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이달 10일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손해배상·가압류 철회와 박근혜 즉각 퇴진을 관철하기 위해서다.

노조는 이날 오전 10시 “노동 블랙리스트, 검은 거래를 멈춰라”는 펼침막을 앞세우고 농성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지금 박근혜와 재벌들이 청와대에 모여 나눈 추악한 뒷거래를 똑똑히 보고 있다. 박근혜 일당이 전경련과 삼성·현대차라는 범죄단체와 주고받은 검은 거래를 낱낱이 보고 있다. 재벌은 뇌물의 대가로 노동개악을 요구했고, 정권은 노동개악을 강행했다. 재벌은 뇌물의 대가로 노동문제 해결을 요구했고, 정권은 노동자들에게 형사처벌과 손해배상이라는 올가미를 씌웠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검은 지금 이재용 삼성재벌 총수의 뇌물죄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제3자 뇌물죄에 해당하는지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하는지 저울질하면서 구속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법전에는 집단적 뇌물죄는 없는 것인가. 전경련은 노동개악을 원한다고 정권에 민원을 넣고, 정권은 그 민원을 받아 노동개악을 강행하는 반대급부로 전경련을 통해 재벌들로부터 774억원의 돈을 걷었다면, 그게 뇌물수수가 아니고 무엇인가. 뇌물수수가 아니고 선물교환이나 상품교환이란 말인가. 전경련 임원은 물론이고 돈을 낸 재벌 총수들 모두 뇌물죄를 범한 범죄자임이 불을 보듯 분명함에도, 정권이 자본가 개인과 주고받은 것은 뇌물이 되지만 집단적으로 주고받은 것은 뇌물이 안 된다는 것이 자본주의 법체제의 원리인가. 그러면 법원은 어째서 노조에게는 자본에 손해를 끼쳤다면서 노조 자체와 간부 개인에게 동시에 손해배상을 물리는가.

기자회견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3천명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 쌍용차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100억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 소송을 냈다. 함께 살자고 외친 이들에게 파업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낙인이었다. 그로 인해 28명이 목숨을 잃었고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권과 자본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전문시위꾼’으로 범법자가 돼야 했다. 법원은 15억원이 넘는 돈을 노동자들에게 물어내라고 하고 있다.”

“함께 살자는 외침에 국가와 자본이 들이댄 것은 언제나 ‘돈’이었다. 장애인들이 온몸으로 외치는 목소리에 국가가 들이댄 것이 ‘벌금’이었고, 평화를 외치는 제주 강정마을에게 들이댄 것은 34억5천만원이라는 구상권이었다.”

이 지점에서 또 한 가지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그들에게 이런 악랄한 방법을 가르쳐 줬는가. 군사독재 시절에는 해고와 구속은 많았으나 이렇게 돈으로 사람을 골탕 먹이고 죽게 만드는 방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지는 않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권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런 분이 대통령인 대한민국에 양심수가 많다면 모양이 우습지 않겠는가. 그래서 불법파업을 한 노동자들을 감옥에 구속시키지 말고, 그래서 양심수 숫자를 늘리지 말고, 그 대신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정부를 통해 한 수 가르쳤다. 이렇게 해서 손배청구가 늘어났고, 가압류가 뒤따르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그렇다면 우리 노동자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적폐만 척결해서는 안 된다. 김대중·노무현 패러다임의 적폐도 동시에 척결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두 대통령을 잇는다고 주장하는 야당들의 정책이나 행태 또한 사안에 따라 청산 대상에 포함시켜 청산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기자회견문은 이렇게 계속된다.

“블랙리스트 낙인을 벗기 위해 광화문 농성을 시작한다. 이 낙인을 벗는 길은 뇌물의 대가로 노동자들을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더 낮은 임금으로 내몬 박근혜를 퇴진시키는 길이다. 뒷거래의 대가로 손해배상·가압류·형사처벌·구속·수배 낙인을 찍고 블랙리스트로 둔갑시켜 버리는 자본의 나라에 저항하는 것이다.”

손해배상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야당이 집권하면 해결될까.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역시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다. 영국 노동운동사에서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달한 영국에서도 노동계급 정치세력화는 지지부진했다. 20세기에 와서야 본격화하는데, 그 계기가 테프-베일 판결(1901년)이라는, 철도노조의 1900년 파업에 대한 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이었다.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부정하는 이 부당한 판결을 접하고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노동당을 통해 국가 권력을 획득하기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됐다. 노조들이 대거 노동당에 가입해 1906년 의회에 다수가 진출했고, 자유당의 협조를 얻어 노동자들의 파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하는 ‘산업분쟁법’을 통과시켰다. 그렇다면 우리의 옛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들은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이에 대한 깊은 반성도 없이 무턱대고 정당을 만들어 국회에 들어가자는 말은 호소력이 없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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