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노동현안이 법원에 의해 규율되는 이른바 노동사건 사법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집단적 노사관계와 개별적 근로관계에 영향을 미칠 만한 굵직한 노동사건이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에게 불리한 사건이 대부분이다. 노사 자치를 존중하고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관계법을 해석하는 사법부의 잣대가 갈수록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매일노동뉴스>가 올해 주목할 만한 노동사건을 짚어 봤다.

‘통상임금 신의칙’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론은?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또다시 통상임금 사건을 주무르고 있다. 인천 소재 시내버스업체 시영운수의 통상임금 사건이다.

갑을오토텍 사건의 쟁점이 통상임금 ‘고정성’이었다면 시영운수 사건은 ‘신의성실의 원칙’이 핵심이다. 통상임금 사건에서 신의칙은 “회사가 어려우면 소급분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지급 예외조건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정성’이라는 까다로운 요건을 인정받아 통상임금 범위가 늘어나더라도, 법원이 “회사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해 버리면 소급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달 13일 부산고등법원이 내놓은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판결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예고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현대중공업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만, 회사가 과거 3년치 소급분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근 조선업종 불황에 따른 현대중공업 실적 악화를 이유로 현대중공업노조의 소송 제기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노조쪽 법률대리를 맡은 윤인섭 변호사는 “현대중공업은 4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고도 최근 수년간 조선업종 불황을 이유로 임금인상률을 최소화했다”며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미지급 수당에 가산할증률을 적용하면 2조3천억원인데, 노조는 가중치를 제외하고 법정수당 6천300억원만 청구했는데도 법원이 이를 배척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잣대라면 앞으로 통상임금 소급분을 받을 수 있는 노조나 노동자는 없을 것”이라며 “벌써부터 대법원과 하급심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휴일근로 가산수당 중복할증 사건’ 대법원 판결 주목

대법원 전원합의체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노동사건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2010년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조직형태변경 결의 적법성을 따지는 내용이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를 약화시킬 목적으로 노조 하부조직인 지부·지회가 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하는 총회를 열어 가결한 경우 법적효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쟁점이다.

2010년 당시 발레오만도(현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회사측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공모한 뒤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동했다. 그 일환으로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가 이뤄졌다. 일종의 산별노조 무력화 작전이다. 실제 기존 노조는 크게 약화됐다. 1·2심 재판부는 “발레오만도지회는 금속노조 하부기구에 불과하다”며 독자성을 부인했다. 지회가 사단성(단체성)은 물론이고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지회가 노조 조직형태변경 결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선고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만약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하급심 판단을 뒤집을 경우 산별노조 지부·지회의 노조 탈퇴가 가능해진다. 산별노조 확대·강화를 주요한 조직전략으로 채택한 노동계에 미치는 타격이 크다.

휴일근로 가산수당 중복할증 관련 대법원 판결도 관심이 모아진다. 경기도 성남시와 안양시 환경미화원 등이 제기한 휴일·연장근로수당 지급 청구사건을 비롯해 현재 대법원에 6건의 관련 소송이 계류 중이다. 이 가운데 5건에서 1·2심 재판부는 “휴일근로가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이들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시점과 내용은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노동 5법 중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 여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대법원이 하급심 취지를 인정한 판결을 내놓으면 주당 노동시간 한도가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드는데, 현재 발의된 근기법 개정안은 주당 노동시간(52시간)에 특별연장근로시간(주당 8시간)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법원이 하급심을 따르느냐, 개정안을 따르느냐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휴일근로 가산수당이 달라진다. 하급심을 따르면 휴일에 일한 노동자에게는 통상임금의 200%(통상임금 100%+휴일근로수당 50%+연장근로 가산수당 50%)를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 개정안에 따르면 휴일근로인 특별연장근로 8시간에 대해 통상임금의 150%(통상임금 100%+연장근로수당 50%)만 급여로 지급해도 된다. 똑같은 휴일근로인데 받는 돈이 달라진다.

현재로서는 대법원 판결을 예단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대법원이 새누리당 개정안에 입각한 판결을 내릴 경우 근기법이 정하고 있는 초과근로수당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점이다. 사용자에게 금전적 부담을 안겨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자는 취지가 빛바래기 때문이다.

노조활동에 대한 사법부 시각은?

노조활동 관련 사건으로는 법외노조 통보 효력을 다투는 전교조 사건과 쟁의행위 목적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MBC 파업 사건, 업무방해 여부에 대한 철도노조 파업 사건이 눈에 띈다.

