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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길로 4시간 반 최북단 백령병원을 가다] 주민 1만명 돌보는 유일 공공의료병원, 속으론 곪아 터질 지경

기사승인 2016.01.25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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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는 1년 지나면 빠져나가고 … 간호사 5명이 밤낮없이 일해

   
▲ 백령병원 응급실. 윤성희 기자
   
▲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이 백령병원 수술실 설비를 설명하고 있다. 첨단 수술실을 갖췄으나 의료진 부족으로 외과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윤성희 기자
   
▲ 2층 너스 스테이션. 2층 전담 간호사를 따로 배치할 수 없어 현재는 비워 두고 있다. 윤성희 기자

제법 빠른 속도로 한참이나 달린 것 같은데 여전히 바다다. 창밖 풍경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목적지는 백령도. 서해 최북단, 남북이 총 끝을 겨누는 냉전의 땅이다. 인천항에서 출발해 4시간30분을 달리고 나서야 섬에 닿았다. 뱃길로 228킬로미터다.

육지와 백령도를 잇는 교통수단은 하루에 한 대 있는 쾌속선뿐이다. 오늘 아침에 섬에 들어가면 빨라야 내일 점심이나 돼야 나올 수 있다. 이마저도 해무와 파도로 길이 막히기 일쑤다. "월요일부터는 파도가 높아져 며칠 배가 안 뜨니 일요일 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일러 주던 인천항 여객터미널 직원의 말이 귀에 아른거린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6~17일 백령도에 들어가 인천의료원 백령분원(백령병원)을 둘러봤다. 백령병원은 서해 5도에서 유일한 병원급 공공의료기관이다. 백령도에는 민간인 주민 5천400여명과 군인 4천여명이 산다. 1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있지만 아플 때 찾아갈 곳이라곤 보건소와 백령병원이 전부다. 군인병원이 있지만 민간인들은 들어갈 수 없다. 진료과도 특정돼 있다. 백령도 주민들은 감기 같은 간단한 진료는 보건소에서 한다. 전문적인 검진·진료나 입원이 필요하면 백령병원으로 간다. 백령병원에는 내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치과·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있다. 30병상 규모로 입원시설·응급센터를 갖추고 있다. 애초 외과까지 7개 진료과를 운영했지만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지금은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수술을 하거나 뇌·심혈관계 질환 같은 중증질환 치료를 받으려면 육지(인천) 병원으로 가야 한다. 지난해 겨울에는 기상 악화로 뱃길이 막히고, 응급헬기가 뜨지 못해 패혈증 환자가 숨진 일도 있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다.

서해 5도 돌보는 병원은 단 한 곳

"하루에 대체로 환자 50~70명이 병원에 와요. 응급환자도 꾸준히 있고요."

17일 오전 9시 간호사 박은숙(58)씨와 말을 좀 섞나 했더니 응급실로 한 청년이 가슴을 움켜잡고 들어왔다. 당직 의사와 박씨를 포함한 간호사 2명이 그를 부축해 빠르게 검사실로 안내했다.

"진통제 놔 드렸고, 이따가 내과 선생님이 배 타고 들어오시는 대로 다시 상태를 보실 거예요. 심하면 배나 헬기로 (인천까지) 나가야 합니다."

당직 의사는 당황한 얼굴로 달려온 가족들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해 주고는 곧바로 두 번째 환자를 맞았다. 일하다 넘어졌는데 옆구리가 계속 아파서 아침 댓바람부터 병원을 찾았다는 노인이었다.

"아프신 데가 갈비뼈 부근이네요. 엑스레이 찍어 볼게요."

숨 돌릴 틈도 없이 세 번째 환자가 들어왔다. 교통사고로 얼굴을 다친 환자였다. 의사의 손놀림은 빨랐다.

그러는 사이 검사를 마치고 누워 있던 첫 번째 환자가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의사는 환자 곁으로 갔다.

"급하게 큰 병원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최종검사 결과 나오면 말씀드릴게요."

가족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간호사들도 한숨 돌렸다.

