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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안전업무 노동자들이 던지는 경고] “세월호 선원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요”

기사승인 2014.05.26  06: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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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만 좇고 있는 안전업무 … “외주화·인력부족·경영성과 강요에 휘둘려”

불이 났다. 지난 2008년 여름. 인천국제공항 면세구역 2층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을 피하려다 난간에서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검은 연기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아수라장이었다. 산소호흡기의 공기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공항소방대 유상민(33·가명)씨는 용기를 냈다. 연기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화재는 큰 피해 없이 진압됐다. 그런데 유씨의 선배가 다리를 다쳤다. 회사는 산재보험으로 처리해 주지 않았다. “싫으면 그만두라”고 했다.

“목숨 값 ‘100만원’에 용기 내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유씨는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불을 끄는 일은 공군 소방대 출신인 그의 적성에 꼭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진짜 소방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유씨가 소속된 곳은 국내 1위의 소방엔지니어링 업체다. 개항 이후 줄곧 공항의 소방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회사는 소방대원들을 2년 계약직으로 고용한다. 다치면 치료비가 나오기는커녕 자칫 일 자체를 그만둘 수도 있다. 화재 진압 도중 숨져도 회사가 주는 돈은 100만원에 불과하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 누가 목숨을 걸고 일할까.

전체 208명 중 행정지원 등을 제외하면 실제 화재 진압에 투입되는 소방대원은 180여명이다. 이를 3조2교대로 운영하니 긴급 상황에서 동원되는 인력은 최대 60명이다. 저가낙찰 경쟁과 비용절감이 부른 결과다.

“60명도 서류상의 숫자일 뿐이에요. 큰 화재가 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죠.”

폭발물 앞 공항 특경대, 세월호 승무원과 다를까

2003년부터 인천국제공항 특수경비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서준혁(42·가명)씨. 두 달 후 그의 소속은 S사에서 ㅅ사로 바뀐다. 입사 후 소속이 바뀌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공항공사는 2~3년에 한 번꼴로 시설 전체의 보안·경비 업무를 담당할 업체를 재선정한다. 구역별로 나뉜 7~8개의 보안업체가 공항 전체의 안전을 관리한다. 공항의 국가보안시설 등급은 ‘가’급이다. 청와대와 같은 최고 등급이다. 그럼에도 △대테러 상황실 운영 △사고로부터 승객보호 △폭발물 반입 차단 등 모든 보안업무가 외주사에 맡겨져 있다.

서씨가 하는 일은 공항 외곽 11개의 보안초소에서 출입 차량과 인원을 통제하는 것이다. 무기·폭탄을 갖고 있거나 신원이 이상한 사람의 공항진입을 차단해야 한다. 초소와 공항 울타리 사이를 순찰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서씨는 “온 국민이 세월호 승무원들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토로했다.

“폭발물을 실은 비행기나 무기를 든 테러범이 눈앞에 있으면 과연 누가 목숨을 걸고 나서겠나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업체가 바뀔 때마다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고, 임금이나 휴식 얘기를 하면 해고되는데요.”

1천명 탄 KTX, 안전담당 승무원은 ‘1명’

“열차 안에 불이 나도 우리는 소화기를 쓸 수도 없고, 안내방송도 할 수 없어요.”

지난 22일 오전 서울역에서 만난 부산-서울행 KTX 승무원 김현정(35·가명)씨는 카드를 꺼내 보였다. 그가 소속된 (주)코레일관광개발이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급한 직무사고 대응 업무카드다. 요약하면 “열차 내 화재, 테러나 열차 탈선, 충돌사고 발생시 승무원은 승객들의 혼란을 방지하고 회사와 열차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라”는 것이다.

철도공사는 ‘외주 직원’인 승무원에게 안전업무를 맡기지 않는다. 철도공사의 ‘고속철도 대형사고 현장조치 행동매뉴얼’ 대응체계에서 승무원은 아예 빠져 있다. 위기상황 초동조치·보고·안내방송 등 모든 업무는 공사 정규직원인 열차팀장의 몫이다.

코레일관광개발 역시 승무원의 업무범위를 ‘승객 안내’로만 규정하고 있다. 관련 업무지시도 받지 말라고 한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KTX에서 기관사와 식음료 판매원을 제외한 승무원은 3명이다. 열차팀장 1명과 승무원 2명이 승객 1천여명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응 매뉴얼과 책임 소재는 분산돼 있다.

