 부당노동행위다.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일상적으로 불법파견 증거를 은폐하고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보니 “울산은 현대 차 공화국”, “법 위에 현대차가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뒤에서 왜곡선전 말고, 지회와 대화해야" 

 

대법원과 노동위를 포함한 법 해석기관은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 확인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판결·판정을 모두 부정하고 터무니없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불법파견을 인정할 경우 검찰조사나 집단소송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 등 착취한 임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수한 왜곡선전을 통해 숨기고 싶은 진실은 오히려 선명하게 부각될 것이다. 이로 인해 현대차는 불법파견·불법경영 기업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돼 경영위협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불법경영을 일삼는 기업을 우리 사회가 이대로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당당하다면 뒤에서 왜곡선전을 그만하고 지회와 대화해야 한다. 필요하면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지회는 현대차와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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