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 비정규직인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들이 힘들게 만든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노조가 무력화될 위기에 놓였다. 노조설립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대규모 해고된 데다, 상급단체 가입 승인이 늦춰지면서 조직확대 동력이 급격히 상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금속노조와 판매연대노조에 따르면 금속노조는 다음달 17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판매연대노조 가입 문제를 논의한다.

판매연대노조 지난해 5월 상급단체 가입 결정

판매연대노조는 현대·기아자동차를 판매하는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2015년 8월 출범했다. 르노삼성·쌍용자동차·한국지엠 등 완성차 5개 회사 판매노동자 4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금속노조와 함께 노조설립 과정을 준비한 이들은 지난해 5월 조합원 총회를 열고 금속노조 가입을 위한 조직형태 변경을 의결했다. 민주노총·금속노조 임원이 같은 자리에 참석해 이들을 격려했다.

그런데 상급단체 가입 결정 이후 뜻하지 않은 복병이 나타났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기아차지부에 소속된 정규직 판매직원들이 반대한 것이다. 판매연대노조 가입 문제는 지난해 6월 열린 금속노조 중앙위원회에서 이들의 반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유보된 상태다.

그러는 사이 판매연대노조의 조직 동력은 급격히 와해되고 있다. 대리점 대표들은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 100여명을 해고했다. 조합원이 많은 대리점 10여곳은 갑자기 문을 닫았다. 판매연대노조는 노동부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의원의 도움을 받아 현대차 원청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리점이 문을 닫아 돌아갈 곳이 없는 해고자들은 부당해고를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대리점 폐업과 해고 등 원청과 대리점의 압박이 계속되자 조합원이 급감했다. 올해 1월 현재 150여명을 밑돈다.

판매연대노조는 지난해 11월부터 서울 정동 금속노조 앞에서 "상급단체 가입을 결정해 달라"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농성장에서 만난 판매연대노조 조합원 ㄱ씨와 ㄴ씨는 "조직확대와 권리쟁취 투쟁을 해야 하는데, 금속노조 가입 여부를 두고 내부 동력을 소진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해고자들 '일당 벌이' 생계투쟁 안간힘

서울 양천구에 있는 현대차 대리점에서 일했던 ㄱ씨는 노조가입 사실이 알려진 뒤 대리점이 폐업했다. 그는 "폐업 이후 다른 대리점에서 일하려고 해도 대리점 대표들이 계약을 거부했다"며 "노조 가입 전력자들의 블랙리스트를 공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터로 돌아가길 기다리며 과거 자신에게 차량을 구입했던 고객들을 관리하고, 일당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일이 없는 날은 농성장을 지킨다.

10여명의 판매노동자들이 일했던 곳에서 홀로 조합원이던 ㄴ씨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부여된 '코드'가 삭제돼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 코드는 자동차를 판매할 수 있는 일종의 사원증으로 원청이 부여한다. 노조에 가입한 괘씸죄로 보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현대·기아차를 파는 노동자는 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지점 소속 정규직과 대리점 소속 판매직원으로 나뉜다.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은 대리점주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판매수수료를 받는다. 기본급·퇴직금이 없고,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이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완성차 업체들이 구조조정 일환으로 대리점 제도를 도입하면서 급격히 확산됐다. 자동차를 반드시 팔아야만 수익이 생기기 때문에 판매수수료 중 일부를 떼어내 내비게이션 같은 옵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영업활동을 했다. 이로 인해 정상가로 판매할 수밖에 없는 정규직 판매직원과 현장에서 오랜 갈등을 겪었다.

판매연대노조의 금속노조 가입 결정이 미뤄지는 이유도 직영 판매직원으로 구성된 현대차지부 판매위원회·기아차지부 판매지회가 반발하기 때문이다. 현대차지부 관계자는 "직영 조합원들은 오랜 시간 대리점을 없애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회사에 요구해 왔다"며 "대리점 판매직원들과 한 노조에 몸담을 경우 이해가 상충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민주노총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 문제를 우선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산하 연맹에서는 어렵게 노조를 만든 이들을 정규직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고용유연화 정책에 의해 발생한 노동자 간 갈등을 극복하고 한 울타리에서 자본에 맞서 싸워 나가는 단결의 정신을 보여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다음달 중앙위위원회 개최 이전에 당사자들과 만나 이견을 좁혀 나가겠다"며 "민주노조를 만들고 지켜 온 중앙위 활동가들이 합당한 결정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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