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금융노조

"말할 수 없이 비참하다. 탐욕스러운 씨티자본에 맞서 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대구 영업지점 A씨)

17일 오전 칼바람 속에서 서울 중구 다동에 위치한 씨티은행 본점 앞으로 결연한 낯빛의 노동자 17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새벽차를 타고 전국에서 올라온 사무금융노조 한국씨티그룹캐피탈지부(지부장 한주명) 조합원들이다. 이틀 전 기습적으로 발표된 아프로서비스그룹으로의 매각 소식을 접한 조합원들은 이날 하루 일손을 놓고 상경했다.

조합원들은 대주주인 씨티은행과 씨티그룹캐피탈 경영진에게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직원들에 대한 고용안정 내용을 논의해 보자던 회사가 교섭 중에 한마디 통보도 없이 주식 전량을 팔아 치워 버렸기 때문이다. 한 조합원은 "지부와 충분히 협의한다더니 뒤에서 아프로서비스그룹에 우리를 팔아 버렸다"며 "글로벌기업이라는 것을 내세우던 씨티그룹이 할 짓이냐"고 분개했다. 지부는 씨티은행과 금융위원회 앞에서 잇따라 규탄집회를 열었다. 조합원총회도 개최했다.

◇노사 협상 중 기습 매각=씨티은행은 지난 15일 씨티그룹캐피탈 주식 전량을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매각은 당국의 승인을 거쳐 내년 1분기에 마무리된다. 이달 1일에는 씨티그룹캐피탈이 보유하던 무담보개인신용대출채권 2천130억원어치를 아프로서비스그룹 계열사인 OK저축은행에 2천252억원을 받고 매각하기도 했다.

씨티은행 이사회는 10월 초 씨티그룹캐피탈지부와의 합의를 조건으로 아프로서비스그룹으로의 매각을 승인했다. 그러나 노사 잠정합의문이 고용안정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씨티은행과 아프로서비스그룹과의 매각협상도 마무리되지 못했다.

이에 씨티은행과 씨티그룹캐피탈은 "매각이 안 되면 청산하겠다"며 지부를 압박했는데, 뒤로는 매각 절차를 밟아 나간 것이다.

한주명 지부장은 "회사의 일방적인 매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매각대금과 수익은 챙기면서 회사를 성장시킨 조합원들의 생존권은 나 몰라라 하는 씨티자본의 독단과 횡포를 좌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 지부장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지부에 직원 203명 중 80명은 퇴직, 나머지 123명은 아프로서비스그룹으로 고용승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매수 주체를 밝히지 않아 고용이 승계되는 직원들이 OK저축은행·러시앤캐시·원캐싱·미즈사랑 등 10개나 되는 아프로서비스그룹 계열사 중 어느 곳에서 근무하게 될지 오리무중인 상태다. 한 지부장은 "직원들을 각 계열사로 뿔뿔이 흩어 놓고 노조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라며 "고용이 승계되더라도 불안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지부는 전날 밤 9시께 씨티은행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씨티은행 직원들 "남의 일 아냐"=이날 집회에는 금융노조 씨티은행지부(위원장 김영준) 조합원들도 참석했다. 천막부터 난방기구까지 농성에 필요한 물품을 전폭 지원했다. 박재열 지부 조직부위원장은 "씨티은행지부 전 조합원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약속했다.

씨티은행지부가 씨티그룹캐피탈지부의 투쟁에 힘을 싣는 데에는 "남의 일이 아니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캐피탈 매각을 필두로 씨티은행의 한국 철수가 이미 시작됐는데, 최근 은행측이 내놓은 점포전략이 이를 뒷받침하는 징후라는 게 씨티은행지부의 설명이다.

씨티은행은 지난달부터 각 지점들을 모델Ⅰ·모델Ⅱ·모델Ⅲ로 나눠 특화했다. 모델Ⅰ은 고액 자산가를 상대하는 자산관리 점포로, 모델Ⅱ는 개인사업자를 상대하는 점포, 모델Ⅲ는 일반 지점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은행은 모델Ⅲ로 분류된 46개 점포에서 방카슈랑스·대출·펀드 같은 이른바 '돈이 되는' 세일즈 영업을 떼어냈다.

씨티은행지부 관계자는 "46개 점포의 수익을 악화시켜 나중에 구조조정 빌미로 삼으려는 전략"이라며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가볍게 한 뒤 매각해 한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려는 시나리오"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조만간 구조조정이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에 캐피탈 투쟁에 연대하면서 은행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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