언젠가, 김현정씨가 밤기차를 탔을 때였다. 열차는 전원이 나간 채 30분쯤 멈춰 있었다. 놀란 승객들이 원인을 물었지만 김씨도 몰랐다.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열차팀장이 상황을 알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차량을 순회하다 문제를 발견해도 먼저 대처할 수가 없다. 전등이 부서져 있거나 승객이 흉기를 소지했다거나 해도 열차팀장을 부르는 게 전부다.

“대형사고가 나면 우왕좌왕할 거 같아요. 한 칸 승객을 대피시키는 데 10분에서 20분쯤 걸릴 텐데 승무원 2명은 너무 적죠.”

김씨는 세월호 선원들을 보며 “감정이입이 되더라”고 했다.

“그들이나 우리나 같아요. 정직원이 아니라고 안전교육도 못 받고, 더 오래 일하고 더 낮은 급여를 받고. 코레일관광개발은 자회사니까 책임을 나눠 지기 싫어해요. 우리더러 협조요청이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죠.”

그래도 김씨는 대형사고가 나면 필사적으로 승객들을 탈출시킬 생각이다.

“인간적 도리에 따른 것이지, 회사가 직업의식이나 자긍심을 길러 줘서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세월호 참사 이후 매뉴얼만 늘리고 인력은 그대로 … “못 지켜요”

22일 오후 서울 철도공사 승무사업소에서 정기 안전교육을 기다리고 있던 KTX 열차팀장 김영규(51)씨는 한숨을 쉬었다.

“공사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안전매뉴얼을 보강하고 교육을 강화하긴 했죠. 하지만 인력을 늘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사고가 나면 팀장 1명이 상황 파악·차내 안내방송·관제센터 보고·승객 대피 유도·승무원 안전 확보까지 다 책임지라는 게 현행 안전매뉴얼이다.

“혼자서 관제센터에 보고하는 동시에 직접 승객을 대피시키란 게 말이 됩니까? 오히려 매뉴얼이 승무원과의 공조와 빠른 대처를 어렵게 하고 있어요. 나중에 책임 소재를 추궁당하는 족쇄일 뿐입니다.”

철도노조 서울고속철도승무지부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2일까지 열차팀장들이 보고한 승강문 이상·누수 등 차내 고장사례는 1천900여건에 달했다. KTX 열차팀장 200여명이 참여한 ‘KTX 불량 현황조사’ 결과 3~4월 두 달간 KTX 동력전달장치인 트리포트 고장이나 화재 등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는 중대한 불량이 50건 발생했다. 객실출입문·방송장치 등 일반적인 불량도 131건이나 있었다.

“이런 고장들이 쌓여 대형사고가 되는 거예요. 차량 정비는 사고예방 차원에서 해야 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그때 고치는 식으로 일관하니 답답하죠.”

김씨는 “사실 KTX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제 일터의 치부죠. 하지만 이제 더는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왔다고 생각해요. 계속 이러다가는 제2의 세월호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피검자 눈치 보고, 영업하는 승강기 안전검사원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에서 일하고 있는 엄상기(37·가명)씨. 대학에서 안전공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째 승강기 검사업무를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건물의 관리인들은 기술원이 실시하는 안전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들에게 엄씨는 두렵거나 부담스런 존재가 돼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반대가 됐다. 엄씨가 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에서 경영성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엄씨가 일하는 기술원은 승강기 검사 실적이 주요하게 반영된다. 같은 일을 하는 안전행정부 산하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따라서 검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사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아니, 건물관리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해졌다.

실제 검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검사주체를 기술원에서 관리원으로 바꾸는 건물관리인들이 종종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공공기관의 물량경쟁이 부른 진풍경이다.

엄씨는 때로는 영업맨이 되기도 한다. 검사를 나갔다가 정기검사 시기가 다가오는 승강기를 발견하면 건물관리인에게 말한다. “검사 받을 때 됐네요. 저희한테 말씀하세요.”

그는 “우리가 검사를 신청하라고 해서 했는데, 제대로 검사하는 게 쉽겠냐”고 반문했다.

