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권 시행 가능성을 언급한 뒤로 현대자동차 노사관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가 민간기업 임금교섭에 개입하면서 상황이 더 꼬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노사 임금교섭 타결 가능성 높았는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29일 오후 현대차 울산공장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대의원 비상간담회를 열고 임금협상 현황을 공유하고 향후 투쟁계획을 모색했다. 전날 나온 이기권 장관의 긴급조정권 시사 발언을 두고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현대차 노사는 잠정합의안이 조합원총회에서 부결된 이후 숨고르기를 하다 추석 연휴 뒤인 23일부터 본격적으로 임금교섭을 했다. 회사는 지부가 추가 임금인상안 제시를 요구하자 27일 교섭에서 기본급을 2천원 인상하고 주간연속 2교대 성과급을 10만원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교섭은 지부가 추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마무리됐지만 회사가 추가 제시안을 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조만간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노사 안팎에서 나왔다.

28일 진행된 교섭을 앞두고 지부는 "오늘 교섭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밝혔고, 회사도 "9월 내 교섭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데 임금교섭은 애초 예상과 달리 파국으로 끝났다. 교섭을 시작하자마자 회사는 "지부가 잠정합의를 하겠다고 전제하면 추가 제시안을 내겠다"고 말했다. 지부가 거절하자 "노사 간 냉각기간을 갖자"며 교섭중단 의사를 밝혔다. 양측은 차기 교섭일자를 잡지도 않은 채 헤어졌다. 비슷한 시각 이기권 장관은 지부 파업에 대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현대차지부 "쟁의행위 금지해도 파업 불사"

지부는 노동부가 실제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보고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지부 관계자는 "회사가 교섭을 타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아 갑갑한 상황에서 정부가 사측 편을 들겠다는 노골적인 신호를 보낸 것으로 판단한다"며 "노사자율교섭이 더욱 어려워지게 됐지만 임금교섭에 대한 조합원 의견수렴부터 다시 시작하는 등 올해 투쟁을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부는 정부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긴급조정권으로 쟁의행위를 금지하더라도 파업에 나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조정권 사태가 현대차 노사관계를 넘어 전체 노동계 문제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은 "임금교섭 중인 지부의 합법적인 파업에 정부가 개입하면 사태는 오히려 더 꼬이게 될 것"이라며 "자칫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보석 금속노조 사무차장은 "정부가 현대차 편을 들어 임금교섭에 개입할 경우 노조의 하반기 모든 사업을 대정부투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며 "전면파업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동부가 긴급조정권을 말하기 전 우리와 사전에 의견을 교환한 적은 없다"며 "(긴급조정권이 시행되면) 노사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고 전체 노동계 반발과 현대차에 대한 대국민 신뢰도 하락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영배 한국경총 상임부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조선호텔 오키드룸에서 개최한 경총포럼에서 "노동부 장관이 현대차 파업의 조속한 마무리를 위해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만큼 조속히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야 한다"며 "강성노조 파업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 쟁의행위시 대체근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대차가 파업을 반복하면서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며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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