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학태 기자

“회사가 합의를 하자고 해서 만났더니 얼마 안 가 본색을 드러내더군요. 글쎄 법원이 판결한 체불임금도 안 되는 합의금을 제시하는 거예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난 인터콘티넨탈호텔 해고자 조옥희(62)씨와 김미자(57)씨. 그들은 1999년부터 2000년 사이 사내하청 직원으로 일하다 2005년 7월 해고를 당했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과 부당해고 소송을 진행한 결과 1·2심에서 승소해 호텔 정규직으로 인정받았다.

호텔측은 지난해 대법원 상고에 이어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의 직접고용 간주조항(제6조 3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런데 사측은 이달 4일 갑자기 헌법소원을 취하했다. 인터콘티넨탈호텔은 13일 현대자동차와 함께 공개변론이 예정돼 있었다.

호텔측은 “당사자들과 합의를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취하했지만, 회사의 제안은 법원 판결에 못 미쳤다. 조씨와 김씨는 “회사와 합의하면 지금까지 싸운 게 의미 없게 된다”며 “합의해 주지도 않고 소송 당사자로서 13일 공개변론을 방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릴 경우 조씨와 김씨, 그리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위해 준비한 소송과 투쟁은 무용지물이 된다. 쌍용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 결심공판은 20일로 예정돼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많은 공공기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잇단 소송을 통해 정규직으로 인정받았거나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인천국제공항 사내하청 노동자들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지부장 조성덕)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직접고용한 노동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서두르고 있다.

지부가 지난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전수 조사한 결과 평균 근속연수는 8년이었다. 옛 파견법 직접고용 간주조항을 적용받을 수 있는 2005년 7월 이후 2년간 근무한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조성덕 지부장은 13년째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조 지부장은 “공공기관 임금 1~2위를 자랑하는 인천공항 정규직들과 같은 일을 하는 우리는 30% 정도의 월급만 받아 왔다”며 “헌재가 상식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한국수력원자력 사내하청 노동자 7명은 올해 1월 옛 파견법 직접고용 간주조항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한국수력원자력에 직접고용된 상태라는 판결을 이끌어 냈다. 공공기관에서는 보기드문 불법파견 판결이었다.

100여개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사내하청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동차공장·호텔·연구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헌법재판소를 지켜보고 있다”며 “이들의 마지막 희망을 짓밟지 말아 달라”고 촉구했다.

불법파견 고용의제 공개변론, 김앤장 작품?


옛 파견법 직접고용 간주조항에 대한 헌법소원과 불법파견 각종 소송에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달 4일 인터콘티넨탈호텔이 갑자기 헌법소원을 취하한 것과 관련해 노동계는 “귀족노조나 강성노조로 공격받기 쉬운 금속노조를 공격하려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인터콘티넨탈호텔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옛 파견법 직접고용 간주조항과 관련한 사건은 현대차 사건 2개만 남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인터콘티넨탈호텔과 현대차 사건에서 사용자측 대리인은 모두 김앤장이었다.

김앤장이 최근 현대차 관련 헌법소원에서 손을 뗀 사실도 미심쩍다. 2005년께부터 현대차 불법파견 관련 사건을 대리해 온 김앤장은 지난달 7일부로 대리인직을 사임했다. 대신 법무법인 화우가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올해 4월 임명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김앤장 근무경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와 법조계는 박 소장의 김앤장 근무경력을 이유로 옛 파견법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앤장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준비 중인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자문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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