한국민간위탁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승강기 1만대당 불합격률은 2007년 1.26대에서 2012년 0.38대로 뚝 떨어졌다.

기술원과 물량경쟁을 하는 관리원은 2004~2007년 경영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늘어나는 승강기 검사 대수에 맞춰 인력을 늘린, 당연한 조치가 원인이었다. 때마침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이 나오면서 정원을 5.1% 줄였다.

결국 관리원의 직원 1인당 승강기 검사대수는 2008년 597.5대에서 2012년 741.3대로 급증했다. 기술원 역시 2008년 511대에서 2012년 615대로 늘었다.

두 기관의 인력부족과 비용절감은 도급·위촉 검사원의 증가로 이어졌다. 관리원의 도급직은 2008년 34명에서 지난해 69명으로 두 배가 많아졌다. 기술원은 지난해 검사인력이 부족하자 위촉 검사원 37명을 고용했다.

엄씨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작은 불량과 사고가 쌓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가승강기정보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승강기 1만대당 사고건수는 2005년 1.34대에서 2008년 4대까지 급증했다가 2012년에는 2.82대를 기록했다. 연평균 승강기 사고 사망자수는 2003~2007년 평균 11.4명에서 2008~2012년에는 12.4명으로 약간 증가했다. 중상자수는 33.4명에서 104.8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민간 외주업체 난립,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악몽’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그곳 직원들 90%가 복구명령을 어기고 도망갔다더라고요. 세월호 선원들처럼. 하지만 우리 동료들은 절대 안 그럴 겁니다.”

이태성(47·가명)씨는 한전KPS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다. 한전KPS는 국내에서 유일한 발전설비 정비전문 공기업이다. 이씨는 발전설비 중에서도 원자력발전 설비를 정비해 온 노동자다. 한전KPS의 정비기술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원전설비의 전부를 한전KPS가 정비하지는 않는다. 원전설비 정비공사의 발주처는 한국수력원자력이다. 한전KPS의 ‘갑’이다. 한수원은 한전KPS와 정비업무를 계약할 때 민간업체와의 컨소시엄 구성을 강제한다. 최소 1개의 민간업체를, 10% 이상의 정비업무에 참여시켜야 한다. 한수원이 한전KPS를 건너뛰어 민간업체와 직접 계약하기도 한다. 지난해만 해도 195곳의 민간업체가 원전설비 정비사업에 뛰어들었다.

“정비업무는 마음가짐이에요. 투자한 시간만큼 기계가 돌아가지요. 우리 직원들은 1년 내내 원전에서 상주하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민간 외주업체들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그만이잖아요.”

이씨가 경험한 민간업체들의 수준은 높지 않다. 한전KPS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계약기간 안에 정비를 끝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해당 업체가 기술력을 인정받아 다시 입찰에 성공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민간업체 육성’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쉽게 말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인력부족과 그에 따른 하청업체 증가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98년부터 2012년까지 한전KPS가 담당하는 원전수는 64.3%, 설비용량은 72.4% 늘었다. 반면에 인력은 12.9% 증가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으로 2009년부터 4년간 정원이 460명이나 줄었다. 이태성씨는 “현장에서 사람이 너무 부족해 일도 힘들고 인재가 우려된다”며 “정부가 예산을 늘려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전사고는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이 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민간기업이었다. 발전소가 폐쇄되는 것이 아까워, 초기에 바닷물을 냉각수로 투입하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 7~8차에 이르는 하도급 업체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거나 돈 계산에 바빴다. 결국 복구마저 늦어지면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공공운수노조·연맹 부설 사회공공연구원이 지난해 한수원·한전KPS(원전정비)·한전기술(원전설계)·한국원자력연료 노동자 1천77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6%의 노동자들이 ‘아웃소싱과 경쟁으로 인해 안전기술의 유지·발전이 저해된다’는 항목에 대해 “매우 그렇다”거나 “그렇다”고 답했다.

