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욱 부산지하철노조 미디어연대부장

지난해 5월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았다. 구의역 김군으로 알려진 청년의 가방에는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이 들어 있었다. 끼니까지 거르고 일하면서도 처우는 형편없는 하청노동자 처지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구의역 사고 1주기를 맞아 공공운수노조가 22일부터 27일까지를 생명안전주간으로 정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한 궤도·의료·집배·화물 노동자의 글을 보내왔다.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일째인 지난 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약속했다. 구체적인 정책방향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공공기관 내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확고한 원칙임은 알렸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지금도 새 정부 원칙에 반하는 외주화를 멈추지 않고 있는 공기업이 있다. 부산지하철을 운영하는 부산시 지방공기업인 부산교통공사다.

부산교통공사는 올해 1월19일 재창조프로젝트라는 미명 아래 외주용역 확대와 1천명 비정규직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기간제 80명 채용과 기존 호선 구조조정으로 183명을 채워 4월20일 다대선을 개통시켰다. 비슷한 시기 코레일도 고속철도(KTX) 핵심 정비 분야 외주화를 추진했고 최근 입찰까지 마감했다. 그러나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하기 직전인 5월18일 코레일은 문재인 정부 방침을 따르겠다며 외주화 중단을 선언했다.

철도노조와 부산지하철노조는 지난해 박근혜의 성과연봉제 불법도입과 구조조정에 맞서 치열한 파업 투쟁을 펼쳤다. 철도노조는 74일간 파업을 했고 부산지하철노조는 세 차례에 걸쳐 21일간 파업을 했다. 파업에 따른 사측의 노조탄압도 유사했다. 철도노조는 255명의 노조간부가 중징계를 당하며 이 중 30명의 해고자가 발생했고 부산지하철노조는 노조간부 33명 중징계, 7명 해고 등 40명의 노조간부가 중징계됐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두 기관의 행보는 다소 엇갈린다. 코레일은 KTX 정비업무 외주화를 전격 중단하며 새 정부 정책변화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부산교통공사는 최근 교섭에서도 1천명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재창조프로젝트를 철회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철도공사 홍순만 사장과 부산교통공사 박종흠 사장은 둘 다 국토교통부 고위 관료 출신이다. 낙하산으로 두 공사에 사장으로 내려와 박근혜 정부의 충실한 대변자로 구조조정과 노조탄압을 일삼았지만, 현재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재창조프로젝트를 이어 가겠다고 밝혔지만, 정부 원칙이 확고해 부산교통공사 외주화 확대 및 비정규직 양산 정책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10년을 목표로 한다는 재창조프로젝트의 운명이 기껏해야 몇 개월일 것이라는 게 지역 여론과 부산지하철 구성원의 일치된 생각이다.

박종흠 사장은 재창조프로젝트를 스스로 철회할 용기가 없는 듯하다. 박 사장은 구조조정과 노조탄압으로 부산지하철을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갔다. 재창조프로젝트를 철회하는 순간 박종흠 사장은 명분 없는 구조조정과 악랄한 노조탄압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혹시나 어영부영 시간만 때우다 남은 임기를 끝내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부산지하철노조 파업은 지난해 철도노조만큼 뜨거운 이슈였다. 부산교통공사의 외주용역·비정규직 확대 계획인 재창조프로젝트는 지역 시민단체들이 대책위원회를 꾸릴 만큼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부산지하철노조의 노력으로 이런 사정을 새 정부도 충분히 알고 있다. 4월11일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지역 노조위원장 간담회 자리에서 부산지하철노조 이의용 위원장에게 부산지하철노조 현안을 들은 후 이례적으로 참모들에게 풀스토리를 챙겨 보라고 지시했다.

공공기관이 일을 해 나가려면 권위가 있어야 한다. 부산교통공사는 재창조프로젝트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시민과 직원에게 권위를 완전히 잃었다. 비정규직 양산 정책을 대놓고 발표하는 부산교통공사에 시민들은 의아해하고 분노했다. 빈약한 논리와 악다구니만 남은 사측 지시에 직원들은 “이런 경영진은 처음 봤다”며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부산교통공사는 문재인 정부 정책에 맞춰 재창조프로젝트를 철회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으로서 권위도 되찾아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부산교통공사 박종흠 사장 퇴진이다. 재창조프로젝트를 밀어붙인 박종흠 사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퇴진하면 부산지하철 구조조정도 끝나고 공공기관 권위도 되찾을 수 있다. 그냥 이대로 버티면 부산교통공사는 시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직원들도 경영진에 대한 신뢰와 일터에 대한 자부심을 잃은 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부산지하철은 안전이 부실해지고, 시민들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 사장 사퇴는 극단적 방법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해결책이다.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버티는 자유한국당 친박의 행태가 부산교통공사에서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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