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청소용역 노동자로 구성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세브란스병원분회를 약화시키기 위해 개입한 정황이 공개됐다. 원청인 세브란스병원이 하청노조를 무력화하려고 노노갈등을 유도하고,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에게만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한국노총 소속 노조로의 가입을 부추겼다.

"철산노에 실시간으로 정보 전달해 ‘노노대응’ 유도 바람"

서경지부는 지난 7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브란스병원과 청소용역 계약을 맺은 ‘태가비엠’이 작성한 업무일지를 공개했다. 태가비엠은 근무인원과 작업내용·휴무자 명단 등을 정리한 업무일지를 매일 작성했다. 해당 업무일지는 태가비엠 소속 소장 외에 세브란스병원 사무팀과 파트장·팀장으로부터 결재가 이뤄졌다. 눈에 띄는 대목은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들이 업무일지에 특이사항을 기재해 태가비엠에 내려보낸 점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수상쩍다.

지난달 7일 업무일지에는 “민노(서경지부) 집회정보 (9/8, 9, 12, 13) 만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은 “최다혜(서경지부 조직차장)의 한노 집행부 방문 소란 등은 철산노 위원장에게 실시간 전달해 ‘노노대응’ 유도 바랍니다. 최ㅇㅇ 배상”이라는 내용이 손글씨로 적혀 있다. 세브란스병원 사무팀 파트장 최아무개씨가 업무일지를 통해 태가비엠에 세브란스병원분회에 대한 대응전략을 지시한 것이다. 그 밑에는 또 다른 손글씨로 “명심하겠습니다”라는 답변이 적혀 있다. 이들이 주고받는 업무일지에 등장하는 '철산노'는 한국노총 소속 철도사회산업노조다.

지난달 25일 업무일지에는 “민노, 한노, 비노 인원현황 상세 데이터로 주세요”라거나 “주말, 휴일 등 민노 서경지부 또는 태가비엠 민노 조합원의 소행으로 보이는 민노총 전단지가 병원장실 등에 배포된 점에 대해 유의하시고 주말, 휴일 민노 서경 및 민노 조합원 동향파악 집중 부탁드립니다. 최ㅇㅇ 배상”이라고 기재돼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민노 집회에 따른 태가비엠의 대응전략 보고해 주세요”라는 내용이, 이튿날에는 “사무부장님도 지시하신 ‘민노 불법행위 조치 방안’ 신속히 보고 바람”이라는 내용이 업무일지에 포함돼 있다. 서경지부는 “‘사무부장님도 지시하신’이라는 문구는 사무팀 파트장 개인 차원이 아니라 세브란스병원 차원에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 "이렇게 노골적인 원청 개입은 처음"

신촌 세브란스병원 본관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과 월 2회에 불과한 휴무 등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지난 7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에 가입해 세브란스병원분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한국노총 산하 기존 노조가 있었지만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았고, 용역업체 관리자들의 모멸적 탄압 역시 견디기 어려웠다”고 증언했다.

전체 청소노동자 200여명 중 130여명이 분회에 가입했다. 태가비엠 현장관리소장은 청소노동자들과의 개별면담에서 “(가입원서에) 사인을 했느냐” 또는 “복수노조 만들어도 되는데 민주노총은 안 된다” 혹은 “세브란스병원은 민주노총은 절대 안 된다는 거야” 등의 발언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다.

태가비엠은 또 매년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던 관행을 깨고, 올해 6월 입사자부터 3개월 단위 ‘쪼개기 계약’을 하고 있다. 노조 압박용으로 볼 여지가 크다. 결국 분회에 가입한 노동자 중 90여명이 탈퇴했다. 탈퇴한 인원은 철산노에 가입했다. 임금·단체협상이 개시되더라도 분회가 교섭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 원청인 세브란스병원이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증거까지 나온 상황이다. 원청이 주도한 부당노동행위로 볼 소지가 크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세밀한 업무지시를 내렸다는 점에서 불법파견 논란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박명석 서경지부 지부장은 “지부가 집단교섭을 벌여 온 27개 병원·대학은 물론이고 개별교섭을 하는 10여개 일반 사업체의 경우만 봐도 세브란스병원처럼 원청이 대놓고 하청노조의 활동을 방해한 사례가 없다”며 “용역계약 관례에서 원청이 개입한 그 자체가 불법인 만큼 모든 위법사항에 대해 법적 조치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브란스병원측은 “병원은 청소용역업체 노사관계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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