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마필관리사노조 제주지부가 최근 조교사와의 노사갈등이 불거지자 2002년 파업 때 사용했던 걸개그림을 12년 만에 창고에서 꺼내 노조 사무실이 있는 제주경마장 한 건물 외벽에 걸었다. 지부 관계자는 "그만큼 노사갈등이 심각하고 조합원들의 위기의식이 강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봉석 기자

“12년 동안 대표단을 구성해 집단교섭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개별교섭을 하자고 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내년 2월에는 단체협약도 해지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단협이 해지되면 기본급 성격인 비경쟁성 임금과 성과급 개념인 경쟁성 임금 배분 비율이 7대 3에서 3대 7로 뒤바뀝니다. 조합원들의 위기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강태종 마필관리사노조 제주경마지부 비상대책위원장)

“기본급은 만들어 놓고 경쟁성과급을 줘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마사회가 제공하는 경마상금을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은 조교사나 마필관리사나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나 마사회 정책이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어요. 저희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한상배 제주경마장조교사협회장)

올해 5월부터 불거진 제주경마장 조교사와 마필관리사들의 싸움이 연말이 되도록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제주지부가 지난달 3일 파업을 결의할 정도로 갈등이 악화했다.

그런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은수미 의원과 박봉철 노조 위원장을 포함한 본조 관계자들이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2일 제주경마장을 찾았다. 제주경마장은 산업재해 발생건수가 지난해 11건에서 올해 22건으로 두 배 늘어나면서 을지로위가 ‘문제 사업장’으로 지목한 곳이다.

제주조교사협회, 집단교섭에서 개별교섭으로 변경 요구

제주경마장에서는 조교사 1명이 평균 5명의 마필관리사를 개별 고용하고 있다. 마필관리사 1명당 5.5두의 말을 관리한다. 이렇게 제주경마장에서는 20명의 조교사와 103명의 마필관리사, 550두의 말이 공존하며 살고 있다.

최근 들어 그 공존이 깨졌다. 노조 제주지부는 경마가 열리는 매주 금·토·일요일에 제주시 제주렛츠런파크 정문 앞에서 항의집회를 연다. 이달 2일과 9일에는 각각 제주시청과 제주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제주시민에게 관심을 구하는 한편 시와 도가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제주지역 조교사와 마필관리사들은 교섭방식 변경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이들은 2002년부터 노사 대표 3인을 선출해 집단교섭을 벌여 왔다. 제주지부가 그해 6월부터 34일간 파업을 통해 따낸 성과다.

그런데 제주조교사협회가 올해 5월 개별교섭을 하자고 제주지부에 통보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제주지부는 최근 2002년 파업 때 사용했다가 창고 속에 넣어 뒀던 걸개그림을 12년 만에 꺼내 마필관리사들이 사용하는 건물에 내걸었다. 강태종 비상대책위원장은 “단체협약 해지일(내년 2월)이 다가오면서 조합원들의 위기감과 투쟁의지가 고조되고 있다”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면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은수미 의원은 이날 제주경마장조교사협회를 찾아 한상배 회장과 이태용 부회장, 최기호 이사를 만났다. 은 의원은 “12년간 유지했던 집단교섭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노사관계의 근본을 흔들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며 “갈등을 확대하기보다는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달라”고 주문했다.

은 의원은 “조교사와 마필관리사가 서로 도와야 마사회를 상대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활동을 펼칠 수 있지 않겠냐”며 “경마장 산업재해를 줄이고 작업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국회도 돕겠다”고 제안했다.

“경쟁체제 강조하는 마사회, 노사갈등 개입 의혹”

그러나 조교사협회는 “조교사들이 더 이상 집단교섭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혀 협회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상배 회장은 “그동안 조교사들이 ‘대표단이 교섭한 사항을 내가 꼭 지켜야 하냐’는 불만을 쏟아 냈다”며 “올해는 대표로 나서겠다는 조교사조차 없어 개별교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 회장은 “고용승계 조항처럼 조교사들이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는 단협 일부 조항 개정에 노조가 동의한다면 조교사들을 설득해 다시 한 번 집단교섭에 나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은 의원은 특히 마사회 제주지역본부에 조교사·마필관리사 노사갈등을 조정해 달라고 당부했다. 은 의원은 이날 이수길 마사회 제주지역본부장을 만나 “제주경마장 조교사들이 집단교섭을 개별교섭으로 돌리려 하는 배경에 경쟁체제를 강조하는 마사회의 입장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며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제주마사회가 노사갈등 조정에 나서 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주마사회는 “조교사와 마필관리사의 노사갈등은 마사회가 개입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수길 본부장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마사회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생길 수도 있다”며 “그런 의혹을 해소하고 노사관계의 큰 틀이 깨지지 않도록 마사회가 조정할 방안이 있는지를 검토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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