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26일 월요일부터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다시 천막생활을 시작했다. 기억하겠지만 지난해 뜨거운 여름에도 두 달여를 천막에서 지냈다. 1년이 지난 지금 위원장이 다시 천막을 펼쳤다. 이유가 뭘까. 짐작건대 사계절이 흐르고 여소야대가 됐지만 노동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바뀐 게 없어서일 것이다.

매우 중요한 시기다.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막기 위해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공공·금융부문의 총파업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불법”이라며 총파업 호도가 도를 넘고 있지 않는가. 조합원과 전체 노동자의 대표인 노총으로서 그동안 보여 준 이상으로 결연한 모습으로 함께하겠다면 이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지 않겠는가.

장소는 국회 앞이다. 상징적이다. 김 위원장은 “정기국회 회기 내 국정감사에서 잘못된 노동정책을 더 널리 알리고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국회 앞이 제격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국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4·13 총선은 가히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 줬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예를 들어 강원도·경상남도 등 공공노동자들이 옮겨 간 곳에서 이들의 지지를 받은 이들이 당선된 예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공약한 의원들의 숫자가 역대 최다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노총으로서는 노동자들에게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고 감시해야 한다. 헌법에서 부여받은 의회의 정부 견제기능을 제대로 하는지 두고 봐야 한다. 물론 이보다 먼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은 이들이 실력을 보여 줘야 한다.

내용면에서 노동부의 양대 지침 폐기는 물론 4대 악법 저지는 여전한 구호이긴 하지만, 눈에 띄는 점이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 퇴진.” 천막에 걸린 현수막에 또렷하게 박혀 있는 문구다. 물론 이기권 장관을 말한다. 한국노총이 공식적으로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취임 후 사실상 처음인 것 같다.

자연인 개인이 아닌 정책의 잘잘못을 따지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위원장의 기본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을 잠시 물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관의 불통과 오기로 노동현장은 갈등이 커졌다. 불법과 위헌을 일삼는 이기권 장관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천막 앞 김 위원장의 일성은 단호했다.

마침 우리 사회에서는 오랜만에 불법과 위헌이 움찔할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28일부터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혹자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 1993년) 시행에 버금가는 혁명적인 제도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여겼던 부정들이 일소되길 희망한다. 김영란법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취지다. 비교해 보면 오늘의 노동현장에도 김영란법과 같은 저변에서부터의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김영란법을 보라. 신분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3·5·10 룰(규칙)”을 적용한다. 봐주지 않는다. 그런데 노동현장은 어떤가. 어떤 대기업 오너는 수십억원의 회사 돈을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가족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줘 왔지만 버젓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고서 노동자들과 조합원들에게는 ‘무노동 무임금’이란다. 어떤 대기업의 하청노동자들은 사소한 잘못에도 해고 같은 중징계를 받고 영영 회사에서 쫓겨나고 만다. 허탈한 상황에 ‘김영란법’ 시행을 보면서 동료 노무사는 이참에 “공금유용 금액 10만원이면 해고” 같은 행정해석을 노사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그럴듯한 제안을 한다.

“철도의 불법파업은 엄중 대처하겠다”고 정부에서 발표한다. 부산지하철에서는 이미 여러 조합원에 대해 직위해제까지 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비정상’이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협박과 처분은 정부의 철도 파업 대응매뉴얼인 모양이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무슨 이유로 불법이란 말인가. 이번 철도노조 파업도 노동법과 판례에 따른 것으로 적법하다. 지난 몇 번의 철도노조 파업에서도 정부는 “불법”을 주장하고 조합원들을 직위해제했지만 법원에서 거의 대부분 구제받았다.

“귀족노조의 밥그릇, 시민을 볼모로 한 파업” 같은 발언에서 묻어나는 정부의 노동관은 ‘비정상’을 넘어 ‘무지’라 할 것이다. 이러한 ‘비정상’을 ‘김영란법’ 정도로 바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감기간 동안만이라며 시작했지만 천막이 쉬 접힐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이참에 노동현장에서 불법과 비정상이 자리 잡지 못할 때까지 천막을 세우는 것은 어떨까.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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