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유플러스 협력업체 인터넷 설치기사 김종덕씨가 설치장비 여러 개를 한꺼번에 들고 이동하고 있다.

옥상 문을 여니 열기가 후끈 얼굴에 닿았다. 하루 전날보다 더위가 누그러졌다고는 하지만 한낮의 열기는 온몸에 그대로 전해졌다.

“오늘 정도만 돼도 좋겠네요.” 지난 8일 오후 서울지역 LG유플러스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김종덕(38)씨는 “이 정도 더위는 견딜 만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입추였지만 이날 서울 한낮 기온은 31도를 넘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햇볕은 등을 찌르고 달궈진 옥상 바닥은 뜨거운 기운을 품어 냈다.

“며칠 전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갔을 때는 현기증이 날 정도였어요. 열 차단 코팅제를 바른 옥상에서 일할 때는 열이 반사돼 정말 힘들어요.” 옥상 구석에서 인터넷선을 설치하면서 김종덕씨가 말했다. 김씨는 주택에 인터넷이나 IPTV·인터넷전화를 설치하고 수리하는 일을 한다. 업무는 오전 9시부터 시작한다. 1시간마다 할당량이 떨어진다. 한 건을 처리하는 데 짧게는 30분 정도 걸리지만, 길게는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장비를 챙기고 이동하는 데 드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늘 빠듯하다. 공식적 퇴근시간은 저녁 6시다. “보통 사람들이 우리 일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다니면 한여름에는 두 시간도 못 버틸 걸요?”

한 시간마다 업무 할당 "쉴 틈이 없어요"

이날도 김씨는 바쁜 일정를 소화해 냈다.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 1시께 할당된 김씨의 업무는 인터넷 이전설치였다.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인터넷 설치 위치를 바꾸려 한다는 고객의 말에 김씨는 옥상으로 올라 인터넷 선을 설치하고 다시 건물 안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창틀을 드릴로 뚫어 옥상에서 내려뜨린 인터넷 선을 잡아 집안에 들여 인터넷 장비에 연결했다. 인터넷 선을 창틀과 천장 모서리에 ‘타카’로 박아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까지 분주하게 작업을 끝내고 다시 차로 돌아오자 시계는 오후 1시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 45분이 걸린 셈이다. 다음 업무는 오후 2시로 정해졌지만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약속시간은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씨는 “그나마 빨리 끝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전화 설치나 IoT(사물인터넷) 설치 같은 업무가 추가로 더해지면 두 시간씩 걸리기도 한다”는 말이 뒤따랐다. “고객이 이것저것 물어보면 더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해 안타깝다”는 김씨의 얼굴은 땀범벅이 돼 있었다.

김씨는 이날 업무를 위해 사다리·케이블선·랜선·공구가방·장비벨트 같은 장비를 한꺼번에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김씨는 “많을 때는 장비 꾸러미를 한 번에 7개씩 들고 다닌다”며 “매번 드니까 무거운 장비를 드는 것도 적응됐다”고 말했다.

한 달 실적 꽉 채워야 250만원 “점심도 못 먹어요”

이날 김씨는 점심을 먹지 못했다. 평소에도 점심은 거의 거른다고 한다. 노조가 생긴 뒤 공식적으로는 점심시간에 업무가 ‘꽂히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실적급을 더 받으려 점심시간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씨는 “회사가 점심시간에는 업무를 할당해 주지 않는다"며 "다른 시간에 배치된 업무를 고객 동의하에 점심시간으로 변경하고 사무실에 연락해 빈 시간이 생겼으니 다른 고객을 달라고 요청하는 식으로 점심시간에 일한다”고 전했다.

김씨는 “급여가 늘 부족해 이렇게라도 해서 돈을 더 벌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LG유플러스는 기본급 138만원과 실적급(1포인트당 1만2천500원)을 지급하고 있다. 그는 "점심을 굶어 가며 실적을 최대치로 올리면 한 달에 250만~26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 협력업체 인터넷 설치기사 김종덕씨가 주택 옥상에서 인터넷선을 설치하고 있다.

김씨가 인터넷 설치를 하면서 고객에게 ‘더 빠른 광속 인터넷으로 교체하라’거나 ‘IoT를 설치하라’는 등 영업(HSD·홈솔루션디자인)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씨는 “지난 5월에는 HSD 유치수당으로 35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이 돈을 못 받았으면 한 달 월급이 230만원도 안 됐을 것”이라며 “우리 가족 네 명이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말주변이 없어서 영업을 하는 것이 부담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에어컨은 불가능한 호사 “화상 입은 것같이 뜨거웠죠”

“평소에도 이렇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다니세요?” ‘혹시나’해서 물었더니 ‘역시나’ "오늘은 특별한 날 아니냐"는 말이 돌아왔다. 배려하느라 특별히 차 에어컨을 켠 것이다. 참고 달리는 이유는 기름값 때문이다. 김씨가 일하는 협력업체는 매달 20만원의 기름값을 지원한다. "한 달 주유비로는 부족하죠. 업무용으로만 월 25~30만원 정도 드는 것 같아요. 에어컨까지 틀면 더 들겠죠. 혼자 탈 때는 창문만 열어 놓는데 지난주 토요일에는 정말 뜨거웠어요. 뒤통수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따갑더라고요.” "땀 냄새 나지 않느냐"며 김씨가 걱정스런 눈빛을 보였다. 뒷자석에 장비가 가득 실려 업무용 차량으로 보이는 승용차는 사실 김씨 소유다. 협력업체는 차량유지비를 주지만 기사들에게 업무용 차량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날 김씨는 점심시간에 공인노무사를 만났다. 이전 협력업체는 6월30일 LG유플러스에 계약해지당하면서 6월 급여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체당금을 받아야 했다. 이날 노무사를 찾은 이유다. 김씨가 협력업체 직원 50명을 대표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김씨는 “월급으로 한 달 살기도 빠듯한데 임금체불까지 돼서 부모님한테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돈 빌려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2014년 파업 때문에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는 조합원들도 있는데 이렇게 월급까지 제때 받지 못하면 정말 힘들다”고 한숨 쉬었다.

김씨는 “실적급을 더 받으려 애쓰는 것도, 임금이 체불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원청 LG유플러스가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SK브로드밴드처럼 협력업체를 자회사로 전환하면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LG유플러스 IPTV나 인터넷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일을 10년 했지만 최근 협력업체가 변경되면서 근속연수는 다시 0년이 됐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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