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투입되고 자본(투자)과 융화돼 나타난 생산물을 상품이라고 한다. 상품의 목적은 소비다. 소비되기 위해 상품은 일단 시장으로 나간다. 거기서 먼저 판매와 구매가 이뤄져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상품의 사용가치 실현 전에 일단 그것의 교환가치가 실현돼야 한다.

소비자 호응이 커서 상품 공급보다 시장 수요가 넘쳐 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대박’이다. 현실의 시장에서 대박이 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중박’만 돼도 감지덕지요, ‘똔똔’ 즉 원가를 겨우 건지거나 살짝 이윤을 남기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수준에서 판매가 이뤄질 듯 말 듯 마감하는 경우, 즉 ‘쪽박’도 다반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의 투자와 노동이 투입된 상품이 충분히 구매되지 못해 그 가치가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 식으로 투자자와 생산자에게 손실을 유발하는 ‘시장실패’ 상황에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상식적으로, 적절히 수요를 예측하지 못하고 마케팅을 전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투자자와 생산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력도 상품으로 존재한다. 노동력 상품은 노동시장에서 거래되며, 거기에는 다양한 노동력 상품이 존재한다. 적합한 교육을 받고 적합한 자격과 경력이 축적돼 있는 양질의 노동력도 있고, 부실한 교육을 받고 자격과 경력이 미흡한 덜 매력적인 노동력도 있다. 양질의 노동력이 무조건 구매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노동력 구매자의 필요와 수요에 맞아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노동력으로 선호되길 기대하며, 노동자는 자신에게 투자하고 스스로를 도야하고 숙련을 쌓는다. 시장에 부합하는 적절한 노동력을 양성하려면 교육훈련이라는 일정한 통과의례,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국가가 공적 서비스를 통해 무상으로 혹은 저렴하게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하고, 민간이 참여하기도 한다.

민간이 제공하는 교육훈련 역시 상품 형태로 또 다른 시장 안에 존재한다. 그 시장에는 교육훈련·숙련형성 내지 자격획득 기회를 집약적으로 돕는 상품들이 공급된다. 노동력 상품의 양질화를 돕는 교육훈련 시장에는 상품 공급자(예컨대 학원주)가 있고, 그 상품을 구입하는 구매자(수강생)가 있으며, 구매자의 자기도야를 돕는 또 다른 노동자(학원강사)가 있다.

노동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노동자는 교육훈련 시장에서는 상품 구매자로 존재한다. 그 시장의 상품을 구매하면서 그것을 매개로 ‘학습’이라는 또 다른 노동을 거쳐 자신을 양질의 노동력으로 가꿔 가는 활동을 한다. 흔히들 이를 ‘스펙’을 쌓는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 상품에 대한 투자자이자 생산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한 노동시장에서 '채용'이라는 노동력 구매행위는 자기투자를 통해 자격을 갖춘 노동력을 어떤 사용자가 일정 기간 동안 대가를 지불하며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모든 상품거래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시장 역시 시장실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전에 투자를 통해 만들어 낸 노동력 상품은 노동시장에서 대박·중박·똔똔·쪽박 상황을 다 경험할 수 있다. 쪽박은 구매자(사용자)를 만나지 못하고 시장을 배회하는 경우다. 수년간 연습생 기간을 거쳐 데뷔를 했지만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뜨지 못한’ 아이돌그룹을 생각해 보면 쉽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비단 연예산업 시장만의 일이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청년실업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많은 스펙을 쌓고 부모에게 힘을 얻어 큰 규모의 자본을 교육훈련 시장에 투자하고, 도약기간 동안 잠도 줄이고 알바까지 해 가며 버텨 졸업하고 자격을 따고 나서도, 정작 노동시장에 나아가서는 변변한 일자리를 못 얻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대학도 졸업하고 영어도 잘하며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갖췄지만 그들의 구매자, 즉 일자리 공급자들은 그 화려한 것들에 별 관심이 없다.

이 경우 그저 청년들 스스로 투자를 잘못했으니 알아서 책임지라고 하면 그만인가. 구매되지 못한 노동력에 한 사회는 어떠한 예의를 갖추고 대해야 하는가. 다른 사회 주체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가. 현실에서 국가도 소비자도 판매되지 않은 상품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론 국가가 개입해서 소비자가 낸 세금을 가지고 시장실패를 메우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 이전 정부에서 만연해진 노동시장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처방이 나왔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구매되지 않은 노동력들의 구매자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바로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다. 공공서비스부문의 고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상황에서 일거양득이다. 그것을 매개로 다른 시장들도 살아나게 하고, 새로운 경제활력의 원동력이 되도록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정책이 효과를 발하길 기대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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