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의 날에는 시민 170만명이 참여했다. 행사가 열리는 시간 청와대 내부 건물 대부분은 불이 꺼져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촛불민심이 들끓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 초기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던 시민들은 이제 "구속하라" "처벌하라"를 외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퇴진의 날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오전부터 수많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광화문광장 곳곳에서 청년·비정규직을 비롯한 각 부문 단체의 사전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풍물인들은 이순신 동상 앞에서 통일비나리·사물놀이 같은 풍물을 선보이며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세종대왕 동상 옆에서는 미술가들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풍자를 담은 즉석그림을 그렸다.

하루 종일 “박근혜 퇴진” 울려 퍼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얼굴을 새겨 넣은 인형이 광화문광장에 던져지자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누가 만든 것인지 모를 인형을 발로 차며 광장을 누볐다.

민주노총 비정규직 노조들은 '박근혜 퇴진 비정규직대회'를 열고 정부의 비정규직 확산 정책을 규탄했다. 공공성 강화 성과퇴출제 저지 공동행동은 철도노조 파업 등 사회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노동계의 투쟁을 응원했다. 의료민영화를 필두로 정부와 재벌이 결탁해 시도 중인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 중단을 요구했다.

22개 예술대 학생회가 모여 꾸린 예술대학생시국회의는 서대문 방향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시국대회를 연 뒤 뮤지컬 <레미제라블> 주제곡 중 하나인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했다. 청소년단체와 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들도 각자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지지를 보냈다.

같은날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건물에는 4월 대통령 퇴진·6월 조기대선 카드를 들고나온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달걀 세례가 날아들었다. 서울진보연대가 주최한 '국정농단 공범 새누리당 규탄대회'는 주최측 예상을 웃도는 2만여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현장 사회자는 "집회 규모를 잘못 예상해 장비가 열악하다"며 "스피커 소리가 대열 끝까지 들리지 않아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공범인 새누리당은 해체 대상일 뿐"이라며 "박근혜 명예퇴진을 말하며 국민을 기만하는 새누리당은 즉각 해체하라"고 소리 높였다. 이들은 새누리당 당명이 적힌 대형 현수막을 찢고, 당사로 달걀을 던졌다. KBS와 전경련 앞으로 행진한 이들은 편파방송과 국정농단 사태 주범인 재벌을 비난했다.

"그토록 가려던 이곳에 드디어…"
세월호 유가족들 청와대 앞에서 오열


분노한 민중은 이날 오후 내내 청와대를 포위했다. 법원은 이달 2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제기한 경찰의 옥외집회 조건통보·금지통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해 청와대 100미터 지점까지 집회·행진을 허가했다. 비상국민행동은 촛불집회 본행사에 앞서 사전 출정식을 열고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나아갔다. 효자치안센터와 효자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근접한 자하문로 16길과 청와대에 인접한 검문소까지 행진했다. 청와대는 동·서·남 방향에서 다가온 시민들에게 포위당하는 형국이 됐다.

효자치안센터 방향의 행진대열 선두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섰다. 이들을 이끄는 방송차량에 선 사회자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가서 대통령 즉각 퇴진과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을 밝힐 것을 요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2년이 넘도록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이들은 청와대 앞 100미터 지점에 다다라 청와대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자 오열하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시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세월호 유가족을 격려했다. 전명선 4·16세월호참사 가족대책협의회 운영위원장은 "2년7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오지 못한 이곳에 시민들과 함께 서는 게 꿈이었다"며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고 지금까지 국민을 기만한 죄악을 낱낱이 밝히라"고 울음을 토했다.

효자치안센터 앞까지 행진한 시민들은 밤 11시까지 현장을 지키며 "박근혜는 퇴진하라" "즉각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 갔다.

촛불민심 “퇴진만으로 안 돼”
박근혜 구속·처벌 요구


본행사가 시작된 오후 6시를 전후해 광화문광장 일대에 인파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북쪽으로는 율곡로·사직로, 남쪽으로는 서울시청까지 광화문 일대 공간이 촛불로 가득 찼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사퇴 문제를 국회가 결정해 달라고 요구한 박 대통령을 비판하며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혹은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노를 표현했다.

탄핵소추안 처리를 막으려는 새누리당과 우왕좌왕하는 야당을 향해 "국회는 밥값을 하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다음 촛불은 국회로 향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본행사 무대에서 "3차 담화의 본질은 자신이 죄가 없고, 명예로운 퇴임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며 "(박대통령은) 즉각 퇴진이라는 국민 명령을 거부하고 국회를 이용해 자신의 범죄행위를 덮으려는 대국민 사기극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상국민행동이 청와대를 향해 경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기로 하면서 이날 본행사 공연은 최소한으로 꾸려졌다. 가수 한영애씨가 갈증·내나라 내겨레·홀로 아리랑·조율 등 네 곡을 열창했다.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알려지지 않은 7시간을 규명해야 한다는 뜻으로 오후 7시 정각에 맞춰 참가자들은 일제히 촛불을 껐다가 다시 켰다. 시민들은 어둠 속에서도 전광판에 새겨진 여덟 글자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1분간 목 놓아 외쳤다.

1시간가량의 본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청와대를 향해 2차 대행진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을 잊지 말고 진실을 밝히자는 의미를 담아 시민 416명이 횃불을 들고 광화문 앞 행렬 선두에 섰다. "청와대는 포위당했고, 박근혜는 고립됐다"는 참가자들의 연대발언이 울려 퍼졌다. 청와대 200미터 앞 신교동로터리까지 행진한 참가자들은 자정을 전후해 스스로 해산했다.

전국 곳곳에서 촛불·횃불 '활활'
“탄핵 여부에 따라 촛불집회 성격 달라질 것”


지역별 촛불대회 열기도 서울 못지않았다. 부산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부산진구 서면교차로에서 광무교까지 촛불이 늘어섰다. 참가자들은 그룹 들국화의 대표곡인 '행진'의 가사를 고쳐 "퇴진, 하는 거야"를 노래하며 1시간30분 부산시내를 행진했다. 부산에서도 횃불이 등장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흘린 피가 뿌려진 광주 금남로에는 쇠창살로 만든 감옥이 등장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김기춘·우병우·새누리당·재벌을 상징한 사람들이 죄수복을 입고 감옥에 앉았다. 시민들은 이들이 감옥에 들어서는 순간 "조건 없는 즉각 퇴진"과 "책임자 처벌"이라고 소리 높였다.

박 대통령의 정치 텃밭 대구는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퇴진 대구시민행동이 이날 오후 2·28 기념공원 앞에서 개최한 '내려와라 박근혜 5차 시국대회'에 시민 5만명이 참여했다.

비상국민행동에 따르면 부산 22만·광주 15만·대전 5만·춘천 2만·제주 1만1천 등 지역에서 62만1천명이 촛불집회에 동참했다. 서울 170만명과 합쳐 이날 촛불집회 참가자가 232만1천명이라는 믿기지 않은 숫자가 나온다.

비상국민행동 관계자는 "박근혜 즉각 퇴진이 이뤄질 때까지 시민들은 흔들리지 않고 광장에 모일 것"이라며 "9일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에 따라 10일 촛불집회 성격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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