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대상판결 : 헌법재판소 2016.9.29 선고 2014헌바254 결정


1.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 전기기사로 근무하던 근로자다. 청구인은 2011년 11월11일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버스 뒷바퀴에 왼손이 깔리는 사고를 당해 손가락에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청구인은 산업재해보상보험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불승인했다.

청구인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불승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 과정에서 불승인의 원인이 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청구인이 제기한 불승인처분취소청구와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이에 청구인은 2014년 6월9일 ‘산재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과 이에 대한 구체적 인정 기준인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29조’가 평등원칙에 위배되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등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9일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29조는 심판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각하하고, 산재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에 대해서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입법자에게 2017년 12월31일을 시한으로 동 법률 조항을 개정하도록 하고, 법률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는 동 법률 조항을 잠정적으로 적용한다고 결정했다.

2. 이 사건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의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된 산재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산재보험법 (2007. 12. 14. 법률 제8694호로 전부개정된 것)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①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ㆍ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업무상 사고

다.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

이와 관련, 동법 시행령 제29조는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에 대한 산재 인정기준을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2008. 6. 25. 대통령령 제20875호로 전부개정된 것)

제29조(출퇴근 중의 사고) 근로자가 출퇴근하던 중에 발생한 사고가 다음 각 호의 요건 모두에 해당하면 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다목에 따른 업무상 사고로 본다.

1. 사업주가 출퇴근용으로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사업주가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던 중에 사고가 발생했을 것

2. 출퇴근용으로 이용한 교통수단의 관리 또는 이용권이 근로자 측의 전속적 권한에 속하지 아니하였을 것

산재보험을 관장하는 근로복지공단은 그동안 출퇴근 중 재해에 대해 산재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 및 동법 시행령 제29조를 엄격히 적용했다. 그 결과 근로자가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과정, 승용차·자전거 등 본인 소유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과정 등에서 발생한 재해는 산재로 인정받기 매우 어렵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29조에서 정한 경우나 근로복지공단 내부 지침이 인정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반면 공무원의 공무상 재해 인정 기준을 정한 공무원연금법은 공무원이 통상적으로 출퇴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공무원은 일반 근로자와 달리 출퇴근 중에 재해를 당하는 경우에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치료비, 임금 등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2012. 3. 9. 행정안전부령 제287호로 개정된 것)

제14조(출퇴근 중의 사고로 인한 부상 또는 사망 등) 공무원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근·퇴근하거나 근무지에 부임(赴任) 또는 귀임(歸任)하는 중 발생한 교통사고·추락사고 또는 그 밖의 사고로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경우에는 공무상 부상 또는 사망으로 본다.

이에 산재보험의 출퇴근 중 재해 인정 기준이 비합리적·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정부와 국회는 계속 침묵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오랫동안 유지됐던 산재보험의 핵심적인 문제점들 중 하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입법자로 하여금 그 문제를 개선하도록 강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주요 이유는 산재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이 근로자들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현행 산재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에 따르면,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에게 발생한 출퇴근 중 재해는 사업주가 통근버스와 같은 교통수단을 제공하거나 이에 준하는 경우에만 산재로 인정된다.

사업주가 교통수단을 제공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적 여력이 없어 교통수단을 제공하지 못하는 영세 사업주에게 고용된 근로자는 그 보호에서 배제되는 불합리한 차별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동일한 산재보험의 보호 대상임에도 일정한 경제력이 있는 사업주에게 고용된 근로자는 보호를 받고, 경제적 여력이 없는 영세 사업주에 고용된 근로자는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했다.

물론 사업주가 경제적 여력이 충분함에도 교통수단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동일한 산재보험의 보호 대상인 근로자들이 어떤 사업주에게 고용됐는가에 따라 차별받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하는 산재보험에서 사업주의 경제적 여력, 사업주의 특성 등 비합리적 원인으로 근로자들이 차별받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비합리적 차별을 파생시키고 있는 산재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3. 결론을 대신해

사실 산재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은 굳이 헌법상 평등원칙을 논하지 않더라도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의 입법취지에 걸맞지 않는 규정이므로 진작 개정됐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도 이 사건 결정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근로자의 출퇴근 행위는 업무의 전 단계로서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사실상 사업주가 정한 출퇴근 시각 및 근무지에 기속된다. 우리 산재보험은 출장행위 중 발생한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출장행위도 이동방법이나 경로 선택이 근로자에게 맡겨져 있다는 점에서 통상의 출퇴근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통상의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는 것이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의 입법취지에 부합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근로자들이 출퇴근 중 재해를 당하고 있지만 산재보험의 불합리한 기준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정한 2017년 12월31일은 어디까지나 최종 시한일 뿐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법률 개정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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