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50여개 점포를 보유한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가 이달부터 시행한 새로운 임금체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직원들의 직급과 직군을 ‘밴드’로 통합한 뒤 밴드 단계에 따라 임금을 차등해서 지급하는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에서 정부가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기업들이 이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이마트가 도입한 직무·성과급제가 직원들의 승진 가능성과 임금인상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마트가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주장도 잇따르는 실정이다. 회사측이 해당 노동자들의 동의 절차를 생략해 근로기준법상 불이익변경 절차를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이마트 직무·성과급 '승진 사다리' 끊나

서비스연맹·이마트노조가 참여하고 있는 '반윤리 인권침해 노조탄압 선도기업 이마트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마트의 신인사제도는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핵심 내용인 임금체계 개편을 수행하기 위해 노동자 임금을 착취하고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겠다는 부당한 제도”라며 “최근 비자금 의혹으로 압수수색까지 당한 신세계그룹이 정부의 잘못된 노동정책을 솔선수범하면서 선처를 비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이마트는 이달 1일부터 직무·성과급제가 포함된 신인사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마트의 2012년 인사전략 문건에 따르면 이마트는 글로벌 유통업체인 코스트코의 운영방식을 본뜬 인건비 절감원칙을 세운 바 있다. 주요 내용은 △고급직화가 없는 인사시스템 △매출에 연동한 인원수의 변동 운영 △성과급제도 미시행을 통한 인건비 감소 등이다.

한마디로 고직급 승진 가능성을 차단해 장기근속자 자진퇴사를 유도함으로써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저변에는 저임금 방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마트 신인사제도의 핵심인 직무·성과급제는 직군·직급·직책 같은 조직의 골격을 ‘밴드’라는 새로운 형태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통합 대상은 4년제 대학 졸업 이상 공채 출신인 ‘공통직’과 초대졸 이상 입사자로 구성된 ‘전문직1’ 직군이다. 이들을 하나의 밴드로 묶어 관리하는 방식이다.

동일 밴드에 묶인 직원 가운데 인사고과점수가 높은 직원은 관리직으로 구성된 상위 단계 밴드로 진입한다. 승진에서 미끄러지면 하위 단계 밴드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데, 이때 임금은 물가인상분 인상을 제외하면 사실상 동결된다.

공대위는 “기존에는 직군전환이나 직무승격·직책승진을 통해 임금상승 기회가 주어졌다면, 신인사제도하에서는 상위 밴드에 진입하는 것 외에는 임금상승 기회가 봉쇄된다”며 “극히 일부 노동자만 직무평가에 따라 상위 밴드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 노동자가 저임금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수찬 이마트노조 위원장은 “밴드와 밴드 사이의 임금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하위 밴드에 남겨진 노동자들은 다른 직업을 찾아 이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결원이 발생한 자리는 다시 저임금 노동자로 채우면 그만이라는 것이 이마트의 저임금 인사관리정책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노동소득분배율이 80년대 수준으로 회귀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국내 굴지의 대기업마저 저임금 정책 실현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노조 "취업규칙 무효" 가처분 신청

이마트가 신인사제도를 도입하려고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조치는 근로조건이 저하되는 만큼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근기법상 불이익변경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마트에는 공통직과 전문직1 외에 ‘전문직2’라는 또 다른 직군이 있다.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 당시 정규직으로 전환된 계산원들이 여기에 속한다. 2013년 불법파견 논란이 불거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 계산원 1만여명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마트 전체 직원 2만8천여명 중 1만7천여명을 차지하는 최대 직군이다. 이마트는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서 이들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김하나 변호사(해우 법률사무소)는 “전문직2 직원 중 일부는 이마트가 시행하는 잡포스팅 제도에 의해 직문직1 직군으로 전환될 수 있다”며 “따라서 진문직2에 속하는 계산원들도 취업규칙 변경 동의주체가 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근로자 과반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한 근기법에 위배된다는 얘기다. 공대위는 이날 서울동부지법에 신인사제도가 포함된 취업규칙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한편 회사측 관계자는 “신인사제도는 정년연장에 따른 고용안정화 방안으로 추진된 것”이라며 “직군 통폐합을 통해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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