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그리스 신화에 에리식톤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신성한 나무와 숲을 베어 버렸답니다. 이 일로 신의 저주를 받은 에리식톤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래도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참을 수 없는 식탐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도 허기를 메우지 못한 에리식톤은, 제 딸을 팔아서까지 먹을 것을 구하다가, 드디어 제 몸뚱이마저 뜯어먹게 되고, 결국은 앙상한 이빨만 남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박근혜의 대통령으로서의 헌법 위반과 직무유기, 직권남용을 통한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며 박근혜의 얼굴에 자꾸 에리식톤의 얼굴이 겹칩니다. 결국은 탐욕의 이빨만 남게 되는 처참한 몰골이 떠올라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세 번째로 발표된 담화문을 대하며 그런 느낌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사실 이번 담화문은 검찰이 공범자들의 조사를 통해 박근혜의 죄상을 낱낱이 밝혔고, 또 그것이 모든 언론들의 취재에 의해 철저히 확인되는 시점에 발표된 것이라, 국민의 상식으로는 이제는 아무리 박근혜라도 어쩔 수 없겠구나 하며, 어느 정도의 인정과 반성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리식톤 박근혜는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이 어떤 자리이고, 어떤 일을 어떤 근거로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한 개념은 결여된 채 범죄집단 수준인 측근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하며 엄청난 해악을 나라와 국민에게 저지른 죄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사심이 없었으므로 내 잘못이 아니고 모두 남 탓이라고 발뺌했습니다. 그 부분을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읽어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정말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야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교묘히 이용하며, 공을 슬쩍 국회로 던지며 연명하려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정말 허탈하고 기가 막혔습니다. 아니 기분이 정말 더럽고 또 한 번 참담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최소한 인간이면 갖추고 있다는 수오지심이 배반당하며, 그것을 통해 측은지심을 발휘하려고 기대했던 국민이, 그 기회마저 처참하게 박탈당한 데 대한 안타까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에리식톤 박근혜는 우리들의 상식을 또 한 번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한 인간의 현재 모습은, 태어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총합입니다. 특히 인격 형성 과정인 청소년기의 삶은 대단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여정에서 누굴 만나느냐는 것도, 때론 인생행로에서 결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훌륭한 삶을 사신 분들이 이런 만남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또한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만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일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사업가 이승훈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안창호였지만 그의 생각과 주장을 옳게 여겨, 재산을 정리해 오산학교를 세웠습니다. 후진양성을 하며 독립운동에 기여했기에, 그 만남이 빛났고, 갈릴리 바다의 무식한 어부 베드로는, 예수를 만나 그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섰기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됐고 결국은 기독교 교회의 머릿돌이 된 것입니다.

박근혜와 최태민·최순실의 만남은 그 반대였습니다. 기생충 같은 최태민 부녀는 아주 나쁜 동기로 박근혜에게 접근했고, 결국은 박근혜의 영혼과 육체를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오롯이 박근혜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 모든 추잡한 범죄행위의 몸통이었으니까요. 박근혜는 기생충 땜에 그렇다고 한심한 핑계를 대지만, 그 기생충을 키우며 끊임없이 탐욕을 채운 게 자기 자신인데 어찌한단 말입니까?

3일은 또 우리가 촛불을 드는 날입니다. 스스로 기생충에 감염돼 온갖 범죄행위로 온몸이 썩어 악취가 온 천지에 가득한 박근혜를 확실히 들어내지 않고는, 나라 전체가 썩어 갈 지경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끌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단결된 힘으로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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