백령병원에서 일한 지 10개월째라는 박은숙씨. 그는 인천에 있는 가족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난다. "아무래도 봉사정신이 필요한 환경"이라며 넉살 좋게 웃는 박씨는 "백령병원 간호사들은 연령대가 높고, 의사들은 대체로 젊다"고 귀띔했다.

백령병원에는 8명의 의사와 5명의 간호사가 있다. 간호사는 아이들 다 키우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고, 아이들 교육이네 뭐네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젊을 적 간호장교로 일했던 시절이 떠올라 백령도 근무를 자청했다"고 말했다.

8명의 의사 중 6명은 공중보건의다. 병역의무를 대신해 3년간 농어촌·도서지역에서 근무하는 이들이다. 모두 1년간 근무한 뒤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 근무조건이 열악한 탓이다. 행정업무나 시설관리를 하는 7명을 빼고는 의사와 간호사 모두 외지인이다. 지난해 입사한 박명길(24)씨는 백령병원(옛 김안드레아병원)에서 태어난 백령도 토박이다. 시설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옛날 백령병원은 산 위에 있고 낡고 음침해서 주민들이 웬만하면 보건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며 "건물을 새로 지은 뒤로는 이웃 분들이 병원을 좋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최신 장비 들여놔도 사용할 의료진 부족"

박명길씨의 말대로 백령병원은 오래된 병원이다. 가톨릭의대 부속으로 1960년 개원했다. 처음에는 김안드레아병원이었다가 2001년 인천의료원 분원이 됐다. 건물·시설 노후화가 심해 2014년 건물을 신축해 재개원했다. 그 덕에 '섬마을 병원'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진단검사실·CT촬영실·수술실 같은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추고 있다. 다중채널컴퓨터단층촬영장비(MDCT)나 원격협진시스템 같은 최신 장비도 들여놨다.

그런데 정작 의료진이 부족해 장비를 100% 다 쓰지 못하고 있다. 근무 조건이 열악해 채용공고를 내도 지원하는 의사가 드물다. 그렇다고 유인책으로 급여를 높이자니 인건비가 부담이다. 주로 공중보건의로 의사인력을 채운다. 공중보건의 중에도 응급의학과나 외과 전공은 보통 군의관으로 배치된다. 결국 의사가 없거나 근무지 이동이 잦아 진료과목을 개설하지 못하고 간단한 수술도 하지 못하는 의료공백이 발생한다.

암으로 입원한 시어머니를 인천성모병원에서 백령병원으로 옮겨 간병하고 있다는 주민 박정실(43)씨는 "오랫동안 입원해야 하는데 육지를 오가기가 너무 힘들어 여기로 모셨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시어머니가 중이염 수술 때문에 인천으로 나가야 해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며 "나이 많은 환자가 장시간 배를 타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닌데, 이곳에서도 간단한 수술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의료진 노동강도는 심각한 상태다. 박은숙씨는 "지금 간호사 한 명이 병가를 내는 바람에 4명이 응급실과 진료실·입원실을 다 돌봐야 한다"며 "12시간 맞교대를 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단 응급실은 반드시 한 명이 지켜야 하니 병동 전담 간호인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입원환자가 가족과 함께 오지 않으면 복잡한 상황에 처한다"고 털어놨다. 영상의학과 방사선사도 1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24시간 응급대기 상태로 지내는 셈이다.

공중보건의 이희종(31)씨는 "올해 응급의학과 공중보건의가 없어 당직이 아닐 때도 나오고 있다"며 "섬인 데다 주말은 물론 야간에도 일하는데 인센티브는커녕 기본적인 지원도 없으니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육지 보건소로 다들 떠나는 거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공공병원 의료인력, 비슷한 규모 민간병원의 절반

