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순서]
1. 노동 3권과 노사관계(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 고용노동부 및 노동행정 개혁(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3. 비정규직 문제(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4. 노동시간단축과 저임금 해소(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일하는 시간은 세계 최장 수준이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113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천246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고임금 노동자든 저임금 노동자든 장시간 노동의 늪에 빠져 있다. 장시간 노동은 저임금 문제와 밀접하다. 최저임금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우니 연장근로로 소득을 보전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최근 <매일노동뉴스>가 노동문제 전문가 82명을 대상으로 “노동적폐는 어떤 게 있나”를 주제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지나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나란히 6위와 7위에 올랐다. “대선공약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노동공약”으로는 저임금 해소와 노동시간단축이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이행시기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주요 대선후보 모두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약속했다. 대부분 "연간 1천80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본지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열어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적정한 것인지,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와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석했다. 김학태 기자가 사회를 봤다.

“일자리 늘리는 노동시간단축? 바람직하지 않아”

사회 :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청산해야 할 노동적폐를 설문조사한 결과 저임금이 6위, 장시간 노동이 7위였다. 그런데 반드시 포함돼야 할 대선공약 설문조사에서는 각각 2위와 3위로 껑충 뛰었다.

김기덕 : 세계 최장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노동시간단축 요구가 크다. 조금 더 들어가서 보면 일자리 문제와 연관해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간단축을 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시간 노동 규제는 노동자 보호 측면에서 당연히 해야 할 과제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접근은 옳지 않다. 이런 논리라면 일자리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오면 다시 장시간 근로를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김기선 :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저임금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않은 노동시장, 격차사회라고 본다. 노동시장에서 세 가지 형태의 격차가 나타난다. 동일업종·동일고용 형태에서 기업별 지불능력에 따른 격차, 동일기업 내 고용형태별 격차, 대·중소기업과 원·하청 근로자 간 격차가 있다. 세 가지 형태의 격차 모두 핵심은 임금체계다. 동일기업 내 정규직과 중규직(무기계약직), 기간제는 각기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받는다. 대·중소기업과 원·하청 간 임금체계를 보면 대기업과 원청은 특정한 임금체계를 지향하지만 중소기업과 하청업체에는 임금체계 자체가 없다. 임금을 떠받치는 것은 최저임금뿐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매년 7~8%의 임금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그게 임금체계는 아니다. 근속연수가 올라간다고 해서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임금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최저임금을 올리더라도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연 1천800시간을 평균 아닌 상한으로”
“단시간 노동 증가로 달성한 1천800시간 의미 없다”


사회 : 대선후보들의 노동시간단축 공약 목표는 적정한가.

김기덕 : 박근혜 정권도 노동시간을 연간 1천800시간으로 줄이는 게 목표였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도 연 1천800시간으로 합의했다. 대선후보 공약을 보면 1천800시간이 연평균을 말하는 것인지, 최장시간인지 불분명하다. 평균이라면 박근혜 정권에서 해 왔던 정도의 수준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최장시간을 1천800시간으로 한다면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가 문제다. 법정 노동시간 준수를 명확히 해야 한다. 연장근로시간을 설정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공약에 담아야 한다.

김기선 : 대부분 공약에서 1천800시간은 근로자 1인당 평균 연간근로시간일 것이다. 문제는 시간제 근로자다. 지금처럼 시간제가 늘어나는 추세라면 공약을 금방 달성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린다고 하면서 시간제 근로자 비율이 급등했다. 전체 노동시장에서 10%를 돌파했다. 시간제 근로자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연간 1천800시간 목표를 달성한다면 곤란하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풀타임 근로자들도 워킹푸어가 많다. 파트타임으로는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 속도도 감안해야 하고, 시간제 일자리의 저임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와 관련한 대책도 나와야 한다. 그래야 연 1천800시간 달성이 의미가 있다.

김기덕 : 대부분 후보들의 법정 노동시간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근로기준법 50조(근로시간)에 명시된 법정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이내다. 이것을 명확히 최장근로시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근기법 53조(연장근로의 제한)에서는 당사자 간 합의로 주당 12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연장근로까지 포함한 주 52시간을 보편적인 법정 노동시간으로 본다. 잘못된 관행이다. 고용노동부가 초래한 부분도 있다. 53조는 예외조항이다. 긴박하거나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근기법 50조는 53조에 의해 폐기되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현장에서 일선 노동행정기관이 앞장서 50조를 폐기해 왔다. 노동시간에 대한 논의 자체도 잘못됐다. 법정 노동시간 개념이 부재한 상태에서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엉뚱한 논의만 했다. 이런 공약은 그 자체로 헛된 것이다. 법정 노동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전제하고 접근하면 된다. 하루 8시간만 일해야 하고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앞으로는 단속·처벌대상이라고 분명히 밝히면 된다.

“각종 적용제외 조항 폐지하고 초과근로시간 제한해야”

김기선 : 일을 해도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워킹푸어가 있고, 저임금 때문에 장시간 근로로 때울 수밖에 없는 타임푸어(시간빈곤층) 문제가 있다. 또 하나는 고소득자인데도 타임푸어인 경우가 있다. 임금을 많이 받는 사무직 근로자들이 있는데 사업장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다. 연봉을 많이 받으면서도 포괄임금제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 가족과 나의 삶이 없고, 제대로 된 여가를 누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소득과 상관없이 한국의 장시간 근로가 타임푸어를 양산하고 있다.

