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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네팔 이주노동자 통장에 320만원 남기고 목숨 끊어

기사승인 2017.08.0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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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면증·우울증에 "사업장 바꿔 달라" 했는데 … 시민사회 "고용허가제로 인한 죽음"

   
▲ 지난 7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은 께서브 쓰레스터(keshav shrestha)씨가 남긴 유서. <청주네팔쉼터>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7일 오전 8시. 충북 충주 대소원면 첨단산업단지 공장자동화 기계부품 제조업체 S사에서 일하던 20대 네팔 이주노동자 께서브 쓰레스터(Keshav Shrestha·27)씨가 기숙사 옥상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결혼 두 달 만에 "돈을 많이 벌어오겠다"며 한국행 비행기를 탄 새신랑은 1년6개월 만에 차가운 주검이 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돈 벌어오겠다" 한국 왔는데…=8일 S사와 청주네팔쉼터에 따르면 쓰레스터씨는 7일 새벽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새벽 3시까지만 해도 네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쓰레스터씨는 동료들이 잠들고 난 뒤 홀로 옥상에 올라갔다. 이곳에서 일하는 네팔 이주노동자는 쓰레스터씨를 포함해 9명이다. 이날 아침 체조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를 걱정한 동료들이 이곳저곳을 찾았고, 결국 싸늘한 시신을 찾았다.

청주네팔쉼터 활동가 수니따씨 설명과 유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쓰레스터씨는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에서 수면제 처방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유서에서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라며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라고 밝혔다.

수니따씨는 "일을 하면서 마음의 병, 우울증이 왔었던 것 같다"며 "일이 적성에 안 맞아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잠깐 네팔에 돌아가 치료를 받고 오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회사가 안 된다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쓰레스터씨는 유서에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됐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다"고 썼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 따르면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3년 동안 직장을 세 번 옮길 수 있지만 스스로 사업장을 바꿀 수는 없다. 회사가 폐업하거나 사용자가 노동조건을 위반하는 식으로 노동자 책임이 없어야만 옮길 수 있다.

쓰레스터씨 역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탓에 규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평소 우울증과 불면증을 호소하던 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 것은 올해 6월 대구경북지역에서 네팔 이주노동자 세 명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 직후다. 수니따씨는 "(쓰레스터씨가) 동료들한테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죽지' '왜 못 참고 죽지' 하면서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얘기를 했다더라"며 "동료들이 '그때 낌새를 눈치챘어야 했는데'라며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쓰레스터씨가 4일과 5일에 연달아 '몸이 아파서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며 "집에 가려면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고, 1년 이상 일했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으려면 비행기 티켓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 줬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가 출국만기보험(퇴직금)을 수령하려면 출국심사를 마친 뒤 공항에서 수령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간 지 14일 이내에 받을 수 있다. 이주노동자 불법체류를 막는다는 이유에서다. 외국인고용법상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회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정 가고 싶으면 준비를 해야 하니까 월요일(7일)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는데 그사이에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아내와 여동생 앞으로 남긴 320만원=이주노동자 단체들은 "고용허가제 때문에 또 한 사람이 죽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조광복 음성노동인권센터 공인노무사는 "국내 노동자들과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와 갈등이 있거나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도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이직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이직사유도 극히 제한적"이라며 "이번 사건은 고용허가제의 폐해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상황 파악을 위해 충주로 내려간 우다야 라이 서울경기인천이주노조 위원장은 "아무리 아파도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사업장을 옮길 수 없는 고용허가제를 바꿔야 한다"며 "한국 정부는 사업주들의 경영권만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사람답게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쓰레스터씨의 시신은 충주의료원에 안치됐다. 부검 후 빈소가 차려질 예정이다. 그는 네팔에 있는 가족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남은 돈이었을 320만원을 아내와 여동생 앞으로 남겼다. 수니따씨는 "네팔 노동자들을 자꾸 주검으로 고국에 돌려보내는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토로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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