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세월호가족대책위 주최로 2일 국회에서 열린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 만들기 국제 심포지엄에서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이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는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규제완화 중단과 기업살인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총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주최한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 만들기 국제심포지엄’에서 국내외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이같이 주문했다.

“돈보다는 사람 존중받는 사회 만들어야”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4월16일로부터 231일째를 맞고 있지만 아직도 바다를 보며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며 “그럼에도 국민과 노동자들은 여전히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신 위원장은 이어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돈과 권력보다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라는,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관철시켜야 할 근본적인 가치를 되새기는 소중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씨랜드·해병대캠프 유가족들이 찾아와 ‘우리 때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고쳤더라면 세월호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며 “과거 대형참사에서 똑같이 보인 규제완화·민영화·외주화·비정규직화·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원인과 보상으로 사건을 끝내는 과정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야당이 새누리당을 뛰어넘지 못하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는 없다”며 “세월호 참사를 우리의 아픔으로 생각한다면 철저히 반성하고 전면적으로 항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명선 가족대책위원장은 개막 특별연설을 통해 “자식을 지키지 못하고 구조해 주지도 못한 부모이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고 304명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생명과 안전보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를 변화시켜 다시는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에도 규제완화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과 한국 사회에 던진 과제들’ 주제발표를 통해 “세월호 참사 원인으로 안전관련 규제완화와 안전업무의 외주화·민영화, 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지목된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 같은 안전 패러다임은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4·16 이후에도 서울지하철 추돌·고양시외버스터미널 화재·장성 요양병원 화재·강원도소방헬기 추락·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등 5건의 재난사고가 있었다. 모두 50명이 숨지고 373명이 다쳤다.

그 와중에 박근혜 정부는 규제완화를 밀어붙였다. 올해 5월 현재 규제정보포털(better.go.kr)에 올라온 규제정비종합계획를 보면 ‘규제개선’ 과제 852건 중 119건이 안전규제였다.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8월에 규제비용총량제를 골자로 하는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9월 정부합동으로 발표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기본방향 및 향후 추진계획’에는 안전산업 육성방안이 포함됐다. 안전인프라에 대한 민간투자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김철 연구실장은 “세월호 참사가 제기하는 과제는 무분별한 박근혜식 규제개혁을 폐기하고 안전업무 외주화·민영화를 중단하는 것”이라며 “기업과 기업 최고책임자에게 대형사고에 대한 살인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대형사고로 노동자와 시민이 죽을 경우 기업과 실소유주, 최고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함으로써 기업이 더 많은 안전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만 정부와 기업이 결탁해 만든 규제완화와 유연화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 고용형태 변화 맞춰 산재 대응해야”

산업재해와 규제완화를 막는 과정에서 노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상사고와 페리 여객선 참사 : 국제적 관점에서 본 산업재해의 원인과 효과’ 주제발표에 나선 데이비드 월터스 카디프대 교수는 “지난 30년간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대형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며 “민영화·외주화·아웃소싱·규제완화·고용불안·노조영향력 축소로 안전시스템이 더욱 파편화되고 이를 경고할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효력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월터스 교수는 이어 런던 올림픽공원 건설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규제당국과 노조·시공업체가 협력해 안전보건을 관리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기획 단계부터 개입했다. 그 결과 공사기간 중 단 1명의 산재사망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사고나 산재사망을 성공적으로 예방하려면 정책결정자와 규제당국의 반성과 재고가 필요하다”며 “노조가 참여할 때만이 안전보건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월터스 교수는 또 “전통적 노사관계에서 벗어나 고용형태 변화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며 “정규직만이 아니라 비정규직도 위험작업 거부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유가족·NGO와 연대해 자본이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오바 히루 국제공공노련(PSI) 도쿄사무소장은 ‘자유화가 운수·수도·의료부문 공공안전에 미치는 영향’ 주제발표를 통해 “자유화(규제완화) 과정이 책임을 분산시켜 안전체계를 파괴할 수 있다”며 “국가기관이 민간사업자를 규제하고 제재할 수 있는 만큼 권한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 규제완화는 오히려 부정부패를 부추긴다”고 우려했다.

아오바 소장은 “한국은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기업이 자신의 서비스와 관련해 공공안전을 책임지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며 “노동자와 소비자는 정치·법·사회 차원에서 공공안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법·제도 개선을 추동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살인법 재난예방 효과 있다”

기업살인법이 재난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안드레아 퍼트 캐나다노총 노동안전환경위원장은 “캐나다는 92년 웨스트레이 광산 참사로 광산노동자 26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2004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형법 개정)했다”며 “과실범죄에 대해 기업과 임원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넣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안전사고를 일으킨 사용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며 “산재사망은 범죄인 만큼 범죄로 다뤄져야 하며 최고경영자는 반드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제라드 아이어스 호주노총 건설산림광산에너지노조(CFMEU) 빅토리아지부 노동안전보건·환경 책임전문가는 “호주는 2004년 기업살인법(형법 개정) 시행에 따라 사용자나 고위관리자가 노동자 사망시 기업살인죄로 기소될 수 있게 됐다”며 “기업에 최고 125만달러 벌금형, 개인에 최고 25만달러 벌금형이나 25년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살인법이 기업이 안전을 확보하도록 억지력을 강화한다고 전문가는 진단한다”고 덧붙였다.

강문대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한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살인법 제정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며 “기업살인법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관심도 높아져 현재 3건의 기업살인법이 발의된 상태”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산업안전보건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의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안’,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다. 강 변호사는 “한국에서 기업살인법은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특별규정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업살인법상 처벌 대상에는 기업 책임자뿐만 아니라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 조돈문 사회공공연구원 이사장의 사회로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잉그리드 크리스텐센 국제노동기구(ILO) 산업안전보건 담당관이 주제발표를 했다. 김혜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심동진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사무국장·박흥수 공공운수노조 공공철도정책연구팀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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