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원F&B 봉사단이 지역내 복시시설을 찾아 정신장애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5월 어느 날. 나이 지긋한 한 노동자가 서울 창신동 전태일재단(이사장 이수호)을 찾았다. 그는 이수호 이사장에게 쭈뼛이 봉투 하나를 건네고 사라졌다. 봉투에는 2천9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재단 관계자가 이름·나이·소속 등을 물어보자 “청소노동자”라고만 밝힌 채 자리를 떴다. 전태일 열사 46주기를 맞아 재단에 "열사의 풀빵 정신이 뭐냐"고 묻자 되돌아온 에피소드다. 버스비를 아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 먹이고 집으로 걸어갔던 일은 전태일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매일노동뉴스>가 9일 재단 자문을 거쳐 풀빵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노조를 소개한다.

"정신장애인들과 웃고 춤추고 보람 느껴"

동원F&B노조(위원장 강진명)가 자신들보다 낮은 위치에 선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 때는 2004년이었다. 그해 11월 기혼여성이 주를 이룬 비정규직까지 노조 가입범위가 확대됐다. 이를 기점으로 매년 가정의 달과 연말연시에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노조 정규 사업계획으로 자리 잡았다.

그즈음 봉사활동단도 꾸렸다. 명칭은 ‘동원F&B 봉사단’이다. 노조 조합원이 중심이 된 봉사단이지만 회사 이름을 내걸었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 이름을 내건 것이 생색내기에는 좋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보다 큰 차원에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명칭 탓에 간혹 봉사단 활동에 회사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이뤄지기도 한다.

10여명의 단원으로 출발한 봉사단은 초기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활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노조 조합원은 물론 퇴직자까지 봉사단에 결합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여러 기관들로부터 “몇 곳에 대한 꾸준한 후원이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정기후원 단체 5곳을 정해 활동하고 있다. 데레사의집·다니엘의집·안양부흥종합사회복지관·바오로교실·은혜로운 집이다. 결손아동·정신장애인·노숙인을 보호하는 곳이다.

봉사단원 156명 중 중복인원을 제외한 35~45명이 한 달에 한 번 이들 기관을 방문한다. 식사·목욕·청소·말벗 되기 등의 활동을 한다. 봉사단 관계자는 “은혜로운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고개를 든 분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함께 웃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사적으로 전화통화도 한다”며 “그럴 때 보람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봉사단은 1~2년 전부터 농촌봉사활동에도 참여한다. 경기도 화성 농가를 찾아 일손을 거들고, 직접 농산물도 기른다. 직접 수확한 배추·고추 등으로 김장김치를 담가 연말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과 나누는 활동을 준비 중이다.

식품회사 구성원이라는 점을 활용한 봉사활동도 관심을 끈다. 봉사단은 연말 참치캔 등이 담긴 ‘사랑의 선물상자’ 100여개를 은평구에 전달한다. 올해 12월에는 상자의 개수를 두 배 정도 늘릴 계획이다.

노조는 2008년부터 개인 시간을 쪼개 활동하는 단원들을 대상으로 제주도 연수를 보내 준다. 현재까지 57명의 단원이 연수를 다녀왔다. 강진명 위원장은 “노동자들도 어렵지만 어려운 사람의 마음은 어려운 사람이 안다고 주위를 둘러보면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며 “막상 혼자 이웃을 돕기 어려우니 봉사단을 꾸렸고, 조합원을 넘어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도 노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업장·국경 넘어 '나눔' 실천

2009년 12월 결성된 희망연대노조는 어느덧 나눔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케이블방송이나 인터넷 통신망을 개설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지역민 생활에 밀착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한다.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일을 하면서 기업 소속이 아닌 개인이 돼 고객을 만난다”며 “그들 역시 하나의 노동자로 자연스레 지역과 노동운동의 접점을 찾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2011년 연말 서울 강동과 성북에서 출발한 지역사회공헌사업이다.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네트워크를 구성해 아동·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지원활동을 한다. 임미진 노조 생활문화연대국장은 “미래의 노동자이자 가장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아동·청소년을 지원대상으로 정했는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세부 사업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마련된 것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위한 △책 읽어 주기 △생태교실 △반찬 배달 △희망의 집수리 등이다. 출발은 쉽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직접 사업에 참여해 발로 뛰면서 노조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켰다. 노조가 전달한 운영기금으로 정서적 불안을 겪는 아이들의 심리상담을 하기도 한다.

노조의 지역사회공헌사업은 최근 마포·서대문까지 참여해 11개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역별 아동·청소년 사업을 기반으로 독거노인 지원 같은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시도와 실험이 진행된다. 마포의 경우 올해 공동체경제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영세 상가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를 개발해 상권을 활성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씨앗 자금으로는 노조의 사회공헌기금을 쓴다. 기금은 2011년 노조 씨앤앰지부가 임금·단체교섭에서 확보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각 지부가 교섭을 통해 확보하는 사회공헌을 위한 비용이다. 노조는 이후 5년간 총 16억5천만원의 자금을 확보해 사회공헌사업에 투입했다.

노조의 나눔활동은 국경도 넘어섰다. 수혜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는 네팔이다. 노조는 2012년부터 네팔의 ‘신미궈’와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신미궈는 한국에서 일하다 자국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이 만든 단체다. 노조는 그해 연말 연대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네팔 현지를 방문했다. 사회공헌기금의 일부가 신미궈에 전달됐고, 2014년 4월 네팔의 포카라 지역에 ‘희망학교’가 세워졌다. 네팔 아이들을 위한 급식비 지원사업도 계속되고 있다.

부모 잃은 학생 졸업식 챙기는 노동자들

금속노조 현대로템지회(지회장 한채관)도 20년 가량의 관록을 갖춘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조직이다. 1990년대 후반 지회는 노사 교섭을 통해 회사에서 자동판매기 운영권을 인수했다.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지역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에 쓰기로 했다.

최근에는 보험사와 협약을 맺어 나오는 재원을 사회공헌사업에 사용한다. 조합원들이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 지회에 수익금 일부가 전달되고 연대사업에 쓰이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창원지역 독거노인 10여명과 부모가 없는 학생 10여명에게 매월 생활비를 지원한다. 주기적으로 거주지를 방문해 애로사항을 묻고 생필품을 공급한다. 지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들을 불러 위로한다. 노인들의 봄가을 야유회와 학생들의 졸업식을 챙긴다.

한채관 지회장은 “처음에는 노조의 강성 이미지를 벗고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기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며 “연차가 쌓이면서 어느덧 노조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서강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만든 ‘민들레 장학금’은 말 그대로 전태일의 풀빵을 빼닮았다. 전국여성노조 서강대분회(분회장 김희숙)는 2010년부터 조합원들로부터 십시일반 돈을 모아 300만원의 장학금을 마련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 2명에게 각각 100만원을, 조합원 자녀 2명에게 각각 50만원의 학비를 지원한다. 김희숙 분회장은 “과거 학생회 지원으로 식비인상 투쟁에 성공한 적이 있다”며 “그게 너무 고마워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오동진 전태일기념사업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전태일 정신의 핵심은 연대·나눔·평등으로 요약된다”며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대응으로 노조의 이 같은 역할이 축소됐었는데, 최근 들어 사회연대전략 차원에서 다시 활성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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