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주최로 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파견법 반대 기자회견에서 안산지역 파견노동자 이영숙씨가 증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일본 도쿄신문은 18일 일본노총(일본렌고)이 지난해 10월 민간기업 비정규직 2천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 내용은 충격적이다. 비정규직 10명 중 2명꼴로 “생활고로 식사 횟수를 줄였다”고 답했다. “(아파도)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했다”는 응답과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답변도 각각 13%에 달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상대임금 비율은 2011년 56.4, 2013년 56.1, 2014년 55.8, 지난해 54.4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비정규직 사회보험 가입률은 30~40%에 불과하다.

특히 제조업 사업장에 불법적으로 투입되는 파견노동자들은 차별과 저임금·고용불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파견직 투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사문화된 지 오래다.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거리낌 없이 불법이 행해진다.

◇눈 가리고 아웅 '노동부 파견 조사'=제조업 불법파견 노동자들이 이날 오전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주최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지난 13일 대국민 담화에서 “기간제법 대신 파견법이라도 통과시켜 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가 산업현장에 몰고 올 부작용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경기도 안산지역 제약업체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다 지난해 8월 해고된 이영숙씨는 불법의 온상으로 전락한 안산·시흥지역 파견업체 실태를 고발했다. 이씨는 “제조업 파견은 불법인데도 벼룩시장이나 가로수 같은 무가지에는 파견직 채용광고가 넘쳐나고, 공단지역에는 편의점보다 파견업체가 더 많다”며 “해고할 때 일주일 전에라도 알려 주면 그나마 다행인데, 하루 전에 공지되는 업무스케줄에 내 이름이 없으면 그길로 해고”라고 말했다.

이씨는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고용노동부의 파견실태 조사도 문제투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감독관이 감독 나오는 날에는 출근할 필요가 없다면서 휴가를 쓰게 했고, 감독관들에게 전화가 오면 ‘며칠부로 그만뒀다’고 대답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정부의 미온적 태도가 불법파견 확대의 주범이라는 지적이다.

불법파견은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고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종원씨도 이날 국회를 찾았다. 최씨는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고통에 관심조차 없는 정부가 파견법 개정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 하나”라며 “법원으로부터 여러 차례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현대차그룹 등 재벌기업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뿌리산업 파견확대, 노동안전 위협=정부발 파견법 개정안의 핵심인 뿌리산업 파견확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유성기업 내 주물공정에서 일해 온 홍종인씨는 “1천500~2천도에 달하는 쇳물이 끓는 주물공정에서는 평소에도 폭발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며 “숙련 노동자도 산업재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곳에 그때그때 파견직을 받아 투입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뿌리산업(주조·금형·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은 그 자체가 ‘유해·위험업종’이다. 그는 “정부는 미숙련자를 유해·위험업종에 투입할 게 아니라 납품단가 후려치기 같은 원청기업들의 횡포를 없애고, 유해·위험업종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토대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경영계는 “뿌리산업 파견확대 대상 업체가 중소·중견기업이기 때문에 파견법 개정이 재벌기업에 면죄부를 준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견기업은 연매출 1천500억원 이상, 상시 고용인원 1천명 이상, 자기자본 1천억원 이상, 자본 총액 5천억원 이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며 “이런 기업이 구인난에 시달린다는 정부나 재계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고 반박했다.

장 의원은 “만약 정부가 상시 고용인원 10인 미만 영세업체의 구인난을 해소하려는 것이라면, 이를 파견업체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구인기업과 구직인력을 이어 주는 방안을 찾아 실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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