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로드킬’을 많이 당하는 동물 중 하나가 스컹크라고 한다. 스컹크는 방귀로 천적을 물리치는 습성이 있는데, 차가 달려오면 방귀만 뀌다가 깔려 죽기 때문이다. 로드킬의 책임이 스컹크에 있는 것은 아니나 변화에 둔감한 사람을 스컹크에 비유한다.

대한민국은 확실히 역동적이다. 탄핵촛불에 이어 정권이 바뀌고 현란한 쟁점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켜켜이 쌓인 잘못된 관행을 적폐라고 부른다.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한 것을 적폐라고 한다. 시대 변화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스컹크, 잘못된 관행은 방귀에 비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대 재벌 삼성이 비자금을 통해 비선실세를 취하려 한 것이 스컹크를 닮은 구시대적 정경유착으로 비판받고 구속재판까지 이르렀다.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재벌들의 갑질, 납품단가 후려치기, 비정규직 제로공장을 통한 비용절감 행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현대·기아차그룹 대기업노조들이 속한 금속노조가 2천500억원을 낼 테니 그룹도 같이 돈을 내서 일자리기금을 만들고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고치자고 제안했다. 실행에 옮기려면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도전이다.

재벌 노사관계는 늘 도마에 올랐다. 외환위기와 함께 실업의 공포는 대기업 정규직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기업노조가 내 일자리를 위해 어려울 때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 사용에 동의한 것도 사실이다. 재벌 사용자는 정규직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신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재벌 노사 간에 ‘일자리 담합’의 오랜 관행이 자리 잡았다. 최악의 일자리 담합은 대기업 노사가 함께 연루된 입사비리였다.

재벌 노사관계는 일자리 담합을 넘어 더 나쁜 길로 갈 수도 있었다. 바로 ‘세습 담합’이다. 재벌은 경영권을 세습하고 재벌대기업 노동자는 일자리를 세습하는 길이다. 그런데 세습 담합에 제동이 걸렸다. 사회적 비판이 적지 않았다. 재벌 경영세습은 인정하는 정부가 노동자 일자리 세습을 막기 위해 정규직 자녀 채용을 유리하게 만드는 단체협약을 바꾸라는 지침을 내리기까지 했다. 노조를 공격했지만 실은 재벌 노사의 세습 담합을 막은 셈이다.

역동적 대한민국의 변화 바람과 함께 재벌 노사도 새 관계를 찾길 바란다. 일자리 담합이나 세습 담합 따위가 아닌 ‘공동기여’가 답이 될 수 있다. 재벌 노사가 일자리기금을 만들어 함께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공동기여의 한 방법이다. 재벌 노사가 자신들만의 성과분배를 넘어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을 바꾸고 부품사들과 비정규직들과 성과를 분배하는 것이 공동기여다. 대기업노조가 이제 막 생겨나는 부품사 하청노동자의 노조를 지원하고, 재벌 사용자는 하청공장에 생겨나는 노조를 새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공동기여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스컹크의 습성이 잘 바뀌지 않듯, 재벌 노사가 공동기여로 나아가는 일에도 어려움이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생산과 판매망을 세계화하고 외주 하청공장을 통한 인건비 절감과 기민한 공급체계를 완성하면서 좋은 성과를 보여 왔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시장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변화보다 방어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운데 정부가 개혁 피로감만 준다”며 새 정부의 개혁에 재계 힘을 모아 반격을 가할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정부가 반격에 주춤거리고 다시 관료와 재벌의 유착관계를 만들면 다시 ‘헬조선’이 되고, 새로운 대한민국은 없다.

다른 방식으로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재벌이 개혁대상이 아니라 개혁주체 위치에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벌사가 대한민국에서의 위치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쟁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우리는 스컹크가 아니다. 정권교체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해 재벌 노사가 카멜레온을 닮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다. 스컹크의 방귀 냄새가 아닌 사람 살맛을 느끼고 싶다. 재벌 노사 모두가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여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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