백령병원에 지원되는 예산은 인천시가 편성한 6억여원이 전부다. 건물 신축으로 시설관리비·유지비가 전보다 4배 넘게 뛰었지만 예산은 동결됐다. 지난해에는 예산삭감 얘기까지 나왔다. 이승열 백령병원 행정실장은 "공사 한번 해 줬으니 인력이나 병원 운영은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는 것 같다"며 "백령병원이 공공의료 역할을 하는데도 국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두익 백령병원장은 "최신 의료기기를 들여와도 검사 결과를 판독하고 빠르게 조치할 전문인력이 없으면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며 "꼭 필요한 진료와 수술은 백령병원에서 하고, 긴급·중증질환은 다른 대형병원과 협진할 수 있도록 인력과 운영비를 예산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원 부족은 백령병원만 겪는 일이 아니다. 지역 공공병원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다. 전체 의료기관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병원이 수익을 찾아 수도권·대도시에 몰리는 사이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의료취약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역 간 의료격차도 커진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는 공공병원이 유일무이한 의료기관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들 병원이 인력난과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이종구 서울대 의대 교수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의료취약지역 의사인력 확보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의료취약지 의사인력이 최대 2천206명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력부족은 간호등급제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간호등급제에 따르면 병원 간호인력 확보 수준은 1~7등급으로 구분된다. 병상당 간호인력이 적을수록 등급이 낮아진다. 종합병원·병원은 최소 3등급이 돼야 의료법상 간호인력 기준(1일 입원환자 2.5명당 간호사 1명)을 충족할 수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방의료원들은 서울의료원(2등급)을 제외하면 대개 4~7등급으로 기준치를 밑돈다. 절대적으로 인력부족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비슷한 규모의 민간 중소병원과 비교해도 지방의료원 인력은 확연히 적다. 203병상인 강원도 속초의료원의 의사는 23명, 간호등급은 7등급이다. 반면 251병상 규모 민간병원인 한강성심병원의 의사는 25명, 간호등급은 2등급이다. 484병상인 대구의료원은 의사 58명, 간호등급 4등급인 데 반해 474병상인 삼육서울병원은 의사 100명, 간호등급은 2등급이다.

구멍 난 공공의료지원체계

더 큰 문제는 공공병원을 총괄하며 인력·예산을 지원하는 컨트롤타워가 정부에 없다는 사실이다. 공공의료기관을 주관하는 부처는 제각각이다. 국립대병원은 교육부, 지방의료원은 보건복지부가 맡는 식이다. 이렇게 8개 부처가 공공의료기관 관리·감독을 나눠서 한다. 지방의료원의 경우 복지부가 관할한다고는 하나 실제 관리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통에 혼선이 일기도 한다.

정부 지원이 주로 시설·장비 개선에 집중되기 때문에 병원 인건비나 운영비는 일시적인 정부 지원사업이나 지자체 보조금에 의존한다. 적자를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33개 지방의료원의 적자(당기순손실)는 622억3천만원이다. 공공의료지원체계를 개선해 지방의료원에 대한 종합적·중장기적 처방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정부부처와 지자체가 지원 책임을 서로 떠넘기면서 인력·운영 지원이 체계적이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의료취약지역이나 지역주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 위원장은 "정부는 전체 의료공급체계에 대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종합적·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공공의료인력 모집·배치는 물론 지역병원 특성에 맞는 발전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보건의료인력특별법 입법도 주문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보건소는 정부가 공무원 신분을 보장하니까 인력수급이 쉬운데 지방의료원은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과정에서 고사돼 가고 있다"며 "정부는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 지자체는 지방의료원이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특수법인이니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이라고 탄식했다.

조 원장은 “백령병원만 해도 적자 폭이 점점 커져 지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일정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공의료기관]
국가나 지자체가 설립한 국·공립병원, 정부 부처에 속한 특수법인 형태 병원(국립중앙의료원·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과 각 시·군·구에 설치된 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를 말한다.

일반진료는 주로 국립중앙의료원·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이 맡는다. 의료전달체계로 보면 간단한 외래진료를 보는 1차 의료기관은 보건소와 의원급 병원이고 전문의를 두고 보다 복합적인 진료나 입원치료를 하는 2차 의료기관은 지방의료원, 난이도가 높은 치료를 맡는 상급종합병원인 3차 의료기관은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대병원이다.

2014년 말 기준으로 보건소를 제외한 공공의료기관은 전국에 211곳이 운영 중이다.

윤성희 miyu@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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