해직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노조규약 부칙을 시정하라는 2010·2012년 노동부 시정명령에서 시작된 전교조 법외노조 공방이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부는 전교조가 시정명령을 거부하자 2013년 ‘법상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전교조는 이와 별도로 법외노조 통보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신청을 냈고, 파기환송 끝에 인용돼 현재 합법노조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1일 본안소송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전교조는 “해직 조합원 9명을 이유로 조합원이 6만명이나 되는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통째로 부정하는 정부 결정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현행법이다. 교원노조법 제2조는 “교원이란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원을 말하며 해고된 사람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이 있을 때까지만 교원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5월 해당 조항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교원의 노조활동 범위를 제한한 교원노조법은 국제사회 조롱거리가 돼 왔다. 전교조가 지난해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교원단체연맹(EI) 총회에 참가한 58개국을 조사한 결과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는 이유로 ‘노조 아님’ 통보를 한 나라는 한국과 마다가스카르공화국뿐이다. 해직교사의 교원노조 가입을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과 리투아니아·라이베리아가 전부다.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사법부 시각을 보여 주는 판결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2년 진행된 MBC 파업 사건의 쟁점은 쟁의행위 목적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다. 우리나라 법원은 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 요건을 주체·절차·목적·방법 등 네 가지로 구분해 살피고 있다. 쟁의행위 목적에 대해서는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서 사용자가 처분 가능한 사항이어야 하며 집단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2012년 파업 당시 “방송 공정성 확보”를 가장 중요한 요구로 내걸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MBC 사측이 법과 협약에 의해 인정된 공정방송 의무를 위반했다”며 “이를 고치기 위한 목적의 쟁의행위는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1심 재판부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확정할지 관심이 쏠린다.

쟁의행위의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를 다투는 철도노조 파업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달 15일 서울고등법원은 2013년 최장기 철도파업을 주도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전국철도노조 간부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1심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1·2심 재판부는 2011년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들어 파업이 업무방해죄 요건인 ‘전격성’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 갑자기 진행된 파업이 아닌 경우 업무방해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철도노조가 충분히 파업을 예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철도공사측이 대체수송인력 같은 대비책을 마련할 여력이 충분했다는 이유다.

산별협약 효력에 대한 유성기업 노사의 법정 공방도 팽팽하다. 유성기업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의 파업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지회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유성기업 노사는 과거 금속산업 노사 중앙교섭에 참여해 “노조 쟁의행위를 이유로 손배·가압류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협약에 서명한 바 있다. 법원이 당시 협약의 효력을 인정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이 사건은 1심 재판 심리가 진행 중이다.

제조업에서 철강·서비스업으로 확대된 불법파견 사건

불법파견 사건 법원 선고도 잇따라 예고돼 있다. 21일에는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한국지엠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2심 판결이 나온다. 27일에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 판결이 내려진다.

현대차 사건은 2014년 9월 서울중앙지법이 인정한 현대차 불법파견의 범위가 다시 한 번 인정될지, 아니면 원심보다 협소한 판단이 나올지가 쟁점이다. 원심은 현대차가 완성차 한 대를 만들기 위해 부품을 만들고, 조립하고, 색칠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모든 공정에 불법적으로 파견노동자를 투입해 왔다고 판단했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장 안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차 지시를 받으며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아 왔다는 것을 인정한 판결이다.

올해는 철강업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제기와 관련한 선고도 이어질 전망이다. 다음달 3일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같은달 17일에는 현대제철 순천공장(옛 하이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소송 2심 판결이 나온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조만간 법원에 소송을 낼 예정이다. 수리서비스 업종인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진행 중인 관련 소송의 결과도 주목된다.

쌍용차·콜텍 정리해고 파기환송심, 해고자들은 어디로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벌써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우울할 미래를 보여 주는 두 개의 판결도 선고를 앞두고 있다. 쌍용자동차와 콜텍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 판결이다. 두 사건 모두 대법원까지 갔다가 고등법원으로 되돌아온 사건이다. 미래의 경영상 위기까지 정리해고 요건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수많은 정리해고 노동자들에게 좌절을 안겼다.

한편 쌍용차·콜텍 판결이 노동자 집단해고에 대한 것이라면 앞으로는 노동자 개별해고 사건이 급증할 것으로 관측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일반해고 가이드북 초안과 취업규칙 변경지침 개정안은 대부분 사업장에서 정부 행정지침 그 이상의 효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90%에 해당하는 미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부가 지침을 실행할 경우 미노조 사업장에서는 강행법규에 맞먹는 효력을 낼 것이란 설명이다.

송 변호사는 “노조가 있는 10%의 사업장도 기존 단체협약상 노동자 보호조항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며 “어떤 사안에 대해 사후적 판단을 주로 하는 법원의 속성에 비춰 볼 때 향후 법원 판결이 정부 지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기울 여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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