우리 노동시간 법제에서 빠져나가는 사업장들이 있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이 있고, 근로시간 적용제외가 있고, 근기법 적용이 제외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있다. 이러한 적용제외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근로자 규모가 상당하다.

김기덕 : 노동부 행정해석 때문에 주당 최장근로시간이 68시간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특례업종을 줄여 노동시간을 축소하는 것은 제대로 된 대책이 아니다. 주 40시간, 연장근로를 포함한 52시간으로 축소하는 것이 우선이다. 노동부가 행정해석을 폐기하든지, 아니면 폐기할 필요도 없이 그냥 법대로 집행하면 된다.

김기선 : 그런 측면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공약이 눈에 띈다. 연간 초과근로시간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실제 주당 52시간으로 연장근로 12시간을 허용하더라도 초과근로가 상시적이지 않고 실제로 업무가 발생했을 때만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완책으로 최장 초과근로시간을 정하는 것도 유용한 해법이 된다.

노동시간단축에 소득보전 못하는 노동자들
“업종별 임금체계 만들고, 정부는 측면지원”


사회 : 노동시간을 줄이면 임금이 줄어든다. 해법이 필요할 것 같다. 대선후보들의 공약에는 소득보전 내용이 거의 없다.

김기덕 :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임금이 삭감된다는 것은 노동시간을 단축하지 말자는 얘기와 같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기존 임금수준이 저하돼서는 안 된다.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할 때 임금수준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했다.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기선 : 당연히 임금수준 저하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할 때 임금수준이 저하돼서는 안 된다고 법에 명시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여부를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런 대책은 필요하다. 공정한 노동시장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이다. 저임금을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다. 최저임금은 최저기준이다.

상층 부분에서는 업종별 임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직무급일 필요는 없다. 1년에 한 호봉씩 올라가는 근속급이 아니어도 좋다. 40~50대가 돼도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믿음이 노동시장 전반에 깔려야 한다. 노사가 업종·업태에 맞는 임금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학자나 전문가가 설계해 봐야 노사가 공감하지 않는 임금체계는 효용성이나 실효성이 떨어진다. 업종별협의회를 구성하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 다음 정부는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 그 결과물로 산업별 협약을 도출하면 된다. 다만 어느 특정한 임금체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임금체계 공시제 도입도 시급하다. 임금체계 정보는 도입을 준비하는 기업에 자극제로 작용한다. 단시간에 바뀌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저임금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김기덕 :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체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호봉 테이블과 연공급제 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90년대를 전후해 최저임금으로만 사는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워낙 큰 규모를 차지하다 보니 대다수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와 최저임금 문제가 결부되는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문제가 절박한데, 한편으로 최저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노동자들의 지위를 악화시킨다. 그래서 임금체계와 최저임금 문제가 함께 가야 한다. 최저임금은 최초로 시장에 접근하는 노동자에게 기준이 돼야 한다. 근속이 쌓이고 노동이 숙련되면 노동의 대가는 체계적으로 가산해서 지급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회 : 다섯 명의 주요 대선후보 모두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겠다고 공약했다. 세 후보는 2020년까지, 두 후보는 2022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김기덕 : 어떤 최저임금 1만원이냐를 명확히 해야 한다.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항목이 문제가 된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산정 대상에서 상여금을 제외하고 있다. 향후 최저임금법을 개정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면 인상은 하나 마나 한 것이 된다. 공약을 달성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근로자가 받는 부분은 별다른 인상 효과가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김기선 : 임금체계가 전반적으로 부재한 상황에서 단기처방으로 최저임금 인상 폭을 높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다만 이렇게 하고 나면 최저임금 영향률이 점점 커지고 최저임금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는 근로자 규모도 커진다. 일단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면 위반율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전체 근로자에게 임금인상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확률도 높다.

대선후보들이 사업장 감독과 시정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임금의 최저수준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한계업종 자영업자 노동시장 편입해야”

사회 : 노동시간을 줄이면 저임금 노동자 임금이 감소하고, 최저임금을 올리면 영세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있다. 어떤 대책이 있나.

김기덕 : 두 문제를 연동시켜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양자가 완비돼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노동시간단축도, 저임금 해소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중소기업이 생길 거다.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과 연동시켜 실업대책이 있어야 한다. 현재 고용보험제도 실업급여로는 안 된다. 실업을 당한 노동자가 살 수 있을 정도로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현재의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을 얼마 내고 사업장 근속 몇 개월을 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그런 정도로는 안 된다. 실업상태에 있는 모든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의 70~80%를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고용보장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김기선 : 어려운 문제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저임금 1만원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사업을 접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나. 10시간 넘게 영업하고도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업태는 구조조정을 비롯한 적절한 형태로 시장에서 정리돼야 한다. 그분들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기회를 찾아 주는 게 중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관점에서 고용시장의 전반적 틀을 정리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글=윤자은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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