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된 뒤 달라진 거요? 수입이 반토막 나고, 그만큼 빚이 늘었어요. 대출 이자에 월세까지 내고 나면 마이너스예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남의 일이 아니더라고요. 멀쩡한 회사가 이렇게 쉽게 사람을 잘라도 되는 겁니까.”

13일 일진전기㈜ 해고노동자 김효준(36)씨의 말이다. 그는 2014년 12월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해 351억여원의 영업이익과 176억여원의 순이익을 낸 회사는 김씨가 속한 통신사업부의 사업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당 부서를 없애고 노동자들을 내보냈다.

해당 사건은 노동위원회를 거쳐 법원으로 갔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장순욱 판사)는 최근 “부당한 정리해고”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소송이 이상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당초 쟁점은 ‘정당한 정리해고’인지 ‘부당한 정리해고’인지를 다투는 것이었는데, 회사측은 갑자기 “이 사건 해고는 정리해고가 아니라 통상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법적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쌍용자동차 사태’ 같은 극단적 노사갈등을 동반하는 골치 아픈 정리해고 대신 '통상해고'라는 쉬운 길을 택하려는 기업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다.

일진전기 회사측은 소송에서 “이 사건 해고는 사업의 유지·존속을 전제로 하는 정리해고와 달리 (통신사업부) 사업 자체를 폐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통상해고”라며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춘 이 같은 경영활동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측 주장대로라면 이 사건 해고는 해고회피 노력이나 노동조합과의 협의 절차가 필요 없는 '정당한 해고'라는 말이 된다.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사용자들의 이 같은 주장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노동자들을 해고라는 생계 절벽에 내몰면서 정작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해고 위협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 요건을 정해 놓은 입법취지에도 어긋난다.

문제는 사용자들의 떼쓰기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가 ‘저성과자 일반해고’ 기준을 명확히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2대 행정지침을 강행한 현실에 비춰 볼 때 ‘제2의 통상해고 지침’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법과 행정이 노동자보다는 사용자들에게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진전기 사건 노동자측 대리를 맡은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다행히 법원은 사용자측의 통상해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사용자들의 억지 주장에 제동을 거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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