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코앞이다. 총선이 끝나면 국회의원 300명이 새로 배출된다. 총선 결과에 따라 노동자 삶도 요동친다. 정당과 후보가 내건 공약은 그 진폭의 기준이 된다. 아쉽게도 20대 총선 노동공약은 양과 질에서 19대 총선에 못 미친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고, 하늘에 올라도 쟁점이 되지 않는 현실이다. 정치권 보수화 경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할 것은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야 두말해 무엇하랴. <매일노동뉴스>가 총선 후보자들에게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5대 노동의제를 제안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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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순서]

1. 노동시간단축 먼저
2. 비정규직 임금 올려야
3. 노동자 이름표를 달자
4.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
5. 쉽게 노동조합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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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계약직·아르바이트 구인시장에 이케아 열풍이 불었다. 세계적 가구업체인 이케아가 국내점을 열면서 당시 최저임금(5천580원)의 1.8배에 달하는 1만원을 시급으로 정해 계약직 직원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마트와 롯데마트 같은 국내 대형마트들은 계약직 직원에게 최대 6천원의 시급을 주고 있었다. 이케아 채용 소식은 각종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 1위를 차지했고 지원자가 대거 몰렸다.

이케아는 특히 비슷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처우에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케아는 풀타임 정규직과 시간제 계약직 직원 모두에게 같은 시급을 줬다. 4대 보험과 퇴직금, 경조사 지원, 출산 및 육아휴직, 연차휴가, 직원할인 혜택 같은 처우·복지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북유럽국가인 스웨덴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잘 지켜지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이케아코리아는 채용안내서에서 “지원자들의 성별·학력·나이 같은 배경이 아니라 고객과 동료, 함께 일하는 협력업체와 동등하게 일하는 기업문화를 이해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나섰다. 아베 신조 총리는 1월22일 시정연설에서 “비정규 노동자 처우개선을 도모할 필요성이 있다”며 “동일임금 동일노동이 실현되도록 관련 법·제도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추진할 핵심 정책으로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꼽은 것이다.

한국 고용노동부에 해당하는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전체 노동자 중 40%가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임금은 정규직의 60% 수준이다. 30대 비정규직이 67%일 정도로 다소 높은 반면 50대 이상은 50% 안팎의 임금을 받는다.

일본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해소를 위해 파견법을 포함한 비정규직 관련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기업이 임의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차별을 할 수 없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차별이 발생할 경우 기업에 '설명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노동전문가들은 “기업에 설명 책임을 부과할 경우 차별적 대우가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득격차가 확대하면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동자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 소득증가가 내수를 끌어올려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소득주도 성장론까지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저임금 계층인 데다 상대적 차별까지 받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총선에서 여야 모두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임금인상을 공약했다.

확대하는 임금격차, 차별시정 효과 적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해소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차별금지 조항이 명문화돼 있지만 상징적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하면서 ‘비정규직은 곧 저임금 노동자’라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윤애림 방송통신대 교수(법학과)는 “차별금지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법 정신에 반영돼 있고 2007년에는 노동위원회를 통한 차별시정 신청제도까지 마련했다”며 “하지만 이러한 정신과 제도가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수준(시간급 기준)은 2002년 80.5%에서 기간제법이 시행된 이듬해인 2008년 68.0%로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65.0%까지 떨어졌다. 임금격차가 오히려 확대한 것이다. 시간제 노동의 경우 2002년에는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인 101.1%의 임금을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57.8%로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노동위원회 차별시정 신청 건수도 2011년 46건·2012년 96건·2013년 80건·2014년 180건에 불과하다. 통계청 기준으로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1천931만2천명)의 32.5%인 627만1천명이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별시정 신청건수가 매우 저조한 편이다. 더군다나 노동계는 비정규직 규모를 868만4천명(전체 노동자의 44.9%)으로 추산한다.

세계적으로 부는 임금인상 열풍

최근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겨냥한 소득인상 열풍이 불고 있다. 양극화 해소라는 국민적 열망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과 영국·독일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바람이 거세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아베 총리가 앞장서 재계에 임금인상을 요구했고, 올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일본 노동시장은 한국과 유사하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같다.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 임금인상(동일노동·동일임금)이 출산·육아로 쉬고 있는 여성과 고령자를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정권 차원에서 추진 중인 ‘1억 총활약 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 중 하나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꼽고 있다. 1억 총활약 사회는 50년 후에도 일본 인구를 1억명으로 유지하고 국민 한 명 한 명이 가정·직장·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유럽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하나의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케아가 국내점을 열면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처우를 동일하게 책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프랑스 같은 일부 유럽 국가는 고용안정성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는 비정규직에게 상대적으로 더 높은 임금을 주기도 한다”며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사용할 유인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고 분석했다.

노·정·정치권, 비정규직 차별해소에 한뜻

우리나라에서는 4·13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 모두가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다짐했다. 새누리당은 “정규직 임금의 80% 수준까지 비정규직 임금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한발 더 나아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치가 현실에서 구현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나 노동계도 긍정적이다.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올해 초 30대 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들을 만나 “인건비 절감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업들이 고용유연화와 인건비 절감 두 가지 목적 모두를 취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올해 진행하는 기업 1만2천곳에 대한 정기·수시 근로감독에서 복리후생을 포함한 비정규직 차별 여부를 필수점검 항목에 넣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차별해소로 임금의 절대적·상대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임금인상과 함께 사용사유 제한 같은 규제방안을 도입하면 비정규직 규모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흥준 고려대 경영대학 BK연구교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고 규모를 감축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한다”며 “직무에 대한 평가나 임금제도, 사회적 인식이 전반적으로 함께 변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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