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전쟁과 같았고, 누군가에게는 축제의 장이자 고민과 번뇌의 시간이었던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지 벌써 열흘이 훌쩍 지났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정국을 맞이하게 된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새로운 국회를 향한 각계각층의 요구가 봇물처럼 흘러넘치는 시절이다. “20대 국회에 바란다”는 제목의 기사와 칼럼이 셀 수 없이 무수히 쏟아지는 이때 굳이 새로울 것 없는 하나의 글을 더하려는 이유는, 그래도 국회에 무엇인가를 바라고 ‘꼭’ 요구하는 데 이때만한 시절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관점에서 19대 국회는 고난과 좌절의 공간이었다. 아마도 그 하이라이트는 지난 가을 새누리당의 ‘이른바’ 노동개혁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순간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는 새누리당의 입법시도가 좌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19대 국회가 종료될 때까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 경과를 반드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법률들은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입법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역시 노동자 관점에서 국회에 요구해야 할 여러 법률안이 있을 것이나, 굳이 그중에 몇 가지를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노동조합은 본래 설립자유 원칙이 지배하는, 노동자 단결을 보장할 수 있는 자율적 결사체다. 그러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는 이와 같은 노동조합의 본질과 어울리지 않는 규정이 다수 존재한다. 노조법 제2조4호라목 소정의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 노조법 제12조3항 소정의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제도, 노조법 제21조 소정의 노동조합 규약에 대한 시정명령, 노조법 제31조3항 소정의 단체협약 시정명령 등이 그러하다. 이와 같은 규정을 철폐하고, 노동조합 조직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노동기본권을 제고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정책이다.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형사 면책을 다루고 있는 노조법 제3조와 제4조도 대폭 손질해야 한다. 해당 조항들은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민사상 불법행위 혹은 형사상 범죄행위로 상정해 두고 특정한 요건을 갖추면 그 책임을 묻지 않는 방식으로 규정돼 있다. 이러한 방식의 입법은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무력화할 뿐만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이다. 체계상으로도 적절하지 않으므로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 노동자 삶을 파괴하는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규정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노동시간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도 필요하다.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연장·야간근로 및 휴일근로 중복가산 문제는 근로기준법 제56조 개정을 통해 입법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휴일근로시간을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도록 근기법을 개정하고,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을 광범위하게 인정해 기존 근기법 제53조의 연장근로제한 규정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근기법 제59조를 폐지해 노동법이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아이러니를 풀어내야 한다.

비정규 노동 확산을 뒷받침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역시 입법취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기간제법에 사용사유 제한을 도입하고, 파견법 제5조가 규정하고 있는 파견대상 업무는 엄격하게 축소해야 한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단순히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목적으로는 비정규 노동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근기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노동입법 방향은 필자만의 독자적인 의견이 아니다. 이미 수차례 노동계를 중심으로 국회에 제안됐던 것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외면받아 왔다. 혹자는 돌림노래 레퍼토리가 지겹지 않느냐지만,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책임이 가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테러방지법 입법 국면에서 국민의 눈과 귀를 국회로 집중시킨 것은 단연코 야당의 필리버스터였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많은 국민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중단하면서, 소수야당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총선에서 보다 많은 의석을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그 호소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국민은 야당에게 과반의석을 줬다. 이제 우리는 야당에 질문하려 한다. 노동의 관점에서 입법을 할 것인가. 노동을 배반하는 정치를 할 것인가. 20대 국회의 긍정적인 응답을 기다려 본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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