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하청업체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와 철로 보수업무 노동자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업체에서 죽어 가는 노동자 대다수는 하청노동자다. 안전업무 외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높아지면서 외주화 금지 관련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국회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위험의 외주화 중단 필요성에 관한 기고를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왔다. 다섯 차례로 나눠 싣는다.<편집자>



현재 국회에는 노동자·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무차별적인 외주화를 중단시키기 위해 3가지 방향의 입법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28조 도급 금지 규정을 현실화하고, 29조의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두 번째는 특별법을 제정해 생명·안전업무를 규정해 금지하고, 고용의제 조항을 포함해 도급 금지를 강제하는 방안이다. 세 번째는 노동부의 입장으로 산업안전보건법 28조 도급인가 제도를 확대 정비하고, 29조 원청 범위를 확대하면서 책임을 일부 강화하는 방안이다. 한국의 산업재해 현실에 비춰 봤을 때 원·하청 합산재해 제도, 안전보건 경영공시제도, 산재은폐를 해결하기 위한 병원 신고제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기업살인법) 등 추가적인 제도개선이 이어져야 하겠지만 우선과제로 외주화 금지와 원청 책임 강화에 대한 입법이 필요하다.

도급인가 제도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대안이 될 수 없다. 2012~2013년 재벌 대기업에서 하청노동자 산재사망이 잇따르면서 산업안전보건법 28조의 도급인가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현행 도급인가 제도가 사문화된 법령이었기 때문이었다. 논란이 이어진 후에도 도급인가 범위 자체가 제한적인 데다, 도급인가에 대한 노동부의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인가를 받은 사업장이 적고, 인가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도 미미한 상태다. 2016년 황산 누출 폭발사고를 일으켰던 울산 고려아연의 경우처럼 도급인가를 받고 정부 점검도 일부 진행됐던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서 도급인가 제도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도급과 재하도급 금지가 성역이 아니라는 점을 곱씹어야 한다. 건설업은 하청구조가 숙명인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 등은 하도급을 제한하고 있다. 원청의 직접고용과 직접시공도 강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도급·재하도급을 법령으로 금지한 분야가 많다. 건설산업기본법에도 제한적이나마 직접시공제가 도입돼 있고, 재하도급은 금지돼 있다. 소방·전기공사·정보통신공사·시설물 안전관리·다중이용시설의 화재방지, 환경오염방지 시설, 광산 피해방지, 토양환경 보전 등 안전과 환경과 관련한 내용을 대상으로 도급·재하도급 금지 법령이 제정돼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소프트웨어산업법)에는 공공계약인 경우에 50%를 초과해 하도급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즉 부실시공·안전·환경 등 공익과 노동조건 악화 방지를 위해 도급·재하도급을 금지하는 국내법이 적지 않게 축적돼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국회는 간접고용 현실에 입각한 입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현장에는 도급·파견·용역·근로자 공급이 뒤엉켜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하청노동자 산재사망 원인은 아주 단순한 곳에 있었다. 2011년 인천공항철도 심야 선로 보수작업 5명 사망사고와 올해 경주역 코레일 선로보수 작업 사고는 열차 진입 정보가 하청노동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성수역·강남역에 이어 19살 청년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구의역 참사도 1시간 이내에 점검·수리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는 원·하청 계약조건 때문에 컵라면으로 끼니 때울 시간도 없이 위험작업에 내몰린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열차 진입을 멈추려면 9단계를 거쳐야 했던 하청 고용구조가 문제다. 원청 책임 강화는 여전히 중요한 개선과제다. 그러나 안전보건상 원청 책임 강화만으로는 하청 고용구조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요원하다. 원·하청이 동등한 계약조건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사업을 진행하는 외국의 도급제도를 인용해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는 한국의 하청 산재사망을 막을 수 없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한국에서 산재사망의 80%가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고서도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 선임은커녕 무차별적인 와주화에 급급한 대기업의 하청 사업장이 상당수다. 하청 산재사망 문제는 수탈적인 원·하청 구조에 기인한다. 원·하청이 노무공급에 불과한 계약을 하고, 원청은 안전보건관리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청은 고용규모나 업종문제로 안전보건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위험한 업무와 생명·안전 업무에는 도급을 금지해야 한다. 정부는 원·하청 노동자 모두를 상시근로자로 산정하고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자·산업안전보건위원회·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비롯한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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