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교육담당 집행위원

1. 세 가지 단절

첫째, 촛불광장과 생계직장은 공간적으로 단절돼 있는 것은 아닐까. 촛불시민들은 광장에 나와서 권력을 마음껏 비판한다. 직장에서도 우리 안의 갑질과 권력에 대해 마음껏 비판하고 있을까. 정권변동이 진행되는 역동적 정치와 달리 양극화된 사회는 고정돼 있고 경제는 쭉 저성장기에 놓여 있다. 광장촛불은 최대로 확장돼 이제는 몇만 명 정도의 집회는 눈에 띄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일상과 직장촛불은 거의 붙지도 않고 있다.

둘째, 주체가 단절된 것은 아닐까. 촛불시위 참가자 다수가 중산층이라는 분석이 꽤 있다. 촛불시위 중심인 중간계급과 달리 살기에 바쁜 기층노동시민의 참가는 많지 않다. 그나마 조합비로 버스까지 빌려서 조직적으로 참가하는 노조가입 노동자에 비해 참가가 어려운 비조직 노동자 사이에 단절이 있지 않은가.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라 이미 이중화된 노동계급의 상태는 촛불시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어떤 이들은 “미조직 대중”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수많은 시민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촛불시위에 참가한다고 했다. 온라인 관계가 단절을 넘어서는 조직관계인가? 명확하지 않다. 중간계급과 기층계급의 단절을 넘는 관계의 플랫폼은 가능할까.

셋째, 이슈의 단절이 있지 않는가. 권력농단을 비판하는 가운데 대통령 하야와 함께 권력구조 개편과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가 핵심이슈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삶의 농단과 생활구조 개편(삶의 교체)은 핵심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가 삶의 교체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 아닐까.

2. 연속혁명은 올까

촛불광장의 시민정치가 제도정치(대선)로 흡수될 가능성은 높다. 반면 광장촛불이 직장촛불로, 시민정치가 계급정치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을까. 단절을 넘어 촛불이 일상과 직장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단절을 넘어서는 방안은 뭔가.

조직노동자와 노조 없는 노동자를 연결할 통로는 무엇일까. 민주노총이 통로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할까.

권력과 유착해 온 재벌들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와 비판이 권력·정치·선거와 분리된 권리·경제·일상의 문제로 나아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까.

권력교체를 통해 새로운 정권이 단절을 넘어서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노동자에게는 야당과 선거협력 아니면 독립정치세력으로 대립할 것이냐의 양자택일만 있는 것일까. 야당과 협력하면서 계급중심전략을 펼치는 이중대응을 할 수 없는가.

3. 거대한 허무 혹은 반동의 가능성

위에서 제기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거대한 촛불=권력 꼬리 자르기=거대한 허위’로 그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끗발 올린 JTBC는 지배세력의 꼬리 자르기 선전선동 기구로 기억될 것이다. 거대한 촛불시민들은 엉망인 권력분파의 일부를 잘라 내고 헬조선의 새로운 지배분파를 만드는 동원수단으로 기억될 것이다.

설혹 그렇게 끝난다고 해도 낙관적으로 보면 촛불시위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평가, 성찰과 토론을 통해 새로운 변화의 대중투쟁이라는 ‘촛불봉기의 사후복수’가 이어질 수도 있다.

촛불에 대한 찬사가 넘치는 지금, 최악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반동 탄생 가능성도 있다. 보수지배 세력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첫째는 대선이다. 지금은 반박근혜에 동의하지만 촛불과 단절된 기층계급이 확실하게 씹을 대상이 사라진 대선에서도 야당-중간층과 똑같은 후보를 지지할 리 없다. 보수반동에게는 움직일 여지가 있다. 둘째는 대선 이후다. 야당정권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강력한 개혁을 통해 적폐청산과 사회대개조의 희망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국제정세, 재벌들의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야당정권이 하는 모습에 따라 촛불시민은 갈라질 것이다. 야당정권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새 야당이 된 보수지배층은 민주노조·시민운동·야당도 정확히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기층계급을 선동하고 조직해 새로운 보수지지층을 만들 기회를 얻을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 유럽 우파정치의 확장에서 기층노동계급은 보수파를 선택하고 있다는 사례를 잊어선 안 된다.

4. 담대한 반전(反轉)

촛불의 한계를 부각시켜 폄하하지도 말자. 세상 전부를 바꿀 힘인 양 과장하지도 말자. 한계를 부각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무력감이고 촛불을 과대포장하면서 연속혁명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과도한 기대로 보인다.

'시민정치→제도정치→권력교체'로 이어지는 촛불시위가 나아갈 가능성이 높은 길이 있다. 촛불에 함께하면서 노동운동은 '광장촛불→직장촛불→계급운동'으로 이어지는 담대한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시민단체를 만나면서 민주노총이 정규직 한계를 넘지 못하는 문제나 시민운동이 중간계급적 한계를 넘지 못하는 문제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시민운동이 민주노총을 비판할 자격을 가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도긴개긴이다.

민주노총은 프레임 전쟁에서 밀려 온 문화적 무능과 정규직 중심이라는 구조적 무능이 문제이지 직접적 전투력 약화가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노동운동의 오래된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양 날개론은 아직도 유효한가.

노동계급이 찢기고 갈라져 계급이 없는데 무슨 계급투표가 가능하겠는가. 정치세력화는 결국 운동권 정파의 권력욕만 한껏 부추겨 패권주의니 종북이니 권력투쟁만 하다가 분열하지 않았던가. 실패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또 노동자니 민중이니 연합이니 하면서 "당 만들자"고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민중경선을 하자는데, 하더라도 그 민중은 결국 조직된 일부를 넘어서기라도 할까.

요즘 신생노조를 만들면 복수노조제도 때문에 조합원 절반을 넘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전국적으로 전체 노동자들의 5%도 안 되는 민주노총이 전체 계급을 대표할 수는 없다. 산별노조 하자고 하면서 대기업의 지불능력에 기대어 민주라고 자임하지만 바로 곁의 비정규직들이 노조에 가입하려 해도 거부하는 노조가 민주는 고사하고 노조라고 할 수 있을까.

노동운동은 함께 살자, 권리 함께, 50% 조직률 같은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날 수 없는데 날아오르려 하면 추락한다. 노동운동은 양 날개를 접고 몸부터 챙겨야 하지 않을까. 노동, 날지 못해도 좋다. 제대로 걸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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