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 사회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세월호 참사와 파견노동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 5법 추진, 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 지침, 정경유착과 민간인 국정농단까지 헤아릴 수도 없다.

분노한 국민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도 촛불을 들었다. 각종 노동의제가 광장에 쏟아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 성격은 예전과 달랐다.

국정농단 사태로 촛불이 타오르던 때 민주노총이 했던 정치 총파업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성과를 냈다”는 의견부터 “현장을 멈추지 않은 투쟁이 어떻게 총파업이 될 수 있느냐”는 비판까지 다양하다. 민주노총과 노동계의 고심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지난 12일 오후 ‘총파업 투쟁 평가와 제언’을 주제로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회의실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이날 좌담회에는 이호동 전 공공연맹 위원장(사회)과 안태정 역사학연구소 연구위원, 허영구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가 함께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지난해 노동자들이 진행한 투쟁을 되짚어 보고, 앞으로의 투쟁 방향을 논의했다. 지면에 이들의 논의를 소개한다.

“총파업 내걸었으면 그에 걸맞은 내용 있어야”

사회 : 2016년은 굉장히 의미 있는 해였다. 대규모 촛불항쟁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노동자 투쟁이 주목받았다. 민주노총은 정치총파업을 하며 촛불과 함께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국면에서 전개된 지난해 촛불정국과 노동자 투쟁을 평가해 달라.

안태정 : 2016년 노동계 쟁점은 5대 노동관계법과 일반해고·취업규칙 임의변경 관련 행정지침 두 가지였다. 자본가는 끊임없이 노동자를 억압해 왔다. 박근혜 정권에서 착취와 억압 강도가 더 세졌을 뿐이다. 민주노총은 투쟁을 선언했다. 총파업을 비롯한 집회·시위로 노동계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노동자 투쟁이라는 기본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노동자 투쟁은 생산현장과 생산현장 밖 투쟁으로 나눌 수 있다. 생산현장에서 하는 투쟁이 총파업이다. 지난해 9월 공공부문 총파업과 같은해 11월30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총파업이 있었다.

생산현장 밖 투쟁은 소위 촛불항쟁이다. 투쟁 과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현재까지 촛불항쟁에 1천만명 넘는 이들이 참여했다. 대다수는 노동자다. 조직된 노동자가 아닌 개별적으로 참여한 노동자다. 촛불항쟁도 노동자 투쟁의 하나다. 그 결과 박근혜는 탄핵소추됐다. 노동자가 투쟁해 얻은 성과다.

한계도 있다. 지난해 11월30일 정치총파업과 시민불복종 행동에 들어갔지만, 사실상 총파업이 아니었다. 2~4시간 파업이었다.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 69만명 중 6만명이 참여했다. 참여자가 10%도 안 된다. 이것을 총파업이라고 말할 수 있나. 96~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처럼 조합원 개개인의 의식 고양을 통한 밑으로부터의 정치파업과는 성격이 달랐다. 위에서부터 선언된 총파업에 조합원이 동원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노조 지도부와 조합원 간 괴리가 지금 노동운동의 문제점 중 하나다. 왜 이런 괴리가 생겼는지 고민해야 한다. 모든 사물은 태어났으면 죽어야 한다. 노조도 사물 중 하나다.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죽어야 한다. 새 생명이 나타나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허영구 : 박근혜 정권에서 노동개악은 계속 추진됐다. 총파업을 한 이유는 노동개악을 저지하고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2015년 선제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30일 촛불국면에서 총파업이 진행됐지만 사실상 전체 촛불투쟁을 선도하지는 못했다. 촛불에 묻혀 버렸다. 선제 총파업은 결코 쉽지 않다. 96~97년 총파업은 김영삼 정부의 노동법 개악 날치기 통과로 자연스레 일어났다. 법안이 날치기되지 않았으면 총파업도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파업을 먼저 선언해 놓고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인지 고민해야 한다. 총파업을 내걸었으면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준비된 게 없다.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총파업을 결정한다. 기자회견에서 총파업을 선언하고 주요 사업장에 참여를 독려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인 절차 면에서 괴리가 크다. 조합원들과 토론하고 준비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중집에서 결정하고 대공장에서 2~4시간 파업하는 식이다.

