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야당 의원은 같은해 9월 정부와 여당이 발의한 노동 5법의 정당성에 대해 집중 공격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새누리당이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이른바 '노동 4법'을 발의했다. 집권 여당이 과반의석을 점한 19대 국회 때도 통과시키지 못한 법안을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 그것도 글자 하나 고치지 않고 다시 발의한 것이다. 김현숙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지난달 19일 “노동개혁 4법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패키지 법안”이라며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청와대 주장대로 노동 4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패키지 법안이 맞나. 노동 4법은 모두 노동개혁에 도움이 되는 법안인가. 노동계와 야당이 그렇게 반발하고 국회 통과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청와대는 왜 노동 4법에 집착할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과정을 되짚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 4법은 '패키지' 법안이 아니다. '노동개혁'으로 향하는 필수 불가결한 법안은 더더욱 아니다. 목표는 오로지 하나. 파견법 개정이다.

노동 5법이 4법으로, 패키지 스스로 깬 청와대

노동개혁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노사정 관계자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노동 4법"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불과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만 해도 노동개혁법은 '4법'이 아니라 '5법'이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당시 정부·여당은 “노동개혁 5개 법안은 서로 맞물려 있는 패키지 법안이기 때문에 분리하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거나 “노동 5개 법안은 한꺼번에 처리해야 시너지 효과가 있다”(원유철 전 원내대표), “어떤 법은 처리하고 어떤 법은 그냥 둔다면 균형 있는 노동시장 형성이 어려워진다”(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며 한 묶음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법안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호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기간제법은 기간제 사용기간 확대(2년→4년), 파견법은 뿌리산업 파견 허용, 근기법은 노동시간단축(특별연장근로 허용)·통상임금 범위 명확화(시행령 위임 포함), 고용보험법은 실업급여 확대(수급요건 강화), 산재보험법은 출퇴근 사고 산재 인정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도대체 어떤 대목에서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지, 어떤 이유로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지, 왜 균형 있는 노동시장 형성이 어려워지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기에 정부·여당은 5개 법안이 한 묶음이라는 논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냈다. 정부가 처음 만든 논리는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은 정규직을 위한 법이고, 기간제법·파견법은 비정규직을 위한 법이기에 함께 처리해야 한다”(이기권 장관)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노동부 공무원들조차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급조한 논리에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한 듯했다.

새누리당은 "노동 5법은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의 산물"이라는 데 초점을 뒀다. 노사정 합의 내용을 법안에 반영했기에 대타협 정신에 맞게 한꺼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 가운데 한국노총이 “기간제법과 파견법 개정안에 합의한 적 없다”고 반발하고 노사정 합의 무효를 선언하자 '대타협 운운' 발언은 쏙 들어갔다.

이번에는 청와대가 나섰다. 노동 5법은 청와대에 의해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법”(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서 “일자리 창출·개혁법”(박근혜 대통령)으로 승화했다. 근기법은 "15만개 일자리 창출법"으로, 기간제법은 "비정규직 고용안정법"으로, 파견법은 "중장년 일자리법"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요란한 말의 성찬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1월 대국민 담화에서 “일자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차선책으로 노동계가 반대하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은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했다.

"차선책, 중장기적으로 검토한다"는 전제가 깔리긴 했지만 박 대통령이 기간제법을 제외하면서 노동 5법이 패키지 법안이 아니라는 것을 청와대 스스로 증명한 모양새가 됐다. 박 대통령은 '노동 4법이라도 통과시켜 보자'는 애절한 마음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노동계와 야당 입장에서는 "끝까지 반대한다면 패키지 굴레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청신호였다.

노동계는 “노동 5법이 하나로 묶인 것은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노동계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근기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 등 3개 법안과 함께 처리하지 않으면 (노동계에 불리한) 기간제법·파견법을 통과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며 “노동계와 야당의 반대라는 정치적 이유로 패키지가 깨진 셈”이라고 분석했다.

기간제법 제외한 청와대, 결국 파견법이었나

박 대통령의 기간제법 제외 발언은 노사정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지난해 9월 법안 발의 이후 4개월에 걸쳐 당·정·청 모두가 노동 5법 처리에 화력을 집중했던 만큼 청와대가 수정안을 내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시나리오였다. 심지어 그때는 여대야소 시기였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파견법이 아닌 기간제법이 노동 4법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담화 이전에도 노동 4법 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3+1법'의 주인공은 항상 기간제법이었다. 주무부처인 노동부도 기간제법 개정에 주력했다.

