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26일 보신각에서 결의대회를 한 뒤 각종 상징물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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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창사 이래 4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물에 빠져 죽고, 떨어져 죽고, 불에 타 죽고, 심지어 지게차에 깔려 죽었는데도 사업주 구속은커녕 면담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정병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부지부장은 자신의 일터가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는 것에 씁쓸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정 부지부장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4·28 산재사망 추모! 위험의 외주화 주범 재벌 규탄! 건강한 일터 안전한 사회 쟁취!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에서 "지난해 11명이 죽었는데 그중 7명이 하청노동자"라며 "안전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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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업무에 내몰린 하청노동자=유해·위험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비 오는 날 전봇대에 올라 인터넷을 설치하다 추락해 숨진 노동자도, 에어컨을 수리하다 추락사한 노동자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19세 김군도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최근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조선·철강·자동차·화학업종 51개 원청사와 소속 사내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 산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청업체 산재사망 비율은 원청업체보다 8배 정도 높았다. 그런데 전체 산재는 하청이 원청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하청에서 일어난 산재가 은폐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산재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노동계는 위험업무 외주화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하청업체 산재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해야 반복적인 산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위험방지 의무를 게을리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인·허가 공무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내용의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28일)에 앞서 열린 이날 집회에서도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20대 청년노동자 메탄올 중독사고, 구의역 참사, 남양주 건설현장 폭발사고, 고려아연 황산누출 사고, 삼성전자 에어컨 설치기사 사망사고 등 하청노동자 사망이 줄을 잇고 있다"며 "위험을 외주화하면서 원청은 산재예방에 드는 비용뿐만 아니라 사고에 대한 책임, 처벌까지 하청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민주노총이 함께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기업과 경영책임자, 관련 공무원까지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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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관리비로 로비하다니…"=결의대회에 앞서 건설노조는 서울 광화문 대우건설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안전보건관리비 횡령을 규탄했다.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 2위에 오른 대우건설은 최근 산재예방에 사용해야 할 안전보건관리비를 뇌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샀다.

대우건설은 2012년부터 3년간 수원 광교 주상복합아파트 공사현장 안전보건관리비에서 1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이 돈으로 근로감독관과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해 현장에서 벌어진 각종 비리를 덮었다.

2014년 5월 광교 현장에서 벌어진 타워크레인 전도 사망사고와 관련한 노동부 감독보고서에서 사고 원인이 기기결함이 아닌 운전자 과실로 둔갑한 것도 근로감독관에게 전달된 뇌물이 영향을 미쳤다. 결국 원청인 대우건설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와 대표는 각각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이주안 건설산업연맹 안전보건위원장은 "건설현장의 안전관리비는 건설노동자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며 "이 돈을 떼어다 로비하고, 술 마시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이었다"고 비난했다.

건설노조는 "건설현장 안전사고 책임이 하도급업체에 전가되고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원청 책임자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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