김학태·양우람·윤성희 기자
 

 “시민안전, 노동자가 최고 전문가”

‘노동자 조사위’ 구성 필요성 제기 … 서울시 노사민정 안전위 추진




세월호 참사 이후 노동자들이 시민안전을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각 분야의 안전실태와 대책까지 노동자들만큼 잘 아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그렇다. 철도를 포함한 운수 분야나 발전·화학물질 등 대형사고 위험이 높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곳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대책도 마찬가지다. 다만 경직된 조직문화와 입바른 소리를 했을 때 입게 되는 피해를 의식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자기 사업장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최근 이른바 ‘국민안전을 위한 노동자 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한 실장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이 조사를 하고 대책을 제안하는 것이 외부전문가·공무원들의 탁상공론식 대책보다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노동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안전을 위해 실제 노동자들이 나서고 있는 사례도 있다. 잦은 안전사고를 경험하는 서울지하철노조와 서울도시철도노조는 노조 내에 안전위원회를 설치해 활동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다루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는 그 역할이 다르다. 열차 안전사고에 대해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다.

나아가 각 사업장의 노사 안전위원회와 서울시 사회적 대화 기구인 서울특별시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서울모델) 차원의 ‘노사민정 안전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두 기관 노사는 서울모델 차원에서 안전위원회가 구성되면 적극 참여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오선근 서울지하철노조 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초부터 노사민정 안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는데, 좀 더 실행됐다면 최근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학태 기자


 

 통제·징계뿐인 한국 안전대책 … “소통하고 원인 찾아라”


시민안전과 관련한 사업장의 노동자 참여, 노사 또는 노사정 협의의 중요성은 조직문화 개선이나 안전 패러다임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통제와 징계 중심의 안전대책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이끌어 내는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일본철도를 주목할 만한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1987년 일본국철이 민영화해 분리된 JR동일본철도와 JR서일본철도는 극명하게 다른 안전정책을 펼쳐 왔다.

JR동일본철도는 88년 두 차례에 걸쳐 열차 탈선·전복사고가 발생하자 노사가 안전협의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사고 기관사가 지연운행에 따른 징계를 두려워해 과속하다가 발생한 사고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징계와 통제보다는 자발성·창의성·원인규명을 우선시했다. 노사가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대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요 시기마다 노사가 공동으로 안전선언문을 발표했다. 그 결과 지난 20여년간 민영화 전환 초기보다 사고가 70% 이상 줄었다. 동일본 지진 때에는 JR동일본철도 열차에 탑승하거나 역사에 있던 시민들은 한 명도 사망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안전매뉴얼을 뛰어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결과였다고 한다.

반면에 JR서일본철도는 여전히 징계와 통제 중심의 안전대책을 내세웠다. 2005년에는 107명이 숨진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가 발생했다. 지연운행을 한 기관사가 가혹한 징계를 피하기 위해 과속한 것이 원인이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고위험 산업의 안전 패러다임이 JR서일본철도와 유사하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승우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철도·원전·화학물질 설비 등 고위험 산업은 좋은 기술이나 통제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노동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이끌어 낼 때만이 안전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학태 기자


 

 안전매뉴얼은 ‘거품’ … “80%만 믿어라”


우리나라의 철도나 지하철의 안전매뉴얼은 허점이 많다. 인력부족 탓에 있는 매뉴얼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관리자 면피용이나 노동자 징계용으로 매뉴얼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시간이 갈수록 매뉴얼은 두꺼워지고, 자주 바뀐다. 매뉴얼 자체가 안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사회공공연구원이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한전KPS(원전정비)·한전기술(원전설계)·한국원자력연료 노동자 1천77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2.3%의 노동자들이 ‘절차서와 지침서가 원칙 없이 자주 바뀌는 것은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항목에 대해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JR동일본철도의 사례는 우리나라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다. 2만여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JR동일본철도 직원들은 승객들을 재빨리 고지대로 대피시켰다. JR동일본철도노조에 따르면 적어도 JR동일본철도의 열차를 탔거나 역사 안에 있던 승객들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JR동일본철도 노동자들이 안전매뉴얼과 다르게 행동했다는 사실이다. 매뉴얼대로라면 쓰나미가 몰려올 경우 승객들을 해발 200미터 이상 지역에 대피시켜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200미터 지역으로 이동해서는 들이닥친 쓰나미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안전매뉴얼에 나온 기준보다 높은 지역으로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사회공공연구원 관계자는 “안전사고라는 것은 기존 안전매뉴얼을 붕괴시키면서 발생한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며 “안전매뉴얼은 80%만 믿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JR동일본철도 노동자들과 같이 숙련성과 자율성에 기반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학태 기자

 

김학태 tae@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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