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우리 현준이가 마지막이 되도록 제발….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해 주이소.”

지난 1일 숨진 채 발견된 마필관리사 고 이현준(36)씨의 어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옆에 있던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같이 일하던) 동생들이 안정된 직장에서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목숨을 내놓은 것”이라며 “내 아들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얼마나 간곡히 부탁했는데 지금까지 마사회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오열했다.

이들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기자회견은 공공운수노조와 공공연맹,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함께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마사회 경영진 퇴진과 부산경남경마공원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경영진 처벌, 국회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경마공원 작업중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동부, 경마장 작업중지 명령 내려야”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가 마사회에 항의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또 한 명의 부산경남경마공원 마필관리사가 목숨을 끊었다. 노조는 두 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마사회 태도가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웅변한다고 했다. 고 박경근씨 관련 교섭 결렬의 원인을 "유족 위로금 액수 때문"이라고 했던 최원일 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본부장은 고 이현준씨 장례식장에 찾아와 "이번에는 조용히 보내 드리자"고 말해 노조의 반발을 샀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억울한 죽음 앞에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며 “마사회에 책임을 엄하게 묻고 진상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자가 자살했는데 두 달 넘도록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며 “중층 착취구조를 그대로 두고 생색만 내겠다는 것이 공기업 비정규직 제로시대냐”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부산근로자건강센터에 외상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마필관리사들을 위해 심리상담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부산북부지청 관계자는 “근로자건강센터에서 경마공원을 직접 방문해 심리상담을 하도록 했다”며 “작업중지를 포함해 추가적인 조치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부산경남경마공원에 작업중지 명령을 발동하라고 촉구했다. 한대식 노조 조직쟁의실 부실장은 “마사회측과 노조 교섭이 타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산된 상태고 최근 동료를 두 명이나 잃은 마필관리사들의 현재 심경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경마가 평상시처럼 진행된다면 나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마사회 다단계 착취구조 만악 근원"

경마장은 다단계 하청구조로 운영된다. 마사회가 1992년 개인 마주제를 시행한 이후 개인 마주가 마사회와 출주 계약을 하고, 개인 마주는 조교사에게 출주마 위탁을 맡겼다. 마필관리사는 조교사가 고용하는 구조다. 공기업인 마사회는 경마시행으로 매년 수조원의 이익을 내지만 정작 경마 시행을 위해 일하는 마필관리사의 노동환경이나 처우 문제에서는 책임을 회피했다. 노동계는 다단계 착취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2004년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마필관리사가 3명이나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11년 11월 고 박용석 마필관리사는 유서에 “고용안정도 안 되고 매일 언제 잘리나 노심초사하는 마필관리사들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래도 이 조그만 목숨 하나 바치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습니까”라고 썼다.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는 올해 5월27일 “X 같은 마사회”라는 유서를 남겼다.

고 이현준 마필관리사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족 증언에 따르면 그는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괴로움을 호소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스트레스성 탈모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오백원 동전 크기만큼 머리에 '땜빵'도 생겼다”고 말했다.

한편 마사회는 이날 입장을 내고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일련의 안타까운 사안에 대해 막중한 책임의식을 갖고 유가족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조속한 사태 해결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시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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