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운동에서 “진짜 사용자가 나와라”라는 구호가 많이 보인다. 복잡한 하도급 관계를 이용해 사용과 고용을 분리함으로써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원청 사용자와 직접 교섭을 하고자 하는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다. 사용자면 사용자이지 진짜 사용자, 가짜 사용자가 있는가.

형식상 고용주인 하청업체(협력업체)는 원청의 노무대행기관 또는 일개부서 정도에 불과하고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실질적 권한은 결국 원청에게 있다면 원청 사용자가 진짜 사용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외침 속에만 있는 일방적 주장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형식상 고용관계와 관계없이 원청을 진짜 사용자라고 인정한 판례가 우리나라에도 있고 외국에도 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일본계 기업인 아사히글라스가 하청업체에 노동조합이 조직된 지 한 달 만에 해당 업체와 계약해지를 한 것은 노조를 형해화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원청이 직접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본 것이다. 이는 처음 있는 판정이 아니다. 2010년 대법원은 이미 현대중공업이 하청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과정에서 해당 하청업체를 폐업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파괴한 행위에 대해 “(원청이) 사업 폐지를 유도해 노조활동을 위축·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판결했다. 즉 원청이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노조법상 사용자라는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었다.

대법원 판결과 이번 중노위 판정 취지에 따라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는 원청은 노조법에 따라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단체교섭의무를 지는 법적 지위에 있다.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의 사용자와 단체교섭의무가 부여되는 사용자는 노조법에서 동일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본 사법 판정이 미국에서 나왔다. 미국 전국노동관계위원회(우리나라 노동위원회와 유사하지만 직권주의에 입각해 우리나라보다 강력한 준사법기관)는 2015년 8월27일 청소관리업체 분쟁사안에서 "하청업체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은 기업(원청)은 하청업체의 노동법 위반이나 이들 노조와의 단체 교섭·협상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고용하는 자와 사용하는 자가 달라짐으로써 진짜 사장이 모호해지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원청이 하청 구조하에서 노무제공으로부터 직접 이익을 얻고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정작 최종적 법적 책임은 회피하는 부당한 현실에 제동을 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원청의 교섭의무를 인정한 판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이번 미국 노동관계위 결정내용과 기존 대법원 판례 취지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간접고용 사업장에서 원청이 근로조건 결정의 실질적 통제자라고 인정되면 원청에게 노조법상 교섭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현대·기아차부터 삼성전자서비스·티브로드·동양시멘트 등 복잡한 하도급 사업장 분쟁에서 노동자들이 결국 최종으로 요구하는 것은 원청과의 교섭이다. 문제 해결에 있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무지 진짜 사장인 원청이 나오지를 않는다. 투쟁은 노동자 몫이고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만 거리에서 너무 억울하다.

입법과 사법영역의 진일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명시적으로 확대하는 입법이 필요하고, 교섭뿐만이 아니라 하청 노동자들과 원청의 협의테이블을 상시적으로 마련해 노사분쟁을 미연에 예방하고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정부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진짜 사장이 나와야 할 이유는 법리적으로 이미 뚜렷하다. 모두가 평화와 상생을 위한 길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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