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얼마 전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사건 회의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어느 중소병원 의사가 1년 단위 근로계약서를 맺고 일하던 중 ‘수습기간’ 만료 후 계약해지된 사건이었다. 쟁점이 된 것 중 하나가 채용시 근로계약서에는 없던 ‘3개월 수습기간’이 새로운 병원장 취임 후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포함된 경위, 취업규칙에 존재한다는 수습기간 규정을 해당 의사가 알고 있었는지 여부였다. 사용자측은 취업규칙을 직원들이 볼 수 있도록 게시판에 게시하고 있으며, 새로운 근로계약서 작성시 해당 의사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당 의사는 취업규칙이 게시돼 있다는 점을 알지 못했으며 새로운 근로계약서 작성시에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서명을 종용당했다고 반박했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 게시와 주지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자기 직장의 취업규칙을 제대로 알고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의심스럽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취업규칙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취업규칙을 어디서 볼 수 있는지 그 실제 내용을 읽어 본 사람은 극소수다. 상담을 하다 보면 법에 의해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주지됐어야 할 취업규칙을 마치 기밀문서라도 다루듯이 그 내용을 알아보라고 조언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취업규칙은 노동법이 부여하는 상당한 역할에 비해 그 법적·민주적 기초가 불분명한, 노동법의 대표적인 ‘신화’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할 수 있고, 단지 종전보다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만 사업장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으면 되고, 그러면서도 근로계약서보다 우월한 법적 효력이 인정되는 기묘한 제도다. "근로조건의 노사 대등한 결정"이라는 노동법의 원칙에도 맞지 않고, 일본과 우리를 제외하고 외국에서 그 사례를 찾기도 어려운 ‘듣보잡’이라 할 수 있다. 취업규칙에 관해 찾아볼 수 있는 최초의 대법원 판례는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기업경영권에 기해 사업장에 있어서의 근로자의 복무규율이나 근로조건의 기준을 획일적·통일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1977년 7월26일 선고). 이처럼 취업규칙에는 노동조건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그것이 곧 ‘경영권’이라는 비민주적 발상이 깔려 있다.

우리의 이런 비민주적 노사관계와는 대조적으로, 국제노동기준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조건 결정의 일차적 근거는 단체교섭과 노동보호 법규다. 둘 다 노동자가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그 정당성의 기초로 삼고 있는 민주적 제도지만, 개인으로서 약자인 노동자가 단결해 실질적 대등성을 가지게 된다는 측면에서 단체교섭이 보다 민주적이다. 그래서 세계인권선언이 나오기도 훨씬 전인 1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노동기구(ILO)는 단체교섭권을 포함한 결사의 자유를 "세계의 항구적 평화와 정의"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권리로 선언했고, ILO의 거의 모든 협약에서는 단체교섭 촉진을 가장 실효성 있는 문제 해결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범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미미해 사실상 90% 이상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이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취업규칙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게는 취업규칙마저도 눈엣가시였던 모양이다.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성이라 할 수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의 근로자 과반수 동의 규정마저도 무시하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변경해도 된다는 ‘지침’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정부가 사용자라 할 수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철도·지하철 등 공공부문 노조가 진행하고 있는 파업은 이런 불법적·반민주적 전횡에 맞서는 헌법적·민주적 권리 행사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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