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직업병에 걸리면 사용자가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사용자가 작업장 유해물질이나 위험한 환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남영전구 광주공장 철거 과정에 투입된 뒤 수은중독 증세를 보이는 하청노동자들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공장 안에 잔류수은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하청노동자를 투입한 남영전구측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집무규정만 적용해도 남영전구 대표자를 구속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부 규정상 '중대재해'=26일 고용노동부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 20~22일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진행된 근로감독에서도 이 부분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남영전구가 공사현장에 투입된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에게 안전·보건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는지 여부(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5항)에 대한 중점조사가 이뤄졌다. 광주노동청 관계자는 “조사 결과 남영전구의 위법사실이 드러나 엄중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엄중 조치의 정도가 엄중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안전·보건정보를 고지하지 않은 대가는 ‘1천만원 미만 벌금’ 또는 ‘1년 미만 징역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영전구 매출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730억원대에 달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수은중독 의심자가 21명이나 되는 만큼 대형 산재사고가 우려되는데도, 정작 남영전구측은 벌금을 납부하는 선에서 면죄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남영전구측이 공장 철거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긴 상태에서 사고가 벌어졌다. 실질적 책임자인 남영전구는 뒷전으로 빠진 채 애먼 하청업체들만 처벌받을 우려도 있다. 남영전구에 실질적 책임을 묻는 방법은 없을까.

◇대법원도 발주처 안전관리의무 인정=현행 노동부 근로감독관집무규정(산업안전보건)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2조1항에 규정된 재해유형을 "조사가 필요한 중대재해"로 해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 등이다. 노동부 규정대로라면 이미 2명의 노동자가 심각한 수은중독 증세를 보이며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확인된 수은 노출자가 21명이나 되는 남영전구 사건은 중대재해에 포함될 여지가 크다.

이와 함께 철거현장에 투입됐던 노동자들은 “작업 당시 직접 수은에 노출됐고, 수은 일부를 공장 바닥에 매립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 “작업현장 배기구가 인근 식품공장 쪽으로 설치됐고, 대기에 포함된 수은이 주변으로 날아갔을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작업현장에 있던 노동자는 물론이고 인근 사업장 노동자들도 수은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명근 공인노무사(광주광역시노동센터)는 “광주노동청은 노동자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즉각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제51조 및 근로감독관집무규정 제27조6항에 따라 남영전구 광주공장과 주변 사업장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광주노동청이 작업중지 명령이라는 전격적 조치를 내리더라도, 남영전구측이 받는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 남영전구 광주공장은 형광등 생산을 중단한 상태이기 때문에 작업중지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크지 않다

광주지역의 한 산업안전 전문가는 “남영전구 사태가 알려진 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광주노동청의 근로감독까지 진행됐는데도 정작 남영전구측은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번 사태로 남영전구가 입는 실질적 피해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남영전구 대표이사를 비롯한 최종 책임자에 대한 구속수사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남영전구는 공장 내 잔류수은 존재 여부를 하청노동자에게 알리지 않았고, 하청노동자들에게 수은중독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철거공정 마무리 과정에서 잔류수은을 매립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는 근로감독관집무규정 제32조의 구속영장 신청기준인 △재해가 예견되는 충분한 징후가 있음에도 작업중지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를 위반해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경우에 해당한다.

신명근 노무사는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2013년 여수산단 대림산업 폭발사고와 관련해 대법원은 공사 발주사인 대림산업이 하청노동자에 대한 산업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며 “노동부는 하청노동자와 인근 사업장 노동자까지 위험에 빠뜨린 남영전구 사업주를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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