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력 24년 소리꾼김지영씨가 예술강사들의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내용의 판소리를 하고 있다. 구태우 기자

영하 3도.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던 11일 아침 유명 방송국이 들어선 서울 마포구 상암동 거리에 사물놀이와 판소리 한마당이 펼쳐졌다. 판소리와 사물놀이를 선보인 이들은 전문 국악인이자 전국 초·중·고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예술강사다. 여느 때라면 2017년 수업 커리큘럼을 짜고 있었겠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올해부터 예술강사사업 운영방식을 바꾼 탓이다. 3월부터 운영되던 수업이 5월로 미뤄졌다. 기존에 수업을 맡아 가르치던 강사도 필기·실기시험을 치르고 합격해야 재고용하는 식으로 바꿨다.

2017 예술강사지원사업 파행 저지 대책위원회는 이날 진흥원이 입주해 있는 상암동 YTN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대책위에는 서비스연맹 예술강사노조·공공운수노조 예술강사지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200여명의 예술강사들은 목도리를 동여매고, 한 손에는 핫팩을 든 채 “고용안정 보장하라”고 외쳤다.

강사 16년차도 매년 시험

김지영(38)씨는 청주지역 학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는 소리꾼이다. 전문강사로 활동한 지 16년 됐다. 14살 때부터 판소리를 했으니 소리 경력으로 치면 24년 됐다. 김씨가 목청을 높여 아이들을 가르치고 받는 한 달에 받는 돈은 120만원가량이다. 수업 시수가 제한돼 한 달에 30시간 정도 수업을 한다. 진흥원이 올해부터 시급 4만원에 3천원을 얹어 준다고 했지만 김씨는 영 달갑지 않다.

바뀐 제도는 김지영씨에게도 적용된다.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치르고 진흥원의 선택을 받아야 예술강사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진흥원은 “감사원이 예술강사 사업에 반복 참여가 과다하다고 지적해 선발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예술강사 일을 계속할지 말지는 오롯이 진흥원과 17개 시·도 지역운영기관이 결정한다. 반대로 예술강사들 고용은 불안해졌다.

대책위는 "진흥원이 강사들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지 못할 망정 기존 강사들을 수업에서 뺄 궁리를 한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학교쪽에서 강사 수업에 불만을 제기한 것도 아닌데 진흥원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했다. 경력 20년의 해금연주자인 위대령(34)씨는 “강의 실력도 자신 있어 당장 시험을 본다고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게 언젠까지 이어질지는 모르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업기간 4개월에서 반년으로 늘어

두 아들의 엄마인 위씨는 새해부터 생활비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광주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9년째 국악을 가르치는 그는 매년 11월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신청했다. 연말까지 학교 배정을 마친 뒤 이맘 때 한 해 동안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학교측과 논의했다.

진흥원이 사업시행 시기를 3월에서 미루면서 신청 시점도 밀리고 있다. 진흥원은 "사업 운영과 관련한 온라인시스템 개발을 마무리한 뒤 강사들의 신청을 받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접수는 2월6일로 3개월가량 지연됐다. 진흥원에 따르면 3월 한 달 동안 강사를 배치하고, 4월3일 최종 배치결과를 발표한다. 이후 예술강사와 학교 간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관련 워크숍까지 끝내야 비로소 수업이 시작된다.

대책위는 이르면 5월부터 수업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6월이 돼야 수업료(임금)를 받을 수 있는 위씨의 걱정도 늘고 있다. 위씨는 “보통 11월부터 2월까지 네 달을 실업자로 지냈는데 올해는 반년 가까이 백수 신세”라며 “지난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껴써서 겨우 실업기간에 쓸 돈을 모았는데 이런 일이 생겨 곤혹스럽다”고 호소했다. 진흥원 관계자는 "강사의 경력과 전문성을 인정해 선발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 중"이라며 "1월 셋째 주에 예술강사를 대상으로 사업 관련 안내를 할 텐데, 그러면 오해들이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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