총파업 선언 이후 평가도 없어졌다. 기자회견용 총파업이 아닌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실제 내용은 총파업이 아닌데 총파업이라고 정리해 버린다. 끼워 맞추는 형태다. 조건과 내용이 안 됐다면 안 된 그대로 평가해야 한다. 총파업이라는 용어도 희화화됐다. 물론 최근 2년에 걸친 총파업과 민중총궐기는 나름 평가받아야 한다. 10년간 하강국면에 있던 노동운동을 고조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자체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혁신할 수 있도록 객관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양규헌 : 촛불항쟁 속에서 민주노총 투쟁은 조합원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탄핵 국면에서 민주노총이 주도적 역할을 했는지는 회의적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집회에 민주노총 조끼를 벗고 오라"는 이야기도 있다. 부정적인 여론이 생긴다는 것이다. 촛불집회로 지배계급의 태도가 후퇴하는 양상을 보인 건 맞다. 그러나 그 속에서 민주노총의 역할과 목적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민주노총 총파업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한상균 집행부는 파업이 목적이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총파업은 정치적 성격을 배제할 수 없다. 총파업을 내걸었으면 그에 걸맞은 파괴력을 보여야 한다. 총파업 위력은 조합원들의 결의가 고조되며 배가된다.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철도노조가 투쟁을 잘했다. 철도노조 투쟁을 통해 조합원 의식이 향상됐다고 본다. 물론 노조 조직력은 많이 훼손됐다. 하지만 성과와 동시에 파괴력을 갖지 않는 파업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한다.

총파업을 선언할 뿐 준비나 실행 과정에서 목숨 걸고 민주노총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나 결의는 없다. 총파업이건 전면투쟁이건 그 결정주체는 중앙집행위가 아니다. 현장이어야 한다. 투쟁을 중앙집행위에서 결정하는 건 형식적으로 맞지 않다. 현장 결의를 모아 정치적으로 선언하고 집행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의식상태를 고민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분할 통제 속에 노동계급은 파편화돼 있다. 내셔널센터에 다양한 노동계급이 존재하지만 이들을 하나로 모아 내는 정치투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노동계, 촛불 이후 전략이 없다”

사회 : 촛불정국에서 민주노총 총파업의 역할을 평가했다. 민주노총 운동의 말석에 있는 저도 마음이 무겁다. 여러 한계가 있었다. 민주노총을 넘어 전체 노동운동 측면에서 진단해야 한다. 지난해 철도노조가 74일간 파업했다. 철도노조를 비롯한 공공부문이 촛불정국 초반에 결합했다. 박근혜 탄핵까지 몰고 간 측면이 있다. 노동계 촛불투쟁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양규헌 : 역사적으로 철도노조가 이렇게 오래 파업한 적이 없다. 그 성과는 분명 있다. 앞으로는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바꾸는 투쟁을 해야 한다.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노조를 탄압하고 쟁의권을 제한하는 형태로 작용하고 있다. 불합리한 요소를 놓고 전면투쟁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투쟁은 결코 쉽지 않다.

촛불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그러나 촛불에서 노동계 전략은 미비했다. 개별 노동자들의 생각은 다 다르다. 이를 모으는 전략이 부족했다. 현재 침체돼 있는 노동운동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노동자들이 촛불집회에 많이 참여하지만 자기들의 당면과제를 촛불에 담지 못했다.

안태정 : 철도노조 투쟁은 사실상 총파업은 아니었다. 총파업이라고 하면 일시적이건 장기적이건 현장이 마비돼야 한다. 사회적 충격이나 영향력이 전혀 없는 파업을 그렇게 오래 할 필요는 없다. 파업은 오래 지속하는 것보다 목표를 달성하느냐가 중요하다. 제반 여건에서 한계가 존재했겠지만 총파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고민해야 할 과제다.

