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관계자가 최저임금 협상 과정을 시간대별로 칠판에 정리하면서 상황을 살피고 있다. 김봉석 기자

지난 15일 열린 내년 최저임금 협상은 회의 시작 30분 만에 첫 정회를 할 정도로 초반부터 노사 양측의 기싸움이 팽팽했다. 이날 하루를 되짚어 보면 회의시간보다 정회한 시간이 길었을 정도로 노사는 상대 전략에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오후 8시에 첫 수정안이 나올 정도로 협상은 매우 느리게 진행됐다. 그런데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불과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까지 협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뒤집어졌다. 노동자위원들의 단판 승부 요청과 심의촉진구간 없이 노사 위원들에게 상·하한선만 제시한 뒤 최종안을 도출하게 한 공익위원들의 전략이 유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회의시간보다 정회시간 길어
전략 세우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

▲ 김봉석 기자

최저임금위원회(위원장 어수봉) 노·사·공익위원들은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11차 전원회의이자 최저임금 고시를 앞둔 마지막 협상에 나섰다.

최저임금법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8월5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해 고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 장관은 확정 고시 전 20일간의 이의제기·재심의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다음달 5일부터 20일을 역산한 날이 7월15일이었다. 노사 위원들은 이날을 결전의 날로 삼아 협상에 주력했다.

회의는 애초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이었는데, 일부 위원이 늦게 도착하면서 3시30분께 개회했다. 30분 만인 오후 4시께 첫 정회가 선포됐다.

어수봉 위원장이 회의 초반부터 “수정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사는 수정안 마련에 들어갔다. 회의는 오후 7시가 돼서야 속개했다. 그러나 40분 만인 오후 7시40분께 다시 정회했다. 노동자위원들이 반복적으로 수정안을 내지 말고 몰아서 한 번에 수정안을 내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노사 위원들은 20분간의 정회 끝에 오후 8시 재개한 회의에서 각각 8천330원과 6천740원을 첫 수정안으로 내놓았다.

위원들은 첫 수정안 제시 직후인 오후 8시10분께 다시 정회에 들어갔다. 공익위원들은 심의촉진구간을 내는 대신 비공개로 노동자위원에게 상한선, 사용자위원에게 하한선만 알려 준 다음 재수정안을 제출하라고 노사 양측을 압박했다. 공익위원들은 비공식적으로 노사를 오가며 협상을 했다.

오후 10시40분 속개된 회의에서 노사 양측은 7천530원과 7천300원을 재수정안으로 공개했다. 어수봉 위원장은 곧바로 표결을 선언했다. 노동자위원이 제시한 7천530원이 27명 중 15명의 지지를 받아 내년 최저임금으로 결정됐다. 노동자위원 9명과 공익위원 9명 중 6명이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밤 11시께였다.

사용자위원들 “위원직 사퇴” 반발
노동자위원들 “아쉽지만 그나마 다행”


어 위원장이 결과를 발표하자 사용자위원들은 낯을 찌푸린 채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사용자위원들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인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결정”이라며 “상상도 못했다. 참담하다. 용납할 수 없다” 같은 말을 쏟아 냈다. 인상률 16.4%는 사용자위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대다수 사용자위원들이 기자들의 입장표명 요구에 “할 말 없다”며 급하게 회의장을 빠져나간 반면 김문식 한국주유소협회 회장과 김대준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판매업협동조합 이사장이 남아 “최저임금위 위원직을 사퇴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낭독했다. 두 위원은 “최저임금위와 공익위원들이 독립성·중립성을 잃고 정부 아바타가 됐다”고 비난했다.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1만원을 열망했던 국민과 노동자들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김종인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직무대행은 “공익위원들을 최대한 설득해 노동자위원들이 제시한 안을 선택하게 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문현군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역대 최고 인상금액이라는 의미에 만족하지 않고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 실현을 위한 인상률(15.6%)을 상회한 결과를 얻어 냈다”며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은 인간답게 살 권리"
민주노총 조합원들, 협상장 밖에서 문화제

▲ 김봉석 기자

최저임금위에서 노·사·공익위원들이 협상하던 시각, 협상장이 마련된 고용노동부 건물 앞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 200여명이 모여 최저임금 1만원 쟁취 문화제를 했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위해 민주노총은 사회적 총파업을 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위원들이 교섭하고 있다”며 “교섭위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자리를 함께하자”고 호소했다.

유희종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장은 “중소기업이 어려운 것은 최저임금이 올라서가 아니라 재벌 대기업들이 단가 후려치기 같은 방법으로 등골을 빼먹고 있기 때문”이라며 “통닭·피자 가게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최대 고객이 노동자인 만큼 중소기업인·영세 자영인과 노동자들이 재벌에 맞선 상생연대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오후 7시부터 밤 11시까지 “최저임금 1만원·인간답게 살 권리·생존권을 보장해” 구호를 외치면서 문화제와 집회를 했다. 협상이 끝나고 노동자위원들이 결과를 보고한 밤 11시30분께 집으로 향했다.


[인터뷰]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필요”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 일문일답

▲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사진 가운데)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봉석 기자>

어수봉 위원장은 지난 15일 오후 협상이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27명 전원이 표결에 참석하고 대승적 결단을 내려 준 것에 감사한다”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중소기업 경영자와 소상공인에 대해 정부가 인건비 지원을 포함해 충분한 지원을 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어 위원장은 “최저임금 제도개선을 부대사항으로 의결했다”며 “사용자위원이 제시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결정과 산입범위 조정, 노동자위원이 요구한 표준생계비 객관적 산정에 관한 논의를 제도개선특별위원회에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최저임금 협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노사가 수정안을 냈는데도 격차가 1천590원에 이를 정도로 컸다. 최종안 제출 때 최대한 줄여 달라고 했다. 최종안에서는 230원까지 좁혀졌다.”

- 올해 협상에서는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최저임금은 노사자율로 결정해야 한다. 공익위원 역할은 돕는 것이다. 그래서 공익위원이 주도하는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익위원들이 생각하는 수준에서 노동자위원에게는 상한선을, 사용자위원에게는 하한선을 제시했다. 그 범위에서 최종안을 제출하면 자율투표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정부 입장이 영향을 미쳤나.

“표결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사가 제시안 최종안에는 담겨 있다고 본다. 노동자위원이 16.4%, 사용자위원이 12.8% 인상안을 냈다.”

-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는 어떻게 진행하나.

“부대결의로 제도개선을 논의하기로 했다. 제도개선특별위원회에서 논의를 진행하겠다. 예산은 고용노동부가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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