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계가 내년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시급 1만원을 내걸었다. 주 40시간(월 209시간) 기준으로 월급 209만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5천580원이다.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한 달 100만원 남짓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을 만나 가계부를 들여다봤다.<편집자>

여기 아주 평범한 30대 중반 남성이 있다. 직장인이자 두 딸을 둔 가장이다. 첫째가 다섯 살, 둘째는 돌쟁이다. 애들이 어려 아내가 맞벌이에 나서기도 어렵다. 가난하게 시작한 결혼생활, 부모님께는 용돈 한 번 못 드렸다. 처가에 가서도 기가 죽는다.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는 동서들이 장인·장모께 내미는 두께가 다른 돈봉투, 급이 다른 선물들을 보면 저절로 비애가 든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 대가로 받은 훈장이라고는 도무지 사라질 줄 모르는 눈 밑 다크서클뿐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대형마트 입사 8년차 정규직 선임 최대영(35)씨 얘기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최씨는 졸업 후 서른 곳에 달하는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오라는 곳은 없었다. 면접에서 떨어지고 비슷한 처지의 동기들과 소주잔을 부딪치며 눈물바람을 하던 2008년의 어느 날.

“멀쩡하게 대학까지 보내 주신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마냥 노느니 뭐라도 해 보자는 생각으로 서울 문래동에 있는 대형마트에 아르바이트로 들어갔어요. 빠릿빠릿하게 일했더니 선임들이 저를 좋게 본 모양인지 ‘파트타이머 담당’을 시켜 주더라고요. 파트 담당에서 잘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알바 6개월 만에 면접을 보고 파트 담당이 됐다. 뭐든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는 몰랐다. 무료노동 착취의 잔혹사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제가 입사한 2008년은 마트업계가 한참 커지던 때예요. 동네마다 경쟁적으로 새 점포가 들어섰죠. 그런데 인력이 부족했어요. 저는 파트 담당일 뿐이었는데, 선임이 해야 하는 상품 발주업무까지 떨어졌죠. 휴무도 없이, 일주일에 한 번꼴로 밤샘업무를 해 가며 미친 듯이 일했어요. 명절 같은 빅시즌 때는 출근에서 퇴근까지 50시간을 일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파트 담당 1년3개월 만에 선임이 됐다. 남들은 3~4년씩 걸리는 일이다. "쟤 점장 친척이야?" 동료들의 시샘도 받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월급이 20만원 올랐더라고요. 월급명세서를 보는데 초과근로수당이 0원이었어요. 그때의 허무함이란…. 당시 못 쉬고 일하느라 생긴 다크서클이 지금까지 없어지질 않아요.”

 

최저임금과 무료노동의 늪

초고속(?) 승진으로 선임이 된 최씨가 2010년 당시에 받은 월급은 120만원.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올해 현재 최씨의 월급은 141만원이다. 시급은 5천850원, 법정 최저임금(5천580원)보다 270원 많다.<표 참조>

급여 수준 자체도 낮지만, 장시간 노동의 대가가 제대로 지불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노동조합 간부이기도 한 최씨는 현재 회사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무료노동’으로 치부되는 초과근로수당을 되돌려 달라는 것이다. 지난해 1심 재판부로부터 일부승소 판결도 받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최씨가 출퇴근시간 기록용으로 사용한 ‘야근시계’라는 애플리케이션의 기록내용을 증거로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연장근로에 대한 사용자의 승인을 얻지 않았다거나 연장근로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실제 연장근로한 시간에 대해서는 그에 상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가 인정한 최씨의 한 달 평균 초과근로시간은 44.9시간이다. 매달 45시간을 공짜로 일해 줬다는 얘기다. 어디 최씨뿐일까.

“회사는 내부 시스템에 직원 스스로 초과근로시간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에요. 그런데 누가 그걸 쓰겠습니까. 승진하려면 점장이나 주임 눈에 들어야 하는데….”

최씨의 회사는 연봉제를 시행하고 있다. 관리자들이 매기는 인사고과 점수가 임금과 승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임금 구조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 승진인 상황에서, 회사에 초과근로수당을 따박따박 청구할 수 있는 강심장은 많지 않다.

회사를 옮길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 아니 유통질이다. 경쟁업체에 가더라도 임금은 거기서 거기다. 소위 ‘유통 빅3’로 불리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의 전국 점포수는 380여개. 380여개의 대단위 최저임금 사업장이 동네마다 하나씩 들어서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중소기업이 다 망한다는 경영계 주장은 엄살에 가깝다.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 매장 같은 국내 주요 최저임금 사업장은 재벌 대기업 소유다.

가족 위해 일하지만 '가족이 없는 삶'

“제가 번 돈 140만원, 아내가 받는 실업급여 120만원으로 빠듯하게 살고 있어요. 7월부터는 실업급여도 끊기고요. 당연히 많은 걸 포기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로망이 하나씩 있잖아요. 저는 하얀 태권도 도복을 입고 노란색 띠를 리본 모양으로 맨 우리 애들을 상상하면 너무 행복해요. 지금 벌이로는 힘들죠. 애들 데리고 키즈카페라도 한 번 가면 4만~5만원이 훌쩍 나가는데, ‘둘째 분유값에 보태는 게 낫지’ 하는 생각에 못 가겠더라고요.”

지금 이직을 하더라도 갈 곳은 뻔하다. 경쟁업체는 임금수준이 비슷해 갈 필요가 없고, 중형마트에 가면 돈은 더 받을 수 있지만 근무시간이 늘어난다.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은 이자만 내고 있는 전세자금 대출원금을 상환해야 할 때쯤, 진지하게 이직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가 남들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들과 아름다운 삶을 키워 가기 위해서잖아요. 최저임금이 보통사람이 가정을 꾸리고 유지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뭐랄까. 죽지 않을 정도만 주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세금을 내야 이 사회가 유지되니까, 국가가 최저임금을 통해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죠.”

가족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꼽는 최씨. 그러나 그는 스스로의 삶을 "가족이 없는 삶"이라고 불렀다. 최저임금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하면 할수록 가족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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