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소설 쓸 때 사명감을 안 가지는데요. 이번에는 사명감 가지고 쓰려고 합니다. 노동계에 던지는 메시지거든요.”

단편소설집 <폐허를 보다>(실천문학사)로 지난해 만해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2월 장편소설 <건너가다>(창비)를 발표한 이인휘(59·사진) 작가가 다음 소설 준비에 한창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다가 1995년 분신해 숨진 현대자동차 노동자 고 양봉수씨다. 고인의 기일 즈음인 내년 5월 발간을 목표로 자료수집과 취재를 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인휘 작가는 고 양봉수씨를 소재로 한 다음 작품에 어느 때보다 큰 의미를 부여했다. 서영호·양봉수 열사정신계승사업회에서 평전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는 잠시 고민했다고 한다.

현대차 양봉수 열사 이야기를 소설로

지금 시점에 왜 양봉수 열사일까, 그걸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 현대차 노동운동의 어두운 모습까지, 열사의 삶을 통해 현재의 노동운동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평전으로는 안 되고, 소설로 써야 한다고 열사정신계승사업회에 얘기했죠.”

사실 이번 작품은 이인휘 작가가 두 번째로 쓰는 현대차 노동자 이야기다. 소설집 <폐허를 보다>의 표제작인 ‘폐허를 보다’가 그렇다. 98년 현대차 노사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합의한 것에 실망해 현장을 떠난 노조 집행부 출신 노동자의 삶과 그 가족의 얘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인휘 작가는 87년 현대차에 처음으로 민주노조가 생긴 뒤 발생한 굵직한 사건들, 위원장 이름 같은 현대차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다. 그는 현대차노조와 현대차 노동운동을 날카롭게 평가했다.

“양봉수 열사가 숨진 뒤 현대차노조의 민주성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면서 그나마 있던 현장의 정신도 죽어 버렸어요.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책에 담으려고요.”

현실에 대한 분노, 창작의 힘이자 작가의 고통

“아마 분노의 힘으로 글을 썼겠지. 하지만 분노가 분노로만 치달으면 증오가 생겨. (…) 분노로 쓴 소설 속 이야기들이 자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거야.”

이인휘 작가의 소설 <건너간다>의 등장인물인 가수 하태산이 소설가 박해운에게 던진 말이다. 회고록 성격이 짙은 이 소설 속 박해운은 곧 이인휘 작가다.

실제 이 작가는 ‘분노의 힘’으로 글을 써 왔다. 고단한 자신의 삶이나 자본의 횡포에 대한 분노, 박영진 열사(86년 분신자결)를 포함해 먼저 간 친구들에 대한 부채의식에 떠밀려 글을 썼다. 하지만 “기쁨을 느끼기 보다는 점점 슬프고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고 이 작가는 소설 속에서 토로했다.

소설 속 하태산은 “분노를 내려놓는 일은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어.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내려놓으라”고 충고했다.

이인휘 작가는 이제 분노를 내려놓은 것일까. 그는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까지도 힘들다”고 말했다. 주변의 풍경은 여전히 그를 분노하게 만든다.

“화가 안 날 수 없어요. 진보정당은 갈가리 찢겨 있지요, 젊은이들은 박탈감에 고통 겪고 인생설계조차 힘들잖아요. 구로동맹파업과 87년 노동자 대투쟁부터 강물처럼 흘러온 노동자들의 투쟁을 세상은 잘 모르고 있어요.”

자본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이야기

이인휘 작가는 노동문학을 하는 노동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작가는 이 말을 싫어한다. 오히려 노동과 민중을 얘기한 문학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용어가 아니에요. 80년대 노동운동이 일어날 때 글이 나오기 시작하니 평론가들이 붙여 놓은 이름이 노동문학이었어요. 문학은 문학이지요. 굳이 구분한다면 리얼리즘 문학, 현실주의 문학, 민중 문학으로 부르면 돼요. 그리고 소설가 이인휘라고 불러 주세요.”

실제 이 작가가 써 온 소설도 노동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노동작가로 불리는 것은 그의 관점 때문일 터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을 다녔고, 노동운동을 했다.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평택미군기지 저지, 국가보안법 철폐, 비정규직 철폐 운동을 실천한 그의 삶이 소설에 녹아들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하면 ‘반자본주의’다. 앞으로 그가 추구하는 소설도 자본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다.

“인간의 몸에 대해 쓰려고 해요. 투병생활을 오래 한 아내를 간병하면서 인간의 몸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인간의 몸이 어떻기에 병이 생길까. 의사들이 하는 얘기를 넘어서 자본주의가 인간의 몸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쓰고 싶어요.”

<정기훈 기자>


“노동현장과 함께 희망 찾고 싶어, 관심 가졌으면”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벌이 좋았던 작가들은 안정된 직장을 찾아 떠났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던 이인휘 작가도 한때 생활고로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 적이 있다. 7년간 투병한 부인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장을 다니면서 10년 넘게 소설 쓰기를 중단한 적도 있다. 다시 쓰기 시작한 단편소설집으로 권위 있는 만해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여전히 소설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 노동을 얘기하는 소설가에게는 초청강연 자리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이인휘 작가가 정작 섭섭한 것은 노동진영의 무관심이다.

“노동자나 노조들이 왜 그렇게 책을 안 봐 주시는지. 노동자들이 아껴 주지 않으면 누구를 믿고 글을 쓰겠어요. 진보언론이나 노동언론도 너무 관심이 없어요.”

노동을 말하는 시인은 가끔 눈에 띄지만, 노동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인휘 작가가 독보적이다. 그러니 노동진영으로서는 소중한 자산이다. 물론 민중문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 작가와 작품들을 아껴 주는 이들이 없으면 민중의 삶을 얘기하는 작가와 작품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이인휘 작가는 노동현장의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고, 노동의 희망을 찾기 위해서라도 민중문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희망을 버린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요. 현장에서 소설책 한 권이라도 읽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함께 읽고 시대를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이인휘 작가는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전두환 신군부 집권에 절망해 입대했다. 제대 뒤 지방농장에서 일하다가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86년 자결한 박영진 열사를 만났다. 박영진 열사 추모사업회를 꾸려 활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88년 <녹두꽃>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10월 분신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 이용석씨를 소설화한 <날개 달린 물고기>(2005년)를 쓴 뒤 아내의 병간호와 치료를 위해 작품활동을 중단했다. 철강공장과 합판공장·호떡공장을 다니며 생계를 해결했다. 지난해 1월 소설집 <폐허를 보다>로 활동을 재개했고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진보적 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과 사단법인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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