촛불항쟁은 비선실세 문제를 제기하며 박근혜를 쫓아내는 것에 목적이 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건 성과다. 촛불항쟁을 국내외에서 찬양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오고 요구를 관철시킨 것은 혁명적이다. 그런데 왜 촛불항쟁을 찬양할까. 이유는 자본주의 근본 질서를 훼손하지 않는 안에서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수천만명이 참여해도 기본질서에 흠집이 나지 않는 운동이다. 행진 가이드라인을 주면 참석자들은 실제 그 가이드라인을 지킨다. 찬양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이런 결과를 자기들의 성과라 자부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노동자 대중이 지금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촛불항쟁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한다. 이후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정도가 될 것이다. 이건 신자유주의 쳇바퀴의 반복일 뿐이다.

또 한 가지, 촛불집회는 놀이 형태가 됐다. 물론 촛불집회가 가지는 가벼운 측면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면도 있다. 자본에 의해 억압과 착취를 받다가 광장에서 해소하는 것이다. 촛불집회를 통해 의식수준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촛불항쟁의 성과 속에서 향후 운동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허영구 : 민주노총이 지난해 11월30일 정치총파업을 했다. 노태우 때부터 대통령 6명을 거쳐 오며 꾸준히 정권퇴진을 요구했다. 촛불 국면에서 민주노총은 크게 드러나지도, 주도하지도 못했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정치총파업까지는 민주노총이 주도했는데,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부터 시민단체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민주노총은 동원됐다. 분명 한계다. 과거 “못살겠다 갈아엎자”가 구호였다면, 지금은 “창피해서 못살겠다”고 한다. 사실상 지금이 더 살기 어려워졌지만 “못살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재벌 구속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구호를 따라가지 못한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것만이 과제는 아니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어떻게 무엇을 대비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제 “못살겠다 갈아 보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그리스 같은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이때 노동운동이 무엇을 어떻게 주도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조합원 토론으로 아래에서 올라오는 투쟁 만들어야”

사회 : 지난 노동운동 역사에서 볼 때 최근 촛불항쟁의 결은 또 다르다. 노동운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급변하는 정세에서 현 시대 투쟁을 진단했다면 이제 발전전략을 고민해 보자.

양규헌 : 경제위기·국내외 정세를 고려할 때 지금이 총파업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다시 기회를 잡기 어렵다. 지난해부터 모인 결의를 한곳으로 집중할 시기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퇴진만 있지 이후 계획은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해 왔지만 그 성격이 뚜렷하지 않다. 민중정권을 말하는 것인지, 민주정권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말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지금 어디에 가 있나. 광장에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노동조합은 민주적이지도 자주적이지도 않다. 조합원과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투쟁의 힘이다. 한국노총의 반대급부로 민주노총을 만든 게 아니다. 노선이 다르다. 한국노총은 복지사회 건설을 위한 노동조합이 목표다. 민주노총은 어떤 노선인지 확인해야 한다. 변혁노선이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민주노총 내에서 변혁노선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노조 안에서 최소한의 민주성과 자주성은 이미 무너졌다. 이것을 새롭게 확인하고 결의하는 게 민주노조의 새로운 전략이다.

허영구 : 동의한다. 하지만 총파업은 준비가 돼야 한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과제 중 하나로 "노동자가 사회변혁의 주체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교육이나 토론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식을 부양해야 한다. 총파업 의제 역시 노동진영 전체의 요구를 받아안아야 한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총파업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총파업으로 가는 건 무리다. 기본으로 돌아가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투쟁 평가를 보면 조합원이 빠져 있다. 현장 조합원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야 한다. 사회적 총파업은 결국 조합원들의 결단에서 비롯된다.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중앙에서 받아안아 재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회성 토론은 의미 없다.

안태정 : 노동자 계급정당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조합원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 전체의 이해를 대변할 것인지 뚜렷하지 않다. 지금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데 그치고 있다. 장기적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세상은 무엇인지 설정해야 한다. 노동자가 경제와 정치를 운영하는 세상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노동자 계급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이 자본가 계급을 대변하고 있다. 노동자가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노동자정당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결국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토론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 조합원이 함께하는 토론에서 당면정세를 나눠야 한다. 기초를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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