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경향신문>은 1980년 8월19일부터 전면기사로 '새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을 4회 연속으로 실어 언론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전역하지도 않은 현역군인을 전임 대통령 하야 발표 직후 ‘생사관(生死觀)선 의리와 정직의 성품’으로 칭송하며 차기 대통령으로 부각시켜 ‘새 시대의 새 영도자’로 이름 붙인 언론의 ‘대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모든 신문이 앞다퉈 ‘인간 전두환’ 시리즈에 뛰어들었다.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인간 전두환'(조선 김명규 기자), '솔직하고 사심없는 성품-전두환 대통령 어제와 오늘 합천에서 청와대까지'(중앙 전육 이석구 김재봉 성병욱 기자), '우국충정 30년-군생활을 통해본 그의 인간과 새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동아 최규철 기자),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육사 입교에서 대장전역까지'(한국 하장춘 김훈 장명수 기자) 등 언론은 ‘전두환 찬양 시리즈’ 각축전을 벌였다. 하지만 내용은 대부분 경향신문을 뒤늦게 베끼는 데 그쳤다. 이런 희대의 기사를 쓴 이는 경향신문 김길홍 기자다.

김 기자가 이 기사를 쓰기 두 달 전, 경향신문엔 군부의 검열을 거부한 기자 6명이 용공 혐의로 전격 연행당해 80년 언론대학살의 포문을 열었다. 김 기자가 경향신문에 입사한 건 80년 7월22일이다. 입사 한 달도 안 돼 이런 기사를 쓴 김 기자가 대단하다.

그러나 역사는 늘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김 기자는 당시 실세 권정달 정보처장과 안동 동향이었다. 김 기자는 80년 봄까지 신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였다. 김 기자는 청와대에서 신아일보 폐간 정보를 재빨리 입수해 경향신문으로 말을 갈아탔다. 이후 김 기자는 5공 언론창달의 주역이 됐다. 김 기자는 전두환 찬양열전으로 일약 신군부의 실세로 부각, 82년엔 허화평 정무수석과 이수정 언론담당 1급 비서관 밑에서 2급 비서관을 지냈고, 84년 허문도가 문공부 차관에서 정무수석으로 옮김과 동시에 1급으로 영전했다. 6공 때인 88년 13대 총선에선 민정당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해 92년 14대 총선 땐 고향 안동에서 당선됐다.

전두환을 참군인으로 만든 사건은 2개다. 68년 1·21 사태와 1사단장 시절 땅굴 발견이다. 그러나 1·21 사태에서 전두환이 실제 한 일은 언론보도와 많이 다르다. 김신조가 청와대 뒤 자하문 쪽으로 급습했을 때 경비병력은 경복궁에 주둔한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대대장 전두환)였다. 기습 당일 비상이 걸렸는데도 전두환 대대장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상황이 끝난 뒤에야 나타났다. 당시 전두환은 술집에서 술 마시고 있었다는 게 통설이다. 대대 참모 장세동이 그나마 병력을 움직였으나 경찰이 한바탕 격전을 치른 뒤였고, 다급했던 경찰이 시내버스에 수류탄을 까 넣어 사람까지 죽었다. 예하 안현태 중대장은 이미 죽은 시체를 작전 중 사살로 꾸며 훈장까지 받았다. 전두환 대대장은 처벌받아 마땅했지만 직속상관인 박종규 경호실장의 총애로 구제돼 청와대에 계속 남아 출세가도를 달렸다.

김 기자만이 아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출입을 끝낸 뒤에도 해외연수나 해외특파원으로 근무하는 특전을 누렸다. 청와대를 84년 1월부터 86년 7월까지 출입한 KBS 유자효 기자는 프랑스 특파원, 84년 1월부터 86년 4월까지 청와대를 출입한 MBC 김동진 기자는 LA특파원으로 나갔다. 전두환의 제5공화국 땐 청와대 공보실이 기자를 선정해 소속사에 통보하기도 했다.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제3공화국은 전두환을 키워 제5공화국을 만들고, 친구에게 제6공화국을 물려주면서 지금까지 이어졌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보면서 우리가 과연 3공화국이라도 제대로 극복했는지 의문이다. 박근혜가 중학교에 입학한 64학년도 입시시험만 유일하게 국어와 산수만 쳤다(머니투데이 1일자 25면). 중학교 입시에 두 과목만 친 건 그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잘 보이려 한 누군가의 작품이었다. 전두환의 아들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공교롭게도 과외가 금지됐다.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지식 장사치로 살아온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국정농단의 주요한 축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