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은회 기자

회사에 종속돼 노동자처럼 일하면서 정작 노동자 대우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전국에 230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발표의 4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수고용직 증가는 노동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 사용자로부터 이중 삼중의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다. 입법을 통한 보호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노동자-특수고용 비정규직 실태와 대안>(매일노동뉴스·396쪽·1만5천원) 출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와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매일노동뉴스가 주관했다.

근기법·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정의 확대 시급

책의 공동저자이자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 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근로자 개념정의를 확대해야 한다”며 “사용종속성 중심으로 해석되고 있는 현행 근로자 개념조항을 경제종속성과 조직종속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근기법과 노조법이 근로자 개념정의를 매우 제한적으로 서술하고 있고, 법원이 이를 근거로 보수적인 법해석을 내리면서 수많은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방치됐다는 비판이다.

조 대표는 “법원이 지금처럼 사용종속성 지표만으로 특수고용직 노동자성을 판단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사용자로부터 지휘·감독을 받았는지 여부만으로 노동자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예컨대 사용자들이 사용종속성 지표에 대한 은폐·조작을 시도할 경우 해당 노동자들이 법적 구제를 받을 길이 사라진다.

학습지교사의 경우 과거에는 위탁교사의 사무실 출근 규정과 업무일지 작성 관행이 존재했는데 현재는 없어진 상태다. 보험모집인들은 과거 보험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노무를 제공했는데, 최근에는 보험사측 요구에 따라 사업자등록을 한 뒤 ‘1인 대리점’ 방식으로 영업에 나서고 있다. 사용종속성을 지우려는 시도다. 텔레마케터의 경우도 근태·업무관리가 원청회사에서 콜센터 위탁업체로 이관되면서 사용종속성이 가려져 버렸다.

조 대표는 “사용종속성 외에 경제종속성과 조직종속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어느 한 개 지표라도 종속성이 높게 나타나면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법적 보호가 가능하게끔 입법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며 “법원 판단 역시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수고용직의 경제종속성을 판단하려면 △재정적 위험부담과 사업상 투자와 경영에 따르는 책임을 노무수급자(사용자)와 노무제공자(특수고용직) 중 누가 부담하는지 △특수고용 노동자가 누구의 수익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지 △특수고용 노동자 수입의 원천이 무엇인지 △노무수급자에 대한 노무제공자의 경제적 종속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두루 살펴야 한다.

조직종속성은 특수고용 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무가 사용자의 사업조직과 결합돼 있는지(주요한 업무에 해당하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용·경제·조직종속성' 중 하나만 높아도 노동자성 인정해야

문제는 경제종속성과 조직종속성에 대한 사용자들의 은폐 시도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점이다.

학원차량기사의 경우 전속적 관계에다 종속성이 높은데도 ‘차량 소유권’을 이유로 경제종속성이 부인되고 있다. 대리운전기사의 경우 과거 대리운전업체가 기사들에게 PDA를 지급하던 관행이 기사 개인이 구매하는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경제종속성이 약화됐다. 택배기사의 경우는 택배회사-택배기사 간 직접도급계약이 택배회사-대리점-택배기사 간 계약관계로 변경되면서 택배회사의 사용·경제·조직종속성이 은폐됐다.

조 대표는 “고용·사용관계의 형식과 외양이 복잡하게 변하고 있지만 불변의 진실은 특수고용직 거의 모든 직종이 강한 종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근로자성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기본권을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하는 국제적 추세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특수고용직 보호입법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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