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용자가 현혹되기 쉬운 속설이 하나 있다.

“노조가 생기면 기업이 망한다. 아니, 노조가 없어져야 기업이 산다.”

무노조를 넘어 비노조를 지향하는 사용자들이 주술처럼 외우는 문장이다. 기업의 생사는 노조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이 아님에도 노조를 몰락의 요인처럼 여기는 태도다. 노조는 기업 경영의 걸림돌처럼 치부된다. 이는 노조 무시보다 증오에 가깝다.

이런 반노조관을 가진 사용자의 기업에 노조가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용자는 노조를 인정하고 동반자적 경영으로 나아갈까. 이런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용자를 바라지만 현실에선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두 갈래다. 노조를 없애거나, 공장폐쇄 후 사업장을 이전하는 것이다. 노사 간 공존보다는 배제다. 뿌리 깊은 반노조주의는 결국 사람마저 잡는다. 최근 두 노조 간부의 죽음은 바로 그 예다.

고 양우권 포스코사내하청지회 EG테크분회장은 지난 2006년 포스코 사내하청회사인 EG테크에 노조 깃발을 꽂았다. 공교롭게도 EG테크는 박근혜 대통령 동생 박지만 회장이 이끄는 EG그룹의 계열사다. 포스코는 대표적인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는 철강 대기업이다. 포스코는 사내하청회사에 노조가 생기면 도급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에 따라 EG테크는 신생 노조를 무력화하려 했다. 노조 간부 회유→분회장 징계 해고→조합원 탈퇴와 새 노조 설립→노조 해산의 수순을 밟는 방식이다. 실제 EG테크분회는 설립된 지 3년 만에 조합원 53명 중 50명이 탈퇴했다. 양 분회장도 2011년 회사측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홀로 분회를 지켰던 양 분회장은 법정싸움을 이어갔고, 대법원은 지난해 5월 부당해고로 판결했다. 하지만 고인은 일터인 광양제철소엔 돌아가지 못했고, CCTV가 감시하는 공장 밖 사무실에 격리됐다. 이에 양 분회장은 죽음으로 항의했다.

양 분회장이 고립과 감시에 시달렸다면 고 배재형 전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은 ‘손배가압류’위협에 직면했다. LCD 제조업체 하이디스테크놀로지는 ‘기술먹튀’ 의혹이 제기된 회사다. 비오이그룹과 이잉크사는 특허기술을 유출할 목적으로 하이디스를 인수한 뒤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실제 비오이그룹이 2006년 특허기술을 유출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대주주인 이잉크사도 기술유출을 위해 하이디스를 고사시킨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이디스는 지난달 1일 전체 직원 377명 중 8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하이디스 직원 250명은 희망퇴직을 했다. 현재는 하이디스는 특허 관리와 영업직 그리고 공장시설관리팀 인력 30여명만 근무하고 있다. 하이디스분회는 최근 공장폐쇄와 특허기술 유출 의혹을 제기하며 대만 이잉크사를 항의 방문했다. 배 전 지회장은 지난 1일 노동절 집회 참여를 유도했는데 때마침 조합원들이 자리를 비운 공장 설비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회사측은 “무단 휴무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신청하고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하겠다”며 “(그게 싫으면) 전 직원 희망퇴직을 수용하라”고 배 전 지회장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노조 간부의 죽음은 사용자의 반노조주의가 부른 전형적인 참사다. 복수노조 시대가 개막된 이래 반노조를 넘어 비노조를 꾀하는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다. EG테크와 하이디스테크놀로지는 전형적인 사례다. 유서를 보면 고인들은 노조 간부를 찍어 내려는 회사측의 행태를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고인들은 개인적인 사유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닌 셈이다. EG테크와 하이디스테크놀로지는 고인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가 고인들의 극단적 선택을 방치한 것이다. 양 분회장은 공장 밖 사무실에서 고립되고 감시받는 처지였다. 이것은 사용자가 법원의 복직 명령을 이행하는지 강제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악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양 분회장은 “새가 되어서라도 공장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배 전 지회장도 특허기술 유출을 막고, 회사를 정상화하려 노조 활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고인에게 돌아온 것은 손배가압류 위협이었다. 특허기술 유출을 막는 일이 노동자만 잘 살자고 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노조를 배제하고 먹튀하려는 해외자본에 맞서는 것은 노조 간부에게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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