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한국도로공사가 해당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기는커녕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상고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에 기대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책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11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재판장 김상환 부장판사)는 지난달 24일 도로공사 외주업체 소속 안전순찰원 397명이 원청인 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에 이어 항소심도 도로공사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을지로위원회는 이날 ‘안전순찰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항소심 판결에 따른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공사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은 공사 김아무개 교통사고조사부장이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공사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앞으로 2~3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면서 “즉각 상고” 방침을 정했다. 전형적인 시간 끌기 작전이다. 문건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 선임 여부를 검토하고, 해당 노동자들이 공사를 상대로 ‘임금 청구 강제집행 신청’을 하지 못하도록 선제적 대응에 나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을지로위원회는 “공사에는 약 8천명의 톨게이트 수납원과 안전순찰원이 근무하는데, 이들은 공사를 퇴직한 ‘도피아’ 사장들이 운영하는 외주업체에서 성희롱과 폭언·폭행·불법사찰·급여 갈취를 당하면서도 묵묵히 일해 왔다”며 “이런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기자, 공사는 이들을 직접고용하기는커녕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막대한 소송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사회적 약자들을 끝까지 짓밟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공사는 2007년 6월 안전순찰원 업무 외주화를 추진해 2013년 4월 45개 전 지사에 대한 외주화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공사는 외주화 이후에도 안전순찰원 업무에 대한 지휘·명령을 계속했다. 공사 상황실 근무자가 순찰차량 위치확인 시스템을 통해 안전순찰원 위치를 확인하면서 구체적인 업무 장소·내용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도로공사가 외주업체와 맺은 용역계약은 (불법) 파견계약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차별금지의무와 직접고용의무를 위반한 공사가 안전순찰원들에게 100억여원을 물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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