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영 기자

“(아들이) 한국마사회에서 일하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경근이는 ‘마필관리사가 천직’이라고 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천직으로 여기던 그곳에, 사랑했던 말 옆으로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마사회가 이렇게 무책임하고 비겁한 줄 알았더라면 (아들이) 마사회에 취직했다고 자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 꼭 경근이를 지켜 주십시오.”

부산경남경마공원 마필관리사 고 박경근씨의 어머니는 눈물을 삼키며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갔다. 가슴에 근조리본을 단 동료들은 어머니의 발언을 들으며 빗물 속에 눈물을 흘려보냈다.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15일 오후 공공연맹(위원장 이인상)과 공공운수노조(위원장 조상수)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공동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와 마사회에 박경근씨 사망 관련 공식사과와 마필관리사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마사회 관리·감독 못하는 농식품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조합원 1천여명은 “박경근 열사의 죽음은 마사회의 다단계 착취구조에 의한 고용형태와 임금구조 왜곡, 노조탄압이 불러온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조상수 위원장은 “지난 50일 동안 마사회를 상대로 투쟁과 교섭을 하고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를 만나며 열사가 겪은 절망적인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며 “적폐 경영진이 똬리 틀고 있는 마사회는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다단계 착취구조를 합리적인 고용임금체계라고 우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 위원장은 “농식품부 역시 마사회 지도·감독을 방기하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상 위원장은 “박경근 열사가 원한 것은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 달라’는 아주 소박한 바람이었다”며 “오늘 이 비는 열사의 슬픈 죽음과 마필관리사와 전국의 비정규직 동지들의 아픔을 대변한다”고 소리 높였다. 이 위원장은 “공공부문 양대 노조가 오늘 첫 공동투쟁을 시작으로 열사의 명예를 회복하고, 마필관리사 직접고용을 쟁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사회가 죽였습니다”

마사회에 직접고용된 마필관리사는 1993년 개인마주제 시행으로 다단계 하청구조에 내몰렸다. 마주가 조교사와 마필위탁계약을 맺은 후 조교사가 다시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구조다. 마필관리사는 마사회가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며 처우와 업무에서 사실상 통제를 받지만 마사회와 직접적인 고용계약을 맺지는 않는다. 마필관리사의 고용주는 조교사다. 조교사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해고될 수 있는 마필관리사는 성과급 배분이나 처우에 문제가 있어도 항의조차 할 수 없다.

박경근씨의 동료들과 유가족은 결의대회를 마친 뒤 상여와 만장을 들고 행진했다.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정부가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박씨와 함께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한 마필관리사 안현규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통해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이고 당사자와 합의도 없는 초과근무가 당연시되고 있다”며 “비용 줄이기에 급급한 마사회는 발주·채혈업무를 마필관리사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증언했다.

안씨는 “노동조건을 개선해 보고자 노조를 만들었지만 조교사들의 횡포와 마사회 방임으로 노조가 무력화됐다”며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경근이는 희망을 찾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말을 사랑하고 자기 일에 자부심이 넘치던 경근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대통령님이 챙겨 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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