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
라포르시안
편집국 부국장

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리추구 위주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는 공동기획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연속기고를 마련했다.<편집자>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사실은 얼마나 허술하고 엉망인지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게 했다. 지난 한 달간 거의 날마다 아이들의 주검을 건져냈다. 줄어드는 실종자수와 그만큼 느는 사망자수를 망연자실 지켜보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면서 우리는 거의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빠졌다.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 간 세월호 사고는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애도의 심정일 뿐이다. 우리를 트라우마에 빠지게 만든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고 살아왔던 공동체가 일순간에 붕괴되는 모습을 충격 속에서 지켜보는 것, 더는 재난적 상황에서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생겼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세월호보다 더 큰 비극을 초래할지도 모를 우려스런 일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투자활성화 대책이라는 명분으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규제완화 정책들 말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활성화와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허용 및 부대사업 범위 확대, 법인약국 등 규제완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필요한 규제는 암 덩어리이자 쳐부숴야 할 원수"라는 적개심마저 표출했다.

대통령의 엄포에 가까운 주문에 관련 부처들은 허둥지둥 앞뒤 재지도 않고 규제완화를 위한 법 개정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계가 파업까지 불사하며 반대한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허용과 부대사업 범위 확대는 국회의 법안심의조차 거치지 않겠다고 한다. 법 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법률전문가들의 지적에도 관련법 시행규칙 개정과 가이드라인 제정만으로 추진하겠다며 고집불통이다. 정부 부처의 눈과 귀는 오로지 대통령의 표정과 대통령의 말을 살피고 듣는 데 여념이 없다. 국민의 말과 표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정부가 직접 밝힌 것처럼 보건의료 분야 규제완화는 의료시장 확대와 새 일자리 창출이 주요 목적이다. 의료취약지 주민을 위한다는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는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조차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병원을 돈벌이 영리추구로 내몰 수 있는 의료법인 영리자법인과 부대사업 확대도 막무가내다. 병원을 편법적인 수익사업으로 내몰고, 외부자본의 투자 대상으로 전락시킬 게 뻔하다. 영리자법인과 부대사업을 통해 병원의 경영이 안정되고 수익이 생기면 시설과 인력에 재투자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는 농담에 가깝다.

시민·사회단체는 물론이고 의료전문가인 의사들마저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대한의사협회가 대정부 투쟁 구호까지 내세우며 끊임없이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반면 규제완화 정책으로 직접적인 수혜가 예상되는 의료산업체 종사자의 일방적인 주장은 대통령의 수첩에 빼곡히 메모가 됐다. 정부도 몸이 달았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규제완화 정책을 쏟아냈다. ‘대통령-정부부처-산업계’의 삼각 트라이앵글은 규제완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규제가 풀리면 아마도 자본과 시장만 자유롭고, 정작 병원과 환자를 옭아매는 진짜 규제는 그대로 남을 게 분명하다.

새 일자리 창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활성화 정책은 한계가 분명하다. ‘낙수효과’라는 말은 허울뿐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가 그것을 말해 준다. 보건의료 분야는 더욱 그렇다. 병원과 의료산업에서 새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면 규제완화가 아니라 규제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의료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 병원이 영리자회사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고 원격진료를 활성화하면 오히려 일자리는 줄어든다. 영리자회사를 통해 경영논리가 병원에 주입되면 인건비 절감에 눈독을 들일 테고, 원격진료는 동네의원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게 뻔하다. 일자리가 늘 여지가 없다.

오히려 병원이 충분한 의료인력을 갖추고 환자에게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제와 지원을 동시에 해야 한다. 지금도 간호인력이 부족해 아우성인데 영리자회사를 허용하고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한다고 간호인력이 충원될 리 만무하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 보장성 확대는 병원 문턱을 낮춰 의료서비스 이용을 활성화하고, 관련 의료산업의 성장을 이끈다. 올해 7월부터 노인에게 임플란트 보험 적용을 앞두고 국내 임플란트 생산실적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게 진짜 낙수효과다.

보건의료 정책은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다. 잘못 추진되면 언제, 어떤 식으로 수많은 국민의 목숨과 건강을 빼앗아 갈지 모른다. 세월호 사고처럼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의료의 특성상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에 위해를 가하더라도 그 징후를 눈치채기 힘들고, 그 폐해가 드러났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린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참담한 비극을 눈앞에서 확인해야 멈추려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문제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개선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