청와대는 노동부와 사전협의도 하지 않았다. 기간제법 제외를 홀로 결정한 것이다. 노동부 고위공무원들조차 “전혀 몰랐다. 대통령 발표를 듣고 알았다”고 얼떨떨해했다.

기간제법이 왜 빠졌을까. 당시 “노동계·야당이 가장 반대한 법안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질문은 곧 ‘왜 파견법을 선택했을까’로 바뀌었다. 한 노동전문가는 “재벌과 대기업의 이해를 반영한 적극적인 선택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그는 “뿌리산업 파견허용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파견을 금지하는 파견법의 대원칙을 무너뜨리고 제조업 전반으로 파견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기업 사내하청 불법파견을 합법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 중앙일간지는 올해 1월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였던 지난해 여름 사석에서 꼭 관철해야 할 목표로 성과급 체계로의 임금구조 개편과 파견 확대를 꼽았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의원의 구상이 일치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8월 경제 5단체 역시 공동성명을 내고 노사정 협상에서 반드시 반영해야 할 재계 핵심 요구로 제조업 파견 확대와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 두 가지를 지목했다. 경제 5단체는 성명에서 “우리나라는 주요 국가들에 비해 파견 사용사유와 기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고용 경직성을 심화시키고 불법파견 논란을 키우고 있다”며 “제조업 등에 파견을 허용해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고용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개혁법 과연 '노동개혁'인가

최근 청와대가 노조 반발과 불법 논란 속에서도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은 박근혜 정권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판단된다. 그리고 노동개혁법이 흘러온 과정을 짚어 보면 노동 4법, 아니 노동 5법의 핵심은 결국 파견법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에서 노동 4법을 그대로 발의했다. 기간제법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파견법을 제외한 3개 법안은 지금이라도 여야 간 논의가 가능하다. 국회 통과 가능성도 없지 않다. 19대 국회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누리당에 “3개 법안을 우선 처리하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3개 법안은 논의 역사도 깊다. 근기법 개정안은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거나 내려질 예정인 통상임금 범위와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같은 시급한 현안을 담고 있다. 노사 모두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법안 내용의 유불리를 두고 다투고는 있지만 해당 법안들은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때부터 지난해 노사정 협상에 이르기까지 줄곧 논의하면서 의견을 좁힌 상태다.

출퇴근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은 별도 논의가 필요 없을 정도다. 이미 산재를 인정받고 있는 공무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노동부가 2010년부터 개정안을 준비했던 사안이다. 사회안전망 확대 차원에서 실업급여 수급기간(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확대하는 것에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반면 뿌리산업 파견허용 확대(파견법 개정안)는 노동전문가들의 표현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느닷없이 핵심 쟁점이 된 사안”이다. 재계 요구가 있었다 할지라도 수면 위로 올라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노동계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노사정 협상을 주도했던 김대환 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은 위원장 재임 시절 "기간제법·파견법 개정안이 노동개혁의 핵심이 될 수 없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한 토론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시장 측면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라는 산업 차원에서 함께 접근하지 않으면 절대 풀 수 없다”며 “노사정이 합의하지 못한 것(기간제법·파견법)은 시간을 갖고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 원·하청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동반성장 항목이 있다는 것에 주목해 달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문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여당이 지난해 9월 '노동 5법'을 발의하기 전까지 노동개혁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의미했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이나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 같은 이슈가 뒤따랐다. 노동계에서도 노동개혁 필요성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노사정은 이를 주제로 2014년 9월부터 1년 넘게 협상을 벌여 지난해 9월15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도출했다.

그랬던 노동개혁이 노동 5법에서 4법, 파견법 개정 여부로 의미가 축소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권은 노동개혁의 의미를 노동법 입법으로 국한시키면서 개혁을 추동할 동력을 스스로 축소시켰다”며 “노동시간·통상임금 같은 현안을 담고 있는 근기법 개정안을 제외하면 다른 법안들이 노동개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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