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력·가스 같은 에너지산업에 민간참여를 확대하고 일부 에너지 공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하겠다고 밝히면서 에너지 민영화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에너지 민영화가 민간기업의 배를 불리는 반면 전기·가스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 피해를 초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장 워크숍을 열고 ‘에너지·환경·교육 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전력 판매 민간개방 로드맵 마련, 요금체계도 개편=정부가 이날 밝힌 기능조정 방안의 핵심은 에너지산업에 대한 민간참여 확대다. 공기업이 독점했던 업무에 민간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공기업 주식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한국전력이 도맡고 있는 전력판매 분야를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로드맵을 마련해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가스공사가 수행하는 가스 도입·도매 분야에서는 민간 직수입제도를 활성화해 시장 경쟁구도를 확대한다.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민간에 시장을 개방한다.

화력발전 정비시장도 민간개방 항목에 포함됐다. 한전KPS의 신규 발전기 정비 독점을 폐지해 발전 5사에 대한 정비 점유율을 낮추기로 했다. 한국전력이 수행하는 광통신망 구축사업은 내년부터 아예 중단하고 모두 민간에 넘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에너지 공기업 주식상장을 통한 소유구조 민영화를 추진한다. 남동발전·중부발전·서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 등 발전 5사와 한국수력원자력·한전KDN·한국가스기술 등 8곳이 대상이다.

노형욱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은 이와 관련해 “전체 지분의 20~30%를 상장하는 것이기에 민영화가 아닌 혼합 소유제”라며 “지분 일부를 팔아도 경영권은 정부가 갖게 돼 민영화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알짜배기 공기업 팔아 사기업 배만 불리나=정부가 에너지산업 개편을 "민영화가 아닌 기능조정"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노동계와 전문가들의 시선은 다르다.

전력노동자 출신인 이경호 공공노련 사무처장은 “에너지산업 민간개방과 공기업 상장이 핵심인 정부 대책은 이미 기능조정 범주를 넘어섰다”며 “정부가 전기·의료·수도·가스 같은 공공영역에 대한 민영화 반대여론이 거센 것을 의식해 민영화라는 표현만 쓰지 않았지 이번 대책은 사업과 소유권을 점진적으로 민간기업에 넘기는 분명한 민영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전력·가스시장 민간개방이 전기요금과 가스비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전력 판매시장은 송·배전망을 갖춘 국내 통신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일본은 전력 판매시장을 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민간에 넘겼고, 16년 만인 올해 4월 전면 개방했다. 일본 통신사인 소프트뱅크와 케이블 방송사인 제이콤 같은 회사가 적극 참여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공공재라는 인식이 강해 다른 나라보다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가격과 비교하면 주택용은 61%, 산업용은 80% 수준이다. 정부는 전력 판매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면서 전기요금 개편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려면 가격 정상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순이익 1조8천억원을 기록한 발전 5사 같은 알짜배기 공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하겠다고 밝히면서 "사기업의 배만 불리고 요금인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전 5사가 삼성전자 뺨치는 순이익을 냈는데, 이마저도 전력요금 안정화를 위해 한국전력이 가격을 조정해 순이익을 낮춘 것”이라며 “지분 20~30% 정도만 판다고 하지만 이 정도면 순이익 극대화를 위해 가격조정을 통제하고 전기요금 인상을 압박할 수 있는 수준인 데다, 일단 지분을 팔기 시작하면 민간기업에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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