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손잡고 아이는 광장에 섰다. 거기 민주공화국과 헌법과 주권자 따위 교과서 속 단어가 살아 들끓었다. 촛불 밝혀 밤늦도록 공부했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다 늙은 아빠와 덜 늙은 아들이 광장에 나란히 섰다. 늙은 엄마 팔짱 끼고 주름 많은 딸이 웃었다. 실로 오랜만의 일. 고맙다. 실은 이런 것도. 잊고 지내던 오랜 친구를 광장에서 만났다. 한목소리 오랜만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행진했고 목청 더불어 높였다. 한때 뜨거웠던 가슴, 다 식은 줄로만 알았다고 말하던 친구 어깨를 툭 치고 같이 웃었다. 뒷골목 호프집 등불 아래 친구 눈시울이 종종 붉었다. 고맙다, 또 이런 것이. 말 못하고 숨죽이던 사람들이 큰소리로 외쳤고, 홀로 걷던 이들이 함께 걸었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식을 배워 가며 광장에 그 많은 사람이 서로 기댔다.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았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광화문광장 돌침대에 누워 오래 노숙하는 이들이 오늘 또 깃발 세워 흔드는 것이 또한 고마운 일 아니던가. 그만하라, 실은 